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전주 한옥마을, 느릿느릿 걸으며 역사 여행

전주 한옥마을, 느릿느릿 걸으며 역사 여행

by 운영자 2009.11.27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전주는 느릿느릿 걸어야 제맛. 특히 한옥마을은 자동차로 휭 둘러볼 수도 없을뿐더러 그래서도 안된다. 골목골목 서린 이야기들을 따라 걸어야만 진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미 ‘전주한옥마을’이라는 대명사가 됐을 정도로 한옥마을은 유명하다. 특히 700여채의 한옥이 빼곡히 군락을 이룬 전주한옥마을은 전국 유일의 도시한옥군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한옥마을 가기 전 풍남문이 먼저 반긴다. 도시 한가운데 떡 하니 서있는 풍남문은 전주를 상징하기에 충분하다.

풍남문은 전주부성의 4대문 가운데 남문으로 고려 공양왕 원년인 서기 1389년에 전라관찰사 최유경이 전주부성과 함께 창건했다. 이 풍남문을 중심으로 전주한옥마을과 남부시장이 연결된다.

풍남문을 지나 5분여만 더 가면 전주한옥마을에 닿는다. 입구 왼편에는 경기전이, 오른편에는 전동성당이 장승처럼 짱짱하게 마을을 지키고 있다.
■ 역사와 풍경, 그 아름다운 조화 ‘경기전’
경기전은 지금 공사가 한창이다. 보수 공사 기간이 끝나고 가면 더 좋을 듯싶다. 경기전은 조선왕조를 연 태조의 초상화, 즉 어진을 모시기 위해 태종 10년(1410년) 지어진 건물이다.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으나 광해군 6년(1614년) 중건돼 지금에 이른다. 이런 역사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경기전 곳곳에 심어진 아름드리 나무들.

<고궁(古宮)의 묵은 지붕 너머로 새파란 하늘이 씻은 듯이 시리다. 우선 무엇보다도 그것에는 나무들이 울창하게 밀밀하였으며, 대낮에도 하늘이 안 보일 만큼 가지가 우거져 있었다.

그 나무들이 뿜어내는 젖은 숲 냄새와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며, 지천으로 피어 있는 시계꽃의 하얀 모가지, 우리는, 그 경기전이 얼마나 넓은 곳인지를 짐작조차도 할 수 없었다>

작가 최명희의 단편소설 ‘만종’의 한 부분으로 경기전이 얼마나 넓고 또 나무들은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다.

경기전은 침엽수와 활엽수들이 털어낸 잎들로 폭신폭신하다. 특히 노란 은행잎이 카펫처럼 깔려 ‘와’ 탄성을 자아낸다. 어느 연인들은 은행잎 이불과 담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어떤 아이들은 은행잎 줍기에 한창이다. 한가롭고 흐뭇한 풍경.

■ 동서양의 묘한 어울림 ‘전동성당’
배우 전도연과 박신양 주연의 영화 ‘약속’으로 더 이름난 전동성당. 이곳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1791년 신해박해 때에 처형당한 풍남문(豊南門)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건립됐다. 처형지인 풍남문 성벽을 헐어 낸 돌로 성당 주춧돌을 세웠다고 한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서양식 건물로, 한옥마을과는 어울리지 않을 듯 하면서도 또 묘하게 잘 어울린다.
■ 한옥마을이 한눈에 ‘오목대’
오목대에 오르면 한옥마을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한옥마을 관광안내소에서 태조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보이는 곳이 오목대.

이곳은 조선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가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개경 개선길에 들려 잔치를 베풀었다는 곳이다.

구불구불 나무 계단을 따라 오른다. 쉬울 것 같던 나무 계단은 그 가파른 경사 탓인지 벌써부터 다리가 뻐근하고 숨이 찬다. 나무 계단 경사가 한번 끊기는 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까만 기와지붕 나란한 한옥마을이 눈앞에 펼쳐진다.

한여름이라면 오목대에 올라 한참을 쉬었다가도 좋겠다. 오목대 가까이 전주향교가 있다. 전주향교는 우리나라 향교 가운데 온전히 보존된 향교 가운데 으뜸이라고 한다.

특히 향교에는 다섯 그루의 크고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는데, 향교 내 서문 앞 은행나무 수령이 400년이나 된다.
■ 과거로 돌아가는 ‘한옥길’
한옥마을에는 좁다른 골목길이 많다. 골목길마다 염색체험, 한지체험, 공예체험, 전통찻집 등 잠깐 다리 쉼을 하며 한숨 돌릴 장소도 충분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은 것은 예전 귀암이 후남이가 살던 60년대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시멘트벽에는 이삿짐센터 전화번호가 정겹고 슬레이트 지붕과 낮은 창문에 설치된 철창살도 반갑다. 저 골목 끝에 제 몸을 다 태운 연탄들이 나란할 것만 같다.

도시 한복판의 한옥마을은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고 아늑하다. 도란도란 옛 추억 떠올리며 느리게 걷기에 그만이다.

[순천광양 교차로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