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충남 부여 ‘궁남지’ 연꽃

충남 부여 ‘궁남지’ 연꽃

by 운영자 2011.08.12


소박한 아름다움
여름은 화려하다. 색색의 꽃이 없어도 부서지는 태양, 사람들의 활기만으로 여름은 왁자하다.

‘여름’에 들떠있는 사람 틈에서 조용한 곳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추천하고 싶은 곳이 부여다.

일찍이 작가 유홍준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부여를 “인생의 적막을 느끼면서 바야흐로 적조의 미를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중년의 답사객에게 제격인 곳”이라고 했다.

세상의 화려함 속에서 호올로 고요를 느낄 수 있는 곳 부여로 떠난다. 지금 부여의 궁남지에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오롯이 담긴 연꽃마저 환하다.

그렇다고 고요를 느끼고 싶은 이들만 부여를 찾으라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면 부여 역사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있으니 누구와도 좋다. 여행은 만들어가기 나름이니.
백제의 숨결을 따라 걷다
충남 부여 ‘백제’ 나들이


드라마 <계백>이 인기다. 그간 백제는 잊혀진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라마 속의 사극들도 백제가 주무대인 것은 드물었다. 그래서 드라마 <계백>의 얘기는 반갑다.

백제는 700년 가까운 역사를 갖고 있지만 화려함보다는 비장함과 애잔함으로 다가오는 나라다. 의자왕, 낙화암, 삼천궁녀, 계백 장군, 황산벌…. 하나같이 어둡고 슬프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백제는 그렇게 힘없고 나약한 나라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풍요롭고 아름다운 문화를 이룩했던 나라였다.

백제가 마지막 123년을 보낸 곳은 사비로 지금의 부여다. 부여에는 화려했던 백제와 망해가는 백제를 함께 그려볼 수 있는 유물과 유적들이 모여 있다. 부소산에도 올라보고 유장하게 흐르는 백마강의 황포돛배도 타보자. 아름다운 궁남지의 연꽃도 빼놓을 수 없다. 자, 백제의 숨결을 더듬어가자.
■ 아름다운 연꽃 한아름 ‘궁남지’
백제를 만나기 위해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궁남지. 궁남지는 백제라는 이름보다 ‘연꽃’이라는 이름이 더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궁남지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연못으로 경주 안압지보다 40년 먼저 생겼다.

궁남지는 말 그대로 ‘왕궁 남쪽의 연못’을 가리키는데, 백제 무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에는 백제 무왕 때인 634년 ‘궁 남쪽에 못을 파고, 못 언덕에 수양버들을 심고, 못 가운데 섬을 만들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곳에서 무왕은 왕비와 함께 뱃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1만여평이나 되는 연못 한가운데 포룡정이란 정자가 섬처럼 떠있고, 다리로 이어져 있다. 이러한 백제의 정원과 연못을 조성하는 기술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정원문화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궁남지의 연꽃은 무려 39만6700여㎡의 거대한 부지에 그득 심어져 있다. 2001년 6월 연꽃을 심은 이곳은 이제 부여의 ‘대표 여행지’가 됐다.

궁남지에는 백련·홍련 등 색색의 연과 밤에는 잠을 자는 수련, 가시연, 왜개연 등 다양한 종의 연꽃이 있다.
그 중에는 전설 중의 전설 ‘오가 하스’ 연꽃도 있다. 오가 하스는 1951년 일본의 식물학자 오가 이치로 박사가 2000년 전 유적지에서 발굴한 연 씨앗을 발아시키는 데 성공한 연꽃이다.
연 씨앗은 생명력이 길다고 한다. 2000년에서 길게는 1만년에도 이른다고 한다.
연꽃이 곱게 핀 연못 사이를 걸으면 정말 꽃 위를 걷는 듯하다. 연못에는 연꽃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나무다리가 사이사이에 놓여 있다. 하나하나 연꽃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린아이 얼굴만큼이나 큼직하고 탐스러운 홍련은 도도하게 꽃대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다.바람이 분다.
우산으로 써도 무방할 만큼 커다란 연잎들이 훌러덩 뒤집어진다.

은은한 연꽃의 향기도 퍼져난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 했던가. 은은한 연향에 은근히 취한다.
연꽃은 9월까지 이어진다. 연꽃을 보려거든 길을 서두를 것. 잎이 작은 수련류는 이른 새벽 꽃봉오리를 터뜨렸다가 햇살이 정수리를 쪼는 오후가 되면 꽃잎을 닫는다.

연꽃 구경에 빠져있으면 ‘포룡정’이 나온다.
궁남지의 중심인 커다란 연못 가운데 섬이 있고 그 위에 ‘포룡정’이란 정자가 있다. 기다란 목조 다리를 따라 걸어 들어갈 수 있다.

포룡정은 1971년 연못을 복원하면서 만들었는데 현판에 ‘국무총리 김종필’이란 서명이 있다. 부여 출신의 당시 국무총리 김종필씨가 현판 글씨를 쓴 것.

‘포룡정’(抱龍亭)이란 이름은 서동 탄생설화를 반영해 붙였다. 백제 무왕의 아버지인 법왕의 시녀였던 여인이 연못가에서 홀로 살다 용신과 통해 아들을 얻었는데, 그 아이가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인 선화공주와 결혼한 서동이며, 그게 곧 무왕이라는 설화다. 포룡정은 용을 품은 정자, 즉 서동을 잉태한 정자라는 뜻인 것이다.

섬과 포룡정 그리고 버드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이 일품이다. 연못 둘레를 따라 야생화가 예쁘게 피었고 황포돛배도 떠다닌다.

걷는 게 가장 좋지만 워낙 넓어 모든 곳을 걸어 다니려면 힘들다. 입구에 무인 자전거 대여소가 있으니 이용해도 좋을 듯.
■ 백제석탑의 완성미, 정림사지 5층석탑
궁남지에서 벗어나면 차로 5분 거리 내에 정림사지가 있다.

정림사지 5층석탑(국보 제9호)은 백제 석탑의 완성미를 볼 수 있는 작품으로 목탑에서 석탑으로 넘어오던 초기 작품으로 조형미가 뛰어나다. 높이 8.3m의 장중한 석탑이지만 둔중하지 않고 날렵하면서도 위엄을 갖췄다. 연대기로는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보다 앞선다고 한다.

정림사지 부근에는 낙조가 아름다운 구드래 나루가 있다. 백마강이 휘감아도는 구드래 나루터 주변 둔치에는 수십만평 잔디들판이 광활하다. 잔디밭 사이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길은 자전거를 타고 나들이하기 좋겠다.

이밖에 의자왕의 가묘가 있는 백제왕릉군(능산리 고분), 2층 극락전과 고려탑이 아름다운 무량사, 강변에 있는 4개의 정자 등 볼거리는 무궁무진하다.

<백제 / 천오백년, 별로 / 오랜 세월이 아니다 / 우리 할아버지가 / 그 할아버지를 생각하듯 / 몇번 안가서 / 백제는 우리 엊그제, 그끄제에 있다…>
부여출신 시인 신동엽의 ‘금강’처럼 부여에선 백제의 숨소리가 들린다.
■ 백제의 흥망을 따라 걷다, 부여 부소산성길
부여의 부소산성은 백제의 흥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부소산성은 538년 지금의 공주인 웅진에서 사비(부여)로 천도한 이후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백제를 지켜낸 산성이다.

산성 안에 들어가면 한껏 푸르른 잎을 틔워내고 있는 나무들을 따라서 걷을 수 있다. 숲길 끝에서는 고란사와 낙화암을 만날 수 있다.

고란사에는 마시면 젊어진다는 신비의 약수도 있으니 잊지 말고 맛보자. 낙화암은 의자왕과 삼천 궁녀의 전설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백마강이 흐르는 낙화암에서 봄을 느끼며 백제의 찬란함을 상상해보는 걷기 여행도 즐겁다.

대중의 부여답사 1번지인 부소산성. 흔히 삼천 궁녀의 전설이 걸린 낙화암과 고란사를 둘러보면 전부인 것처럼 받아들인다. 하지만 사비시대의 진산(鎭山)이면서 백제 ‘최후’가 부조된 부소산성의 진경은 ‘길’이다.

1시간30분 남짓 걸리는 부소산성 길은 유홍준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세상 천지에 이렇게 편안한 산책길이 없다”. 부소산이란 이름을 낳은 사철 무성한, 잘생긴 소나무들이 동행하는 산책길은 곧 백제 역사로의 통로다. 곳곳에 몸을 드러낸 나지막한 토성, 영일루·반월루·서북사지 등에서 담는 역사. 특히 낙화암에서 고란사까지의 길은 빼어난 백마강 전망을 선사한다.

[글ㆍ사진 : 순천광양교차로신문사 / 최명희 기자 cmh@sgs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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