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우후죽순 자라는 대숲 걸으며, 사천 ‘비봉내마을’

우후죽순 자라는 대숲 걸으며, 사천 ‘비봉내마을’

by 운영자 2010.08.06

‘쑤욱쑤욱’ 대나무 자라는 소리 들려요
초록이 짙어지는 계절 ‘여름’이다. 땅에서 자라나는 모든 것들이 비 맞고 볕 받아 ‘쑤욱쑤욱’ 자란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것들의 아우성이 천지를 울린다.

여름, 시원한 계곡과 바다가 우리를 유혹한다.
온몸이 얼듯 차가운 ‘물’은 더위를 저 멀리로 쫓아낸다.

하지만 그뿐이 아니다. 하늘 끝까지 닿을 듯 자란 대나무 숲. 대나무들의 호위 받으며 대숲에 이는 바람 맞으며 걸으면 몸은 ‘기분 좋은’ 온도로 유지한다. 하늘조차 보이지 않는 대나무 숲에 앉아 댓잎 이는 바람을 맞이하자.

경상남도 사천 비봉내마을 대나무가 지천이다. 그곳에 가면 우후죽순 자라나는 대나무 숲길을 질리도록 걸을 수 있다.

또 대나무피리 만들기, 옥수수 따기 등 다양한 가족 체험도 즐길 수 있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걷고
손으로 눈으로 마음으로 느끼고
경남 사천 비봉내마을, 다솔사
걸어서 세계를 일주했다는 프랑스 생물학자 이브 파칼레의 걷기예찬은 문학이자 철학이기도 하다. “걷기, 그 속에는 인생이 들어 있고, 깨달음이 들어 있으며, 신과 조우할 수 있는 기회가 들어 있다. 걷기를 좋아하는 이에게는 현자의 지혜가 번득이고 그의 눈은 시적 통찰력으로 빛난다.”

그는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빌려 “나는 걷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도 남겼다.

장 자크 루소는 숲을 산책하고 나서 “철학의 첫 스승은 우리의 발이다”라고 술회한 적이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도 <걷기예찬>에서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고 했다.

일찍이 루소는 <에밀>에서 “도착하기만을 원한다면 달려가면 된다. 그러나 여행을 하고 싶을 때는 걸어서 가야 한다”고 특유의 걷기 미학을 펼쳤다.

자, 걷자. 푸른 대숲 사이를 걷자.

■ 날마다 쑥쑥 자라는 푸른 대나무 숲, 비봉내마을
경남 사천시 곤양면에 자리한 비봉내마을은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비봉내가 흐르는 작은 시골 체험마을. 이곳은 대나무마을로 더 유명하다.

그렇다고 ‘어머, 멀어서 어떻게 가’ 하고 걱정하지는 말 것. 산길을 돌아돌아 굽이굽이 찾아들어가는 외진 시골마을은 아니다.

남해고속도로 곤양 나들목을 나와 우회전해서 약 1km만 달리면 오른쪽으로 비봉내마을 사무실이 있다.

그곳을 지나 100여 미터만 가면 ‘체험장 입구’라는 표지판이 보이는데 이곳으로 들어가면 된다. 차는 비봉내마을 사무실 부근에 주차할 것.

대나무체험장 표지판을 보고 한발한발 내딛으면 마치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양옆의 나무들이 우거져 밤처럼 검게 보일 정도.

비탈진 그 길을 지나면 가장 먼저 예쁘게 꽃을 단 배롱나무가 보인다. 그 아래 나무 의자에 앉아있으면 흩부는 바람에 분홍 꽃비를 맞을 수도 있겠다.
오른쪽으로는 장난감 병정처럼 도열한 장독대가 보인다. 직접 담근 장류들이 숙성되고 있는 크고 작은 1백여 개의 항아리 뒤로는 1만여 평의 푸른 대숲이 이어진다.
길을 따라 올라 만들기 체험장을 지나면 본격적인 대숲 산책로가 시작된다. 하늘을 향해 20m 넘게 솟은 대나무들이 푸른 기운을 쏟아낸다. 가만가만 걸으며 본다.

헌데 대나무의 굵기가 만만찮다. 어른이 두 손을 벌려 감싸기 쉽지 않을 만큼 굵다.

이처럼 굵고 곧게 자란 대나무 숲이 언제부터 있었을까. 원래부터 이곳에 대숲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65년경 현재 대숲 주인의 아버지가 대나무를 심으면서 시작된 것.

“대나무와 대나무 사이는 우산을 쓰고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을 정도로 벌어져 있어야 잘 관리되고 있는 것입니다.”

대나무를 유심히 관찰하는 사람들에게 이어지는 설명이다.

“대나무는 조건이 맞으면 하루에 105cm를 자라기도 합니다. 보통은 80~90cm 자라지요.
여기 대나무 옆에 붙어 있는 나무 보이죠? 그곳을 잘 살펴보면 날짜가 쓰여 있습니다. 하루 동안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해보세요. 또 잘린 밑둥을 보고 굵기도 확인해보세요. 지름이 10cm는 넘을 겁니다.”

이렇게 빨리 자라는 대나무가 움을 틔워서 다 자라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70일.

그후에는 꼿꼿이 선 채 속살을 찌워 단단한 모습을 유지한다. 특히 비가 온 다음 날엔 부쩍 많이 자란다. 때문에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는 말이 생겼다.

대나무를 굵고 튼튼하게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간벌을 해주어야 한다. 이곳에서는 대나무가 수액을 가득 머금는 5월부터 간벌을 시작한다. 대나무 수액을 얻기 위해서다.

수액을 뺀 대나무는 숯가마에 차곡차곡 넣어 대나무숯으로 재탄생된다. 대나무숯을 굽는 시기에는 이곳에서 숯가마찜질도 할 수 있다.

대숲 산책은 찬찬히 걸으면 1시간 정도 걸린다.
대숲 산책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끝에 대나무체험장이 있다.
왕대 2개를 이어 만든 널, 대나무 활과 화살, 죽력체험장, 대나무피리체험장 등이다. 그곳에서 아이가 대나무에 구멍을 내 피리를 만드는 동안 어른들은 댓잎을 잘게 잘라 덖어내는 댓잎차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4월 딸기 따기, 5~6월 죽순·매실 따기와 대나무 수액 채취, 7~8월 뗏목 타기와 무인도 탐험, 옥수수 따기 등 다양한 체험거리가 1년 내내 운영된다.

비봉내마을 체험은 1일 참가를 원칙으로 하며 반드시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아이들만 체험에 참가시키고 어른들은 참가하지 않는 가족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없다.

1인당 참가비는 2만원이고, 죽순된장찌개가 나오는 점심식사가 제공된다. 매달 이루어지는 체험프로그램은 홈페이지( www.beebong.co.kr )에 소개하고 있다.

체험에 참가하지 않고 대숲 산책만 할 수도 있다. 대숲 관람료는 1인당 1천원. 사전 예약 후 찾아가면 대숲 관람료가 무료다.

문의·예약 : 비봉내마을 055-854-5111, 011-9321-4000, 010-4032-5111

■ 항일구국운동의 중심지, 봉명산 다솔사
비봉내마을 대나무 숲을 내려와 좌회전해 약 10분간 달리면 다솔사로 들어가는 길 입구가 나온다.

중간중간 이정표가 사라진 듯 보이지만 당황할 것 없다. 별다른 이정표가 없다면 ‘직진’할 것. 이
곤명면 용산리에 자리한 다솔사는 신라 지증왕 때 창건된 사찰로 처음 지었을 당시의 이름은 영악사였다. 후에 의상대사에 의해 운봉사라 불리다 다시 다솔사라 불리고 있다.
다솔사 오르는 길은 걸어서도 차로도 오를 수 있다. 우거진 나무 숲 사이를 걷는 것을 권하지만 모기에 취약한 이들이라면 차로 가는 권한다.

한여름 한껏 독 오른 모기들의 습격이 강하다. 주차 걱정도 필요 없다. 절 입구에 널따란 주차 공간이 따로 있다.
절 입구에 들어서면 이 작은 절에 왜 왔을까 싶을 만큼 보이는 것이 없다. 울퉁불퉁 제멋대로인 계단 끝에 서 있는 누각 하나가 전부인 듯 보이기 때문. 계단은 자연석으로 만든 108계단을 올라가면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던 건물들이 나타난다.

계단 아래에서 다솔사의 전부인 듯 보였던 누각은 대양루다.
조선 영조 24년(1748년)에 지은 건물로 다솔사에 현존하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됐다.
아래위층의 높이는 모두 13m. 36개의 아름드리 기둥이 몸 전체를 받치고 있다. 108개의 돌계단이 놓이기 전까지는 이 누각 아래를 통해 절집으로 들어섰다고 한다.
지금은 누각 1층을 막아 창고로 사용하고, 2층은 승려들의 수도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누각 옆으로 돌아 절 마당으로 들어서면 적멸보궁과 응진전이 보인다. 응진전은 건물이 낡아 1930년 만해 한용운 선사가 다시 지은 건물이다.
다솔사에는 만해와 연관된 이야기가 많다.
첫 번째는 만해와 항일운동에 대한 얘기다.
만해가 머물 당시 다솔사에는 불교항일구국운동의 중심 역할을 한 ‘만당’이라는 단체가 결성됐다. 만해는 만당의 대표를 맡아 항일운동에 앞장섰다. 때문에 다솔사는 영남 지역 불교항일운동의 중심지가 됐다.

당시 만당의 일원이었던 효당 최범술 스님이 후에 이곳을 찾은 김동리에게 중국의 부처에게 공양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소신공양(燒身供養)’에 대해 이야기해준 것이 계기가 돼 소설 ‘등신불’이 세상에 나왔다고 전해진다.

김동리가 「등신불」을 쓴 곳도 다솔사 요사채이다.

두 번째는 다솔사 요사채 마당에 있는 편백나무에 대한 얘기다.

1939년에 심었다고 전해지는 이 나무는 김법린, 최범술 등 후학들이 만해의 회갑 축하연을 연 뒤 기념으로 심은 금백나무다. 당시 15그루를 심었으나 지금은 7그루만 남아 있다.
세 번째는 응진전 벽면의 그림이다. 응진전을 바라보고 왼쪽으로 돌아가면 원효대사의 깨달음과 달마대사와 혜가 이야기를 그려 넣은 벽화를 볼 수 있다. 이는 참여불교를 주장한 만해선사가 이곳에 머물렀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처럼 역사적인 사실이 곳곳에 배어 있는 다솔사는 차의 명가이기도 하다. 효당에 의해 전해진 다솔죽로차는 지금도 만들어지는 명차.

다솔사 부도탑 뒤편에 있는 5000여평의 야생 차밭에서 수확한 잎으로 만들어낸다. 때문에 다솔사는 깃들어 있는 봉명산이 장군처럼 품이 넓어 많은 중생을 거느린다는 뜻의 ‘다솔’과 좋은 차를 가진 곳이라는 ‘다솔’의 뜻을 동시에 품고 있다.

문의 : 다솔사 055-853-0283

# 주변 볼거리
1. 삼천포마리나
사천시 송포동에 자리한 삼천포마리나는 해양 스포츠 공간이다.

이곳에 정박해 있는 요트는 모두 개인 소유이기 때문에 일반인이 탈 수는 없다. 이곳에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은 모터보트와 수상스키, 윈드서핑이다.

여름이 되면 바나나보트를 비롯한 다양한 수상 스포츠도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서 모터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서면 창선·삼천포대교가 머물고 지나는 늑도까지 돌아온다.

시속 70km로 달리며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운 바다를 시원하게 즐길 수 있으니 시도해볼 만하다. 5~7인 탑승 가능하며 승선료는 7만원선.

문의 : 055-835-2525, www.3004marina.co.kr

2. 대방진굴항
사천시 대방동에 자리한 대방진굴항은 창선·삼천포대교 옆에 자리하고 있다.

경상남도 지정문화재자료 제93호인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서진하는 왜군을 상대하기 위해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숨겨두었던 곳으로 더 유명하다.

고려시대에는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굴항이 설치되었다. 지금처럼 잘 정비된 굴항이 만들어진 것은 조선시대 말 순조 때로 2척의 전함과 3백 명의 수군병력이 상주하고 있었다 한다. 지금도 대방진굴항은 포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3. 선진리성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에 자리한 선진리성은 사천만 중간에 자리하고 있다.

구릉진 지형을 이용해 만든 토성으로 정유재란 때 왜군에게 패해 이곳이 왜군의 기지가 되기도 했다. 선진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성은 수군이 주둔하던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이 성의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왜군과 싸워 이긴 사천해전이 있었다. 1918 년경 무술전투 당시 왜장이던 도진의홍의 후손들이 성터 일부를 사들여 공원으로 만들고 벚나무 1000여 주를 심었다. 지금 선진리성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것이 당시 심은 벚나무들이다.

# 맛집
사천시에는 횟집 단지가 많다. 싸고 푸짐한 회를 먹으려면 삼천포어시장으로 가자.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이곳은 굳이 회를 사먹지 않더라도 재미난 구경도 많다.

# 잠잘 곳
비봉내마을( www.beebong.co.kr )에서 민박할 수 있다. 가격은 1박에 3만~5만원. 인원에 따라 달라진다. 아침식사는 제공하지 않으나 인근의 맛있는 식당을 연결해준다.

삼천포대교의 야경을 즐길 수 있는 삼천포해상관광호텔(055-832-3004, www.3004hotel.com )도 좋다.

# 찾아가는 길
남해고속도로 사천 방향으로 달린다. 비봉내마을로 먼저 가려면 곤양 IC로 들어간다. 곤양IC에서 곤양 방면으로 우회전에 주욱 달리면 이정표가 잘 나와 있다. 곤양 IC에서 가까워 헤맬 걱정 없다.

[글ㆍ사진 : 순천광양교차로 / 최명희 기자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