여행/축제

고창 문수사

고창 문수사

by 운영자 2009.07.10

7월, 청량한 나무 내음 ‘혼미’

시방, 천지는 푸르다. 초록 세상이 천지를 뒤덮었다.

한바탕 비가 퍼부은 뒤라서일까. 사위는 더욱 깨끗하다. 선명하다. 처음 안경을 쓰던 날, 눈앞의 광경이 꼭 이랬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선명해져 오히려 어지러웠다.

전라북도 고창. 검붉은 동백꽃 벙그러지던 그곳은 이제 초록이 대세다. 키를 키운 초록 보리가 베어나가자 올망졸망 초록 모들이 논을 채웠다.

노란 장화를 허벅지 끝까지 신은 농부들이 허리 숙여 며칠 새 훌쩍 자란 잡초를 뽑는다. 초록 들녘이 끝나는 저 곳 너머 지평선에는 푸르른 하늘이 이어진다. 상쾌하다.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문수사(文殊寺). ‘붉은’ 단풍으로 더 이름난 이곳은 지금, 진초록 단풍이 유혹한다. 문수사 드는 길, 비 냄새와 나무 냄새가 섞여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폭포 떨어지듯 시원한 계곡 물 소리도 산을 울린다.
함박만한 수국 너머 보이는 빛바랜 문수사 대웅전도 오늘만큼은 또렷하다.
혼자만의 ‘호젓한’ 산책
고창 문수사ㆍ고인돌들꽃학습원

여럿이 함께 하는 나들이라면 맑은 날이 좋다. 하지만 혼자서 나서는 길이라면 ‘추적추적’ 비오는 날이 더 좋다. 그곳이 숲이라면 더욱 그렇다.

‘탁’ ‘탁’ 빗방울이 나뭇잎에 떨어지며 내는 소리는 노래가 되고, 빗물 냄새와 나무 냄새가 섞이면 어떤 향수보다 향기롭다. 가을 단풍철도 아닌데 고창 문수사에 가야겠다 마음먹은 건 순전 ‘비’ 때문이다. 맹맹한 코를 ‘뻥’ 뚫어줄 나무 냄새 맡으러 간다.
■ 단풍빛 참 푸르다, 문수사
고창 문수사는 산 속 깊은 골짜기다. 오르막을 오르고 또 올라야 겨우 일주문 앞에 다다른다. 내비게이션에서 길을 표시하는 곳은 딱 일주문까지다. 그 뒤로는 길 표시가 나타나지 않는다.

일주문 옆 공터에 차를 세워두고 내린다. 다른 차도, 다른 인기척도 없다. 덜컥 무서운 마음이 들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 호젓한 곳에서는 나쁜 마음 먹은 이들도 이내 마음을 고쳐먹을 것 같다.

차를 두고 준비해온 운동화를 꺼내 신고 걷는다. 일주문 너머 보이는 길은 좁다랗다. 딱 차 한 대가 지날 수 있는 길. 나무가 자연스레 만들어놓은 터널 탓에 한낮에도 깜깜하다.
문수사로 가는 길은 상쾌하다. 계곡물은 맑고 일주문 바로 옆에 수백 년 된 단풍나무는 비스듬하게 누운 자태로 유혹하듯 맞는다.

길가 옆 알록달록한 수피를 가진 단풍나무 고목들이 터널을 이룬다. 그 중 쌍둥이처럼 꼭 닮은 두 그루의 단풍나무가 시선을 끈다. 곧게 자라기를 포기한 듯 이리저리 줄기를 비틀어 하늘로 올렸다. 그 모습이 마치 융숭한 이를 맞는 듯하다. ‘과분한’ 대접에 마음은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문수사 가는 숲길은 온통 단풍나무숲이다. 수령 100∼400년을 헤아리는 500여 그루 단풍나무들이 길을 따라 이어진다. 헌데 이 단풍나무숲이 천연기념물 제463호로 지정됐다.

단풍나무숲으로는 국내 최초로 문화재가 된 것. 아마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각별한’ 아름다움 덕일 테다. 고개 들어 올려다본 단풍잎들은 마치 아기들의 손이 햇살 아래서 노는 듯하다.

단풍나무 외에 고로쇠나무, 졸참나무, 개서어나무, 상수리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등 혼생하는 다른 수종들과 어우러져 숲을 이룬다.
단풍나무길 옆으로는 계곡물이 흐른다. 며칠 새 내린 비 덕인지 물 흐르는 소리가 마치 폭포 떨어지는 소리 같다. 거의 끝에 다다르면 왼편으로 돌층계가 난 길이 보인다.

지금 문수사는 공사 중. 때문에 돌층계를 따라 안으로 들 수는 없다. 단풍나무와 돌층계가 어우러진 풍경을 멀리서만 구경하는 맛도 즐겁다. 강아지랑 놀다가, 땅에 떨어진 이상한 돌도 만지다가, 해찰하며 하는 심부름이 더 즐거운 것처럼.

길 끝에는 마치 누구 집 마당이라도 되듯 절이 펼쳐진다. 사천왕문 없이 바로 대웅전 마당으로 이어지는 것이 낯설기도 하고 또 왠지 편안해지기도 한다.
문수사는 신라의 자장율사가 백제 의자왕 3년(643년)에 창건한 고찰.

선운사의 명성에 가려 찾는 이는 많지 않지만 청량산(621m) 자락에 파묻혀 있어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

문수사엔 문수보살님이 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서 7일간 머물며 기도를 드리다가, 땅속에서 문수보살이 나오는 꿈을 꾸었는데 정말 땅을 파보니 문수보살 입상이 나와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곳에 절을 짓고 이름을 문수사라 했다는 기록이다.

대웅전 뒤 문수전에 모셔져 있는 석불은 자장율사의 꿈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사실임을 증명하는 증거물인 셈이다.
마당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대웅전은 세월 속에 씻기고 또 쓸려 선명하던 단청이 다 바랬다. 헌데 그 모습이 왜 그리 예뻐 보이는지 모르겠다. 세월을 역행하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받아들인 원숙한 아름다움이 문수사 대웅전에는 있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얼음장’처럼 시원한 지례의 샘물이 졸졸 흐른다. 수국 한잎 띄워 마시면 속이 시원하다. 문수보살님은 친근한 얼굴이다. 둥그런 큰 얼굴은 절로 후덕함이 뿜어져 나온다.

소박해서 더 정이 간다. 문수전 뒤편으로는 자장율사가 기도했다는 자장굴이 있다. 이곳에 왔다면 부도밭도 꼭 둘러보자.
■ 꽃 이름 대기 놀이, 들꽃학습원
고창읍에는 개인이 만든 ‘식물원’이 있다. 폐교가 된 고창서초등학교에 꾸민 고인돌들꽃학습원이 보유하고 있는 식물은 야생화 약 700종, 수생식물 약 50종, 분재 약 30종 500여점과 약용식물, 소나무 등이다.

야생화원·수생식물원·습지식물원·약용식물원·소나무재배지·현장실습실·체험학습장·온실 등으로 구성되며, 쉼터도 잘 갖추어져 있다.

고창읍성처럼 돌로 쌓인 낮은 성곽을 따라 걸으면 온갖 꽃들과 풀들의 이름을 만날 수 있다. 곳곳에 산재해 있는 야생화식재지와 야생화표본장에는 벌개미취·투구꽃·꿩의비름·동자꽃·꼬리풀·매발톱 등 우리 들꽃만을 심었고, 꽃향유와 구절초는 군락을 이루고 있다.

넓이 990m²의 연못에 조성한 수생식물원에서는 연꽃·수련·부채꽃 등 다양한 수생식물은 물론 물고기·개구리·우렁이와 갖가지 곤충을 관찰할 수 있다.

습지식물원에는 자라풀·보풀·물달개비·부레옥잠 등을, 약용식물원에는 감초·구기자 등의 약재를 심었고, 온실에는 분재와 석부분경(石附盆景 식물을 돌에 붙여 자라게 한 분재)을 전시하고 있다.

[순천광양 교차로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