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당신’과 보고 싶은 가을 풍경들

‘당신’과 보고 싶은 가을 풍경들

by 운영자 2009.10.30

영암 왕인국화축제ㆍ월출산 도갑사

<산마다 단풍만 저리 고우면 뭐 헌다요 / 뭐 헌다요, 산 아래 / 물빛만 저리 고우면 뭐 헌다요 // 산 너머, 저 산 너머로 / 산 그늘 다 도망가불고 / 산 아래 집 뒤안 / 하얀 억새꽃 하얀 손짓도 / 당신이 안 오는데 뭔 헛 짓이다요 // 저런 꽃이 다 뭔 소용이다요, / 뭔 소용이다요, 어둔 산머리 / 초생달만 그대 얼굴같이 걸리면 뭐 헌다요 // 허연 서리만 끼어가고 / 저 달 금방 져불면 / 세상길이 다 막혀 막막한 어둠 천지일턴디 // ○○○같이, 바보 천치같이 / 이 가을 다 가도록 / 서리밭에 하얀 들국으로 피어 있으면 / 뭐 헌다요, 뭔 소용이다요> - 김용택 ‘들국’ -

국화가 한창이고 단풍이 노랗게 붉게 물든다. 가을이다. 헌데 이 좋은 가을도 ‘당신’이 없으면 뭐 허고 또 뭔 소용인가. ‘당신’이 어디 먼 데로 가기 전에 ‘당신’ 손 꼭 붙잡고 가을 나들이 가자.

산마다 단풍도 보고, 길섶 억새도 보고, 파란 물빛도 보고, 색색의 국화도 볼 수 있는 곳으로 ‘당신’과 나란히 걷자.
영암, 국화꽃 향기에 쉬고
시가 있는 단풍길 따라 걷고

영암은 붉다. 단풍 익어가는 가을이기도 하지만 영암의 대표 산 월출산 암반 주석질의 붉은 화강암과 길가의 황토, 속도 겉도 붉게 익어가는 무화과까지 붉다.

어디 그뿐인가. 동글동글 국화도 붉고, 산 위에 길가에 나뭇잎들도 붉다. 붉은색은 생기가 돈다. 과학적 지식이 없다면 붉게 물든 단풍잎이 늙어가고 죽어가는 것이라 어찌 생각할 수 있겠는가. 월드컵에서 경험했듯 붉은색은 힘의 창고다.

가을이 깊어간다. 멈칫거리지도 않고 가을이 온다. 북쪽에서부터 내려온 단풍이 먼 산에 그대로 스몄고, 땅 위 국화꽃 향기도 깊어진다. 그렇게 가을이 내공을 더해 간다. 그리고 여기 영암은 가을을 가득 담아내고 있다.

■ 국화꽃 향기도 일본까지 퍼질까, 왕인국화축제
지금 영암 왕인박사유적지에서는 국화축제가 한창이다. 봄이면 환한 벚꽃으로 발길을 붙잡더니, 지금은 향그러운 국화꽃 향기로 발을 떼기 힘들 정도다.

일본 아스카 문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왕인. 일본에서는 왕인을 ‘학문의 신’으로 받들고 있다. 때문에 입시 철이나 정월 초하루가 되면 그를 모셔놓은 신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매년 11월이면 ‘왕인 묘전제’라는 축제가 5일간 일본 간사이 지방에서 성대하게 열리기도 한다. 이렇듯 일본에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인 왕인의 고향이 바로 영암이다.
왕인은 미개한 일본땅에 문명을 꽃피운 인물이다. 백제 근수구왕 때인 14세기 영암에서 태어난 왕인이 일본에 건너간 것은 일왕의 요청 때문이었다.

고구려에 맞서 백제가 일본과 협약을 맺었는데 일왕이 백제의 이름난 학자를 청했던 것이다.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 도공, 기와공 등 많은 기술자들과 함께 건너간 왕인은 일본인들이 대대손손 큰자랑으로 여기는 아스카(飛鳥)문화의 원조가 됐다. 왕인박사의 묘지는 일본 오사카 히라카타(枚方)시에 있으며, 38년 5월 사적 제13호로 지정됐다.

영암군은 왕인 박사의 탄생지 ‘성기동’과 공부하던 ‘책굴’이 그대로 보존된 구림마을 동쪽 문필봉 기슭에 ‘왕인박사유적지’를 조성, 그의 자취를 복원해 놓았다.

왕인박사의 탄생지인 성기동과 박사가 마셨다고 전해오고 있는 성천(聖泉)이 있으며, 탄생지 옆에는 유허비(遺墟碑)가 세워져 있다. 또 월출산 중턱에는 박사가 공부했다고 전해오는 책굴(冊堀)과 문산재(文山齋)·양사재(養士齋)가 있다.

왕인박사유적지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국화로만 만들어둔 ‘영월관’에 입이 떡 벌어진다. 게다가 실제의 영월관과 앞뒤로 나란히 놓여 있어, 똑같은 그 모습이 더 신기하기만 하다. 영월관은 왕인박사의 일생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이다. 진하디 진한 국화꽃 향기는 보너스다.
국화꽃으로 만들어둔 영월관을 지나면 이제 본격적인 국화꽃 구경에 나선다. 국화꽃도 보고 왕인박사에 대한 공부도 할 수 있어 좋다. 유적지 곳곳을 국화꽃으로 장식한 노력이 엿보인다. 공원처럼 드넓고 나무 많고 쉼터가 많아 가족끼리 도시락 준비해 오면 좋겠다.

영월관을 죽 둘러보고 나오면 국화꽃 터널이 이어진다. 구불구불 양 옆으로 담장을 두고 거기에 국화꽃을 가득 채웠다. 그 안을 걸으니 국화꽃 향기에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 동그랗고 색색의 국화꽃이 참 예쁘다. 하지만 예쁘다고 덜컥 고개를 들이밀지 말자.

꽃을 보호하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먼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향기를 ○○○아 온 벌들이 사방팔방 국화를 점령하고 있다. 겁 없이 들이댔다가 벌에게 혼날지도 모를 일이다.
국화꽃 터널을 빠져나오면 코끼리, 돼지, 기린 등 동물 모양으로 국화를 꾸며놓은 조형물이 보인다. 귀엽고 친근한 동물 앞에서 아이들이 좋아한다.

잔디를 따라 죽 가면 성담이라는 이름의 연못과 정자 월악루가 있다. 성담에는 어른 팔뚝만한 잉어가 한가로이 노닌다. 월악루 가장자리에는 수능 합격을 기원하는 등이 주르르 걸렸는데, 몇몇의 학부형들이 그 아래서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다.

월악루에 서면 눈이 시원해진다. 멀리 색 고운 국화들이 보이고, 별 모양, 하트 모양으로 조성된 조형물도 보인다. 다리쉼이 끝났다면 오른편 왕인박사묘 방향으로 죽 걷는다. 가는 곳곳 국화가 있고, 나무 그늘이 있어 심심치 않고 힘들지 않다.

왕인박사유적지는 꽤 넓다. 보이는 곳만 휘 둘러봐도 다리가 팍팍할 정도. 마음먹고 다 보려고 마음 먹는다면 한나절은 충분히 가져야 한다. 저 산 위 왕인박사가 공부했던 책굴까지 가려면 편한 등산화가 필요하다.

[순천광양 교차로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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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내려앉은, 월출산 도갑사

왕인박사 유적지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산 18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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