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소설 속 그곳> 신경숙 작가의 ‘부석사’

<소설 속 그곳> 신경숙 작가의 ‘부석사’

by 운영자 2010.06.11

부석(浮石), 뜬 돌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간격이 있다.

‘국민 여동생’ 문근영이 최근 종영한 드라마 <신데렐라언니>에서 여동생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고 한뼘 성장했다는 기사를 인터넷 뉴스로 읽었다. ‘국민 여동생’ ‘국민 가수’ ‘국민 고모’까지 참 재미있는 애칭이지 싶다.

책꽂이에 얌전히 꽂힌 신경숙 작가의 책을 보다 작가 신경숙도 단연 ‘국민 작가’라고 칭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 작가’ 신경숙의 책을 꺼내들고 책장을 넘긴다.

제목은 <부석사>. 부석사 안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과 은행나무길이 더 유명한 곳. 하지만 ‘부석(浮石)’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알면 더 애잔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신경숙의 <부석사>는 2001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이자 작가 스스로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의 이미지에 가장 가깝다고 꼽는 작품이다.

소설 속의 ‘그녀’와 ‘그’는 1월 1일 부석사를 향해 여행을 떠난다. 두 사람은 같은 오피스텔에 사는 이웃사촌이고, 각자 실연의 아픔을 지니고 있다.

1월 1일에 만나기 싫은 사람과의 일방적인 방문 약속이 잡혀 있으며, 상처받은 경험 때문에 공격 성향이 강한 한 마리의 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모른 채 연결돼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막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두 남녀는 결국 부석사에 닿지 못한다. 길을 잃고 헤매고 만다. 헌데 책의 제목이 <부석사>인 것은 아마도 부석사의 부석 때문일 것 같다.
[사진설명 : 부석사 무량수전의 불상. 법당 정면이 아니라 왼쪽 벽에 앉아 있다. 그 까닭은 무량수전이 서방 극락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의 법당이기 때문이다. 불상이 서쪽을 보도록 배치됐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 되고 아름다운 건축물인 부석사 무량수전의 뒤편 바위에 맷돌처럼 놓여 있는 ‘부석(浮石)’의 전설을 <삼국유사>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661년(문무왕 1년) 불교 공부를 위해 당나라를 향한 의상은 등주(登州) 해안에 도착해 한 신자의 집에 머물게 됐다. 그런데 그 신자의 딸인 선묘가 의상을 사모해 결혼을 청한다.

의상은 이를 받아들이는 대신 선묘의 불심을 일깨운다. 선묘는 “영원히 스님의 제자가 되어 스님을 돕겠다”는 원을 세웠고, 의상은 종남산에 있는 지엄을 찾아가 화엄학을 공부했다.

귀국하는 길에 의상은 다시 선묘의 집을 찾아 그동안 베풀어 준 편의에 대해 감사를 표한 뒤 바로 배에 올랐다. 선묘는 의상을 위해 준비한 법복과 집기를 전하기 위해 급히 선창으로 달려갔으나 배는 이미 떠났다.

그러자 선묘는 떠나는 배를 향해 상자를 던져 의상에게 전하고는 바다에 몸을 던져 의상이 탄 배를 호위하는 용이 됐다. 의상이 신라에 도착한 뒤 화엄을 펼 수 있는 땅을 찾아 봉황산에 이르렀으나 도둑 무리 500명이 살고 있었다. 이때 용은 커다란 바위로 변해 공중에 떠서 도둑들을 물리치고 절을 창건하게 했다.

부석사의 뜬 돌은 지금도 실과 바늘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떠 있다고 해, 많은 관광객으로 하여금 눈을 부릅뜨도록 만든다.

중력의 법칙을 이겨낸 뜬 돌의 존재는 의상대사와 선묘가 지닌 신통력의 상징이면서 아무리 해도 닿을 수 없는 사람 사이의 거리를 생각하게 한다. 소설 속 두 남녀도 의상과 신묘처럼 서로의 짝과의 맺어짐은 불가능했다. 마치 부석사의 뜬 돌처럼.
[사진설명 : 가을 단풍이 한창이면 부석사 다다르는 길은 이토록 아름답다.]

‘그녀’의 남자 친구 P는 다정다감한 연인이었지만 어느 날 한마디 통보도 없이 다른 여자와 약혼했다. 그러고서도 자신을 잡지 않은 그녀를 책망하는 말을 다른 사람에게 퍼트린다. 더욱이 유부남인 P는 그녀의 생일에 꽃바구니를 보내고 1월 1일 집에 찾아온다고까지 했다.

‘그’의 여자 친구 K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군대에 간 그가 K의 집을 찾아갔을 때 K는 그와 함께했던 연애의 습관을 다른 남자를 상대로 반복하고 있었다.
[사진설명 : 부석사 앞마다엔 지금 꽃이 활짝 피었다.]

소설 <부석사>는 타인과의 관계를 생각게 한다. 바짝 밀착돼 있을 것 같지만 미묘한 틈이 있는 타인과의 관계. 누군가를 턱없이 믿었다가 배신당한 경험, 진심을 내놓지 않는 연인에 대한 오해와 미움. 뜬 돌의 틈처럼 나와 타자 사이에는 분명한 틈이 있다.

아까 말했듯 이들은 부석사로 가지만 부석사에 도착하지 못한다. 승용차가 지방도로 접어드는 순간 부석사는 멀어지고 난데없이 눈 속 낭떠러지에 도달한다. 사람 사이가 그렇듯이 이들의 부석사행과 부석사 사이에도 미묘한 틈이 있다.

부석사 |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8 ☎ 054-633-3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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