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하루 해가 짧은 강원도 정선 나들이

하루 해가 짧은 강원도 정선 나들이

by 운영자 2010.04.30

‘장’ 구경하고, 레일바이크 타고
“따라 갈래, 엄마! 응? 따라 갈게.”


5일마다 한번씩 벌어지던 어린 시절 우리집 풍경.
장날이면 따라 가려는 나와 데려가지 않으려는 엄마의 실랑이가 아침부터 이어졌다. 엄마는 대부분 혼자, 몰래 장에 다녀오셨지만 이따금 나를 데리고 가실 때는 채비 전부터 잔소리가 시작됐다.

“엄마 손 꼭 잡고. 엄마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뭐 사달라고 떼쓰면 그 자리에 그냥 두고 올 거야.” “시끄러우니까 엄마한테 뭐 막 물어보지 말고. 아무거나 막 만지지 말고. 알았지?” 몇 번씩 이어진 같은 잔소리는 도착할 때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장날은 비단 나에게뿐 아니라 모두에게 ‘축제’ ‘잔칫날’이나 다름없었다. 사방의 진기하고 재미난 사람과 물건이 다 모인 자리였으니.

그때의 그 왁자한 장 구경을 강원도 정선 5일장에서는 ‘여전히’ 할 수 있다. 할머니가 텃밭에서 직접 기른 채소, 각설이들의 타령, 정선아리랑 구성진 가락, 맛난 먹을거리가 정선 5일장에 즐비하다. 어디 그뿐인가. 기찻길 위를 달리는 레일바이크는 정선의 또 다른 즐거움.
강원도 정선, 하루 해가 짧기만 하다.
[사진설명 : 자연이 빚은 수채화 ‘병방치’ ‘뱅뱅 도는 산길 고개’란 뜻의 고갯길 병방치. 병방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자연의 놀라움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병방치는 굴암리에서 읍으로 통하는 병방산의 고개 길로 험준한 절벽 사이를 36굽이 돌고 돌아 천층 절벽의 병방벼루를 통과해야 하고 아래로는 깊고 푸른 물로 이어져 나는 새도 쉬어가고, 다람쥐도 한숨 쉬는 석경이다.]

산골 장터의 정 듬뿍 담고 달린다
강원도 정선 5일장ㆍ병방치ㆍ레일바이크 체험


한반도의 척추 태백산맥의 중심에 있는 고을, 정선. 고립무원의 두메산골에서 탄광개발의 중심지로, 다시 국민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1박2일에도 소개돼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 매달 2, 7일 열리는 정선5일장으로 달려갔다.

정선에는 2가지가 서 있다. 하나는 산이요, 하나는 장이다.
한반도의 중추 태백산맥을 관통하는 고을. 일찍이 ‘동국여지승람’에는 ‘정선에서 바라보는 하늘이란 마치 깊은 우물에 비치는 하늘만큼이나 좁다’며 정선의 가파른 산세를 강조했다.

이 고립무원 두메산골의 또 다른 명물은 15년 전까지만 해도 물물교환이 이뤄졌던 5일장이다. 매월 끝자리 2, 7일이면 정선5일장에는 고랭지 기후가 키운 신토불이 산나물과 채소가 감질나게 비어져 나온다.
■ 시골 인심 담뿍 ‘정선 5일장’
정선5일장은 정선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정선읍내에서 펼쳐진다. 1966년 2월 17일부터 열린 장은 매달 2, 7, 12, 17, 22, 27일에 열린다.

면적 7600㎡ 시장 거리 양편으로는 호미·쇠고랑 등 농기구를 비롯한 각종 물품을 진열한 230개 상점들이 있고 길 가운데에는 160여 개의 농산품 노점좌판들이 늘어선다.

40년 넘게 정선5일장에서 장사를 한 최정숙(71)할머니는 “31살부터 강냉이를 집에 심어가지고 쪼개지고 댕기미.
그때는 집집마다 농사지은 걸 이고 댕겼어. 장에서 농사지은 거 팔아 아들, 딸 다 가르켰어”라고 말한다. 최 할머니처럼 직접 농사를 지어 장에 나오는 상인에게는 ‘신토불이증’ 목걸이가 걸려있다.

최달순 정선읍장은 “1999년부터 정선5일장 특별열차를 운행해 재래시장 활성화에 힘을 기울였죠. 무엇보다 정선의 자랑인 산나물과 황기 같은 특산물을 믿고 살 수 있도록 신토불이 상인 인증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힌다.

보슬보슬하게 고개를 내민 봄나물이 수놓은 시장 한가운데에서는 정선아리랑 민요마당, 전통음식 체험, 마술공연 등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된다. 산나물 향기에 취하고 전통가락에 마음을 빼앗기면서 5일장의 하루가 무르익는다.
[사진설명 : 신나는 레일바이크. 정선군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총 7.2km 구간을 운행하는 레일바이크. 가족끼리 발맞춰 굴리다 보면 사랑도 추억도 더 쌓인다. 레일바이크란 탑승객이 페달을 이용하여 철도레알 위를 시속 15~20km의 속도로 운행할 수 있도록 제작한 철로자전거다.]

■ 레일바이크로 맥 훑고, 정선아리랑으로 혼 담다
정선5일장에서 점심시간을 보내고 난 뒤에는 정선의 맥을 훑는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폐선된 구절리역부터 아우라지역까지 운행되는 레일바이크는 산, 들, 강을 돌아 정선의 마을을 한눈에 담아가는 일정이다. 편도 7.2km 레일바이크에 오르면 석탄을 나르던 철로 그대로 터널을 지나고 강을 건넌다.

아우라지역은 정선아리랑 기원설화 근거지인 정선군 북면 여랑리 아우라지나루터 인근에 있다. ‘아우라지’는 물살이 빠르고 힘차 남성성(양수)을 지닌 오대산 쪽의 ‘송천’과 물살이 느리고 젖빛인 여성성(음수)를 띤 태백산맥의 ‘골지천’이 ‘어우러진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아우라지에서 떠내려 보낸 뗏목은 영월에서 묶여지면서 커지고, 기나 긴 한강물을 따라 송파나루를 거쳐 마포나루에 다다르게 된다.

뗏목을 타고 가던 사공과 나물 캐던 이 지방 처녀가 주고받은 그리움은 정선아리랑의 중요한 노랫말을 잉태시켰다. 특히 강을 따라 흘러가 버린 바람둥이 총각사공을 연모하다 물에 빠져 죽은 여랑처녀의 한은 아우라지 나루터의 동상으로 세워졌다.

3000여수에 달하는 가사로 전해지는 정선아리랑은 우리나라 아리랑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신을 부르는 소리’로 평가받는 정선아리랑의 발성은 해발 1000m 이상의 산봉우리가 즐비한 정선에서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뿜어내는 소리다.

정선까지 와서 이 소리를 놓친다면 억울할 만도 할 것. 정선5일장 날 오후 4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정선문화예술회관에서 ‘정선아리랑극’ 상설공연이 펼쳐진다. 정선아라리 특유의 유장한 가락과 구성진 사투리가 다양한 현대 음악과 만나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내고야 만다.

■ 뱅뱅 도는 산길 고개 ‘병방치’
KBS에서 방영된 1박2일 정선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병방치였다. 산모롱이 뽀로로 돌아 물이 흐르는 자연이 만들어놓은 아름다움이 브라운관 넘어서도 전해지던 곳.

병방치(兵防峙)는 ‘뱅뱅 도는 산길 고개’란 뜻의 고갯길이다. 강원도 정선군 북실리 병방산(해발 861m)에 있다. 그 옛날 귤암리 사람들이 정선읍으로 향할 때 넘나들던 길이다.

정상 못 미쳐 만들어 놓은 전망대에 오르면 조양강이 휘감아 도는 물돌이 마을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저 멀리 나팔봉과 성마령, 청옥산, 가리왕산 등의 연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모습도 한 폭의 수채화다.

정선군청에서 불과 10분 거리에 위치한 병방치는 병방산 전망대에 서면 그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선군 북면 여량리에서 발원한 조양강이 만들어 놓은 작품이 기막히다. 혹자는 ‘한반도 지형’ ‘조롱박’처럼 생겼다고 말하지만 마을사람들은 ‘소불알’이라 부른다. 그 옛날 도로가 생기기 전 뗏목을 이용할 때 이곳에서 잠시 쉬어갔다고 해서 ‘쉬기대’ ‘휴기대’라고도 불린다.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사연을 품은 채 유유히 흐르는 조양강이 아스라하고, 강줄기를 따라 휘감아 도는 자동차길도 호젓하다. 저 멀리 나팔봉과 성마령, 청옥산, 가리왕산 등의 연봉이 줄줄이 이어진 모습도 장관이다.

가는 길 내내 병풍처럼 둘러친 절벽에는 동강할미꽃 군락지가 있다.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사는 동강할미꽃은 이곳에서만 서식하는 세계적인 희귀식물. 1월부터 봉우리가 맺혀 3월 중 꽃을 피운다. 4월께 축제가 열리면 사진을 찍고 채취하려는 인파로 한바탕 몸살을 앓는다.
[사진설명 : 동강 할미꽃 . 동강할미꽃 자생지로 유명한 정선읍 귤암리 동강변. 동강 구비를 따라 뼝대(석회암절벽)의 동강할미꽃이 수줍은 듯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절벽 사이 꽃을 피운 할미꽃은 사진작가들의 단골 모델이 된다]
[사진설명 : 만항재 야생화 탐방로.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영월군 상동읍 그리고 태백시의 경계를 이루는 지점이 만나는 해발1330m의 만항재 야생화 탐방로를 산책하는 관람객]
[사진설명 : 짚신 자동차? 정선 5일장 짚신으로 만든 자동차를 타며 즐거워하는 아이. 정선 5일장은 사고 파는 것뿐만 아니라 체험거리도 다양하다.]
[사진설명 : 정선 5일장 신토불이 나물. 텃밭에서 기른 달래를 가지고 나온 할머니. 정선 5일장은 직접 농사를 지어 장에 나오는 상인에게 ‘신토불이증’ 목걸이를 준다]
[사진설명 : 장터의 풍성한 먹을거리. 여느 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장 구경의 으뜸은 먹을거리다. 정선 5일장에서 만나는 배추전. 강원도 고랭지 배추를 전으로 맛본다. 아삭하고 단 맛이 일품인 배추전]

[순천광양 교차로 최명희 기자 /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