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남원 서도역
열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남원 서도역
by 운영자 2009.07.24
시간도, 추억도 가만 멈춰선 그곳
그곳에는 이제 더 이상 열차가 들어오지 않는다. 꾸벅꾸벅 졸던 역무원도 자취를 감췄고,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보따리를 이고 지고 오일장을 오가던 걸진 사람들의 입담도 사라진 지 오래다. 사람들의 온기를 잃은 간이역은 멈춰선 시간만큼이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빨리’를 외치는 세상 속에서도 이곳만큼은 그 속도가 미치지 못한다.
‘현재’의 속도를 빗겨간 이곳은 ‘과거’가 더 또렷이 존재한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사람, 장소도, 추억도 생각난다. 숨 가쁘게 달려온 현재마저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
남원 서도역. 시간이 멈춰선 그곳에서 잠시 쉰다.
그곳에는 이제 더 이상 열차가 들어오지 않는다. 꾸벅꾸벅 졸던 역무원도 자취를 감췄고,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보따리를 이고 지고 오일장을 오가던 걸진 사람들의 입담도 사라진 지 오래다. 사람들의 온기를 잃은 간이역은 멈춰선 시간만큼이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빨리’를 외치는 세상 속에서도 이곳만큼은 그 속도가 미치지 못한다.
‘현재’의 속도를 빗겨간 이곳은 ‘과거’가 더 또렷이 존재한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사람, 장소도, 추억도 생각난다. 숨 가쁘게 달려온 현재마저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
남원 서도역. 시간이 멈춰선 그곳에서 잠시 쉰다.
열차, 사람들의 입김으로 달리는…
추억을 되짚어가는 시간 여행
내게 기차는, 처음 타본 생경함보다 원거리 연애를 했던 설렘이다.
10여년의 추억을 거스르면 우리는 서대전역에 있다. 서울과 광주라는 시간과 거리 차로 우리는 딱 중간인 서대전역을 ‘만남의 장소’로 꼽고 한달에 대여섯 번씩은 꼭 역을 찾았다.
종종 집까지 바래다주겠다며 함께 탔던 통일호 열차는 왜 그리 빨랐는지. 서대전역에서 광주까지 3시간이 넘는 통일호가 그리도 빠르게 느껴졌던 것은 첫사랑의 설렘 탓일 게다.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최대 시속 300km 케이티엑스(KTX)가 철로 위를 달린다. 그 속도만큼 ‘빨리 빨리’ 마음도 급하다.
속도의 세상에서 간이역은 세상과 비껴있는 듯하다. 세상의 시계에 구애받지 않고 오롯하다. 남원 사매면 서도역. 8년을 혼자 지낸 그곳, 작은 간이역으로 향한다. 더위에, 세상살이에 지쳐 큰 숨 한번 몰아쉴 요량이다.
추억을 되짚어가는 시간 여행
내게 기차는, 처음 타본 생경함보다 원거리 연애를 했던 설렘이다.
10여년의 추억을 거스르면 우리는 서대전역에 있다. 서울과 광주라는 시간과 거리 차로 우리는 딱 중간인 서대전역을 ‘만남의 장소’로 꼽고 한달에 대여섯 번씩은 꼭 역을 찾았다.
종종 집까지 바래다주겠다며 함께 탔던 통일호 열차는 왜 그리 빨랐는지. 서대전역에서 광주까지 3시간이 넘는 통일호가 그리도 빠르게 느껴졌던 것은 첫사랑의 설렘 탓일 게다.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최대 시속 300km 케이티엑스(KTX)가 철로 위를 달린다. 그 속도만큼 ‘빨리 빨리’ 마음도 급하다.
속도의 세상에서 간이역은 세상과 비껴있는 듯하다. 세상의 시계에 구애받지 않고 오롯하다. 남원 사매면 서도역. 8년을 혼자 지낸 그곳, 작은 간이역으로 향한다. 더위에, 세상살이에 지쳐 큰 숨 한번 몰아쉴 요량이다.
기차가 서는 역이었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기차를 탔을 텐데 서도역은 2002년 이후 기차가 서지 않는다. 서도역을 찾은 날은 긴 비가 그친 뒤 날이 맑아진 날이었다. 그간 끊임없이 내리는 비가 그리도 싫더니만 오늘은 비가 오는 간이역이 더 운치 있지 않을까 하는 간사한 마음이 든다.
남원에서 전주로 가는 17번 국도를 타고 가다 사매를 가리키는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서도역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단, 옛 서도역을 찾을 것.
그냥 서도역은 지금 한창 공사 중이다.
길가에는 때 이른 코스모스가 한들거리고 노오란 해바라기도 활짝 피었다. 꽃 모양보다 손톱 위에 붉게 핀 것이 더 예쁜 봉숭아도 한창이다.
남원에서 전주로 가는 17번 국도를 타고 가다 사매를 가리키는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서도역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단, 옛 서도역을 찾을 것.
그냥 서도역은 지금 한창 공사 중이다.
길가에는 때 이른 코스모스가 한들거리고 노오란 해바라기도 활짝 피었다. 꽃 모양보다 손톱 위에 붉게 핀 것이 더 예쁜 봉숭아도 한창이다.
옛 서도역은 전라선 오수와 남원 사이의 작은 역. 예전에는 전주와 남원 사이를 오가는 통학열차가 운행되기도 했지만 2002년 전라선 철도가 다른 곳으로 이설되면서 문을 닫게 됐다.
1932년 만들어진 서도역은 1930년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번쩍이는 알루미늄 새시 대신 페인트와 니스칠이 된 역사, 반질반질 사람 길이 난 기다란 간이의자, 난로 위 보리차가 뜨거운 김을 뿜어내는 후끈한 대합실.
1932년 만들어진 서도역은 1930년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번쩍이는 알루미늄 새시 대신 페인트와 니스칠이 된 역사, 반질반질 사람 길이 난 기다란 간이의자, 난로 위 보리차가 뜨거운 김을 뿜어내는 후끈한 대합실.
하지만 서도역은 보존을 위해 사방이 꽁꽁 잠겨 있다. 느릿한 대합실 풍경은 바깥에서 창을 통해 들여다봐야 상상이 가능하다.
역 뒤에는 녹슨 철로가 길게 늘어섰다. 10여년 가까이 열차가 지나지 않은 기찻길은 녹이 조금씩 슬기는 했지만 신기하게도 잡초는 웃자라지 않았다.
마치 언제라도 열차가 달리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길게 이어진 철로를 비틀비틀 걷는다. 양팔을 크게 벌리고 가도 비틀거리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유난히도 파랗다. 길게 늘어선 철로와 파란 하늘, 기차 없이도 가슴이 툭 트인다.
역 뒤에는 녹슨 철로가 길게 늘어섰다. 10여년 가까이 열차가 지나지 않은 기찻길은 녹이 조금씩 슬기는 했지만 신기하게도 잡초는 웃자라지 않았다.
마치 언제라도 열차가 달리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길게 이어진 철로를 비틀비틀 걷는다. 양팔을 크게 벌리고 가도 비틀거리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유난히도 파랗다. 길게 늘어선 철로와 파란 하늘, 기차 없이도 가슴이 툭 트인다.
철길 앞으로는 낯선 기기가 있다. 상부출, 하출이라는 글이 쓰인 이 기기는 철로를 이동시키는 것. 기차가 지나는 방향에 따라 철로를 움직였던 기계가 마냥 신기하다.
서도역이 더 특별한 것은 작가 고(故) 최명희의 소설 ‘혼불’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서도역이 더 특별한 것은 작가 고(故) 최명희의 소설 ‘혼불’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이 역은 ‘정거장’ 혹은 ‘매안역’(梅岸驛)이라는 이름으로 소설 전반에 걸쳐 등장한다. 주인공 효원이 열아홉에 완행열차를 타고 신행을 오고, 강모가 학교를 오가는 역이 바로 이곳이다.
지금 서도역은 봄 벚꽃, 자운영이 지고 녹음이 짙어간다. 나무로 지은 역사, 녹슨 철로, 수동 신호기. 타임머신이 없어도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하다.
앞이 아닌 자꾸만 뒤로 뒤로 생각이 머문다면 떠나보자, 간이역으로. 마음껏 ‘뒤로’ 여행하며 마음 쉼하자.
[순천광양 교차로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
지금 서도역은 봄 벚꽃, 자운영이 지고 녹음이 짙어간다. 나무로 지은 역사, 녹슨 철로, 수동 신호기. 타임머신이 없어도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하다.
앞이 아닌 자꾸만 뒤로 뒤로 생각이 머문다면 떠나보자, 간이역으로. 마음껏 ‘뒤로’ 여행하며 마음 쉼하자.
[순천광양 교차로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