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국의 맛이 익는다
전주, 한국의 맛이 익는다
by 운영자 2011.10.21
‘한국음식관광축제’ … 한식 주제로 한 행복한 ‘맛’ 축제
‘전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음식’이다. 마이클 잭슨도 감탄했다는 전주비빔밥에, 어느 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서민들 시린 속 풀어주는 전주콩나물국밥, 막걸리 하나만 시켜도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찬이 나온다는 전주막걸리까지.
오죽이나 ‘유명’했으면, 그냥 비빔밥이나 콩나물국밥이 아닌 ‘전주’가 함께 붙어 고유명사가 되었을까?
맛의 고장 전주에서는 오는 24일까지 ‘한국음식문화축제’가 열린다.
한국음식관광축제는 우리의 문화와 맛을 알리는 자리로 한국의 문화 원류를 담아낸 장류, 젓갈, 주류, 장아찌와 세계 18개국의 와인, 치즈, 햄, 요구르트 등을 한자리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입맛 당기는 ‘한국의 맛’ 제대로 보러, 이번 주 전주 나들이해보자.
오죽이나 ‘유명’했으면, 그냥 비빔밥이나 콩나물국밥이 아닌 ‘전주’가 함께 붙어 고유명사가 되었을까?
맛의 고장 전주에서는 오는 24일까지 ‘한국음식문화축제’가 열린다.
한국음식관광축제는 우리의 문화와 맛을 알리는 자리로 한국의 문화 원류를 담아낸 장류, 젓갈, 주류, 장아찌와 세계 18개국의 와인, 치즈, 햄, 요구르트 등을 한자리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입맛 당기는 ‘한국의 맛’ 제대로 보러, 이번 주 전주 나들이해보자.
비빔밥 한 그릇 막걸리 한 사발 … 든든하게 배 채우고 전주 산책
‘한국음식관광축제’서 즐기는 한국의 맛, 전주의 멋
어느 고장마다 유명한 것이 있기 마련이다. 헌데 전주는 더더욱이나 고유명사가 된 것이 많다. 전주한옥마을도 그렇고 전주비빔밥, 전주막걸리가 그렇다.
자, 그럼 여기서 문제 하나. 앞에 나열한 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렇다. 바로 ‘우리 것’이라는 것. 이 모든 것이 전통을 잘 지키고 서서히 발전시키고 있다는 것이 그 공통점이다.
전주비빔밥은 평양냉면·개성 탕반과 함께 조선 3대 음식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예부터 그 맛이 정평이 나 있던 우리의 맛.
1980년대 전주비빔밥이 ‘향토음식’ 바람을 타고 서울 중심부에 먼저 상륙하면서부터 전주비빔밥이 그 유명세를 더하게 됐다.
또 1990년 대한항공 기내식으로 채택되면서 한국의 대표 음식이 됐다. 1990년대까지 비빔밥을 ‘음식물 쓰레기’처럼 느꼈던 일본인들도 2000년대 한류 바람을 타고 비빔밥을 즐겨 먹게 됐다.
이제 전주비빔밥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한국의 맛’이 된 셈이다.
서민들의 가문 지갑을 위로하고 팍팍한 삶을 달래줬던 전주막걸리도 전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맛과 전통이다.
전주비빔밥에 비해 입소문이 늦기는 했지만 아는 이들 사이에서는 전주막걸리의 푸진 맛과 인심은 소문이 자자했다. 전주 막걸리의 전통은 도시의 전통만큼이나 깊다. 곡창의 중심지였던 만큼 일찍부터 술을 빚어왔을 것이고, 그 맥은 1970년대 막걸리 전성시대를 거쳐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1970년대 청년기를 보낸 50~60대 전주 사람이라면 옛 도청 뒷골목에 줄줄이 늘어서 있던 막걸리집들을 기억할 것이다.
막걸리 한 주전자를 시키면 안주가 2층으로 쌓여 나왔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막걸리가 사양길에 접어든 후에도 전주 막걸리의 전통은 그 명맥을 이어왔고, 지금의 막걸리골목들로 여전히 성시를 이루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삼천동 막걸리골목이다. 50여곳에 이르는 막걸리집들이 몰려 있어 그야말로 막걸리집들로 불야성을 이룬다.
전주 막걸리집의 장점은 저렴한 술값과 푸짐한 안주에 있다. 막걸리 한 주전자를 시키면 값을 따로 받지 않는 안주가 한 상 가득 나온다.
전주비빔밥, 전주막걸리 등 우리 맛을 다양한 프로그램의 축제로 만든 ‘2011 한국음식관광축제’가 마련된다.
한국의 문화와 맛에 흠뻑 젖어보는 ‘2011 한국음식관광축제’가 지난 20일부터 오는 24일 전주월드컵경기장과 한옥마을 일대에서 열린다.
1970년대 청년기를 보낸 50~60대 전주 사람이라면 옛 도청 뒷골목에 줄줄이 늘어서 있던 막걸리집들을 기억할 것이다.
막걸리 한 주전자를 시키면 안주가 2층으로 쌓여 나왔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막걸리가 사양길에 접어든 후에도 전주 막걸리의 전통은 그 명맥을 이어왔고, 지금의 막걸리골목들로 여전히 성시를 이루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삼천동 막걸리골목이다. 50여곳에 이르는 막걸리집들이 몰려 있어 그야말로 막걸리집들로 불야성을 이룬다.
전주 막걸리집의 장점은 저렴한 술값과 푸짐한 안주에 있다. 막걸리 한 주전자를 시키면 값을 따로 받지 않는 안주가 한 상 가득 나온다.
전주비빔밥, 전주막걸리 등 우리 맛을 다양한 프로그램의 축제로 만든 ‘2011 한국음식관광축제’가 마련된다.
한국의 문화와 맛에 흠뻑 젖어보는 ‘2011 한국음식관광축제’가 지난 20일부터 오는 24일 전주월드컵경기장과 한옥마을 일대에서 열린다.
행사 기간에는 세계 각국의 발효 식품을 만날 수 있는 ‘전주국제발효식품엑스포’, 전주비빔밥과 한정식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2011 전주비빔밥축제’도 함께 개최된다.
한국음식관광축제는 우리의 문화와 맛을 알리는 축제도 한국의 문화 원류를 담아낸 장류, 젓갈, 주류, 장아찌와 세계 18개국의 와인, 치즈, 햄, 요구르트 등을 한자리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세대를 이어온 요리 명인들의 특급 조리비법을 눈앞에서 직접 배울 수 있는 ‘한식쿠킹클래스’도 눈길을 끈다.
홍보대사인 장나라ㆍ윤손하와 사찰음식 4대 천왕인 적문 스님·대안 스님·우관 스님·정관 스님과 비빔밥 명인 김년임씨 등이 나서 특급 조리비법을 전수한다.
한식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한식문화관’과 강정, 호떡, 만두, 순대, 어묵의 달인들이 선보이는 현란한 조리기술을 즐기는 ‘달인관’도 마련된다.
한국음식관광축제는 우리의 문화와 맛을 알리는 축제도 한국의 문화 원류를 담아낸 장류, 젓갈, 주류, 장아찌와 세계 18개국의 와인, 치즈, 햄, 요구르트 등을 한자리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세대를 이어온 요리 명인들의 특급 조리비법을 눈앞에서 직접 배울 수 있는 ‘한식쿠킹클래스’도 눈길을 끈다.
홍보대사인 장나라ㆍ윤손하와 사찰음식 4대 천왕인 적문 스님·대안 스님·우관 스님·정관 스님과 비빔밥 명인 김년임씨 등이 나서 특급 조리비법을 전수한다.
한식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한식문화관’과 강정, 호떡, 만두, 순대, 어묵의 달인들이 선보이는 현란한 조리기술을 즐기는 ‘달인관’도 마련된다.
한국 전통문화와 음식이 오롯이 담겨 있는 전주 한옥마을 일대의 맛집을 둘러보는 한식투어와 고추장 만들기, 떡메치기, 임실치즈 만들기, 청국장 쿠키 만들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전주국제발효식품엑스포에는 국내외 19개 국가에서 300여개의 기업이 참여해 각국이 자랑하는 발효 식품을 내놓는다.
우리나라의 된장, 고추장부터 이탈리아의 와인, 일본의 사케, 치즈, 보이차 등 우수 발효 식품이 총망라되는 세계적 규모의 엑스포이다.
와인과 사케 등을 직접 배우고 시음하는 기회도 마련된다.
한옥마을에서 23일까지 열리는 ‘2011 전주비빔밥축제’에서는 최고의 비빔밥, 한정식 요리사를 뽑는 ‘나는 쉐프다’와 일반인이 참여해 다양한 형태의 비빔밥과 한정식을 만들어보는 ‘라이브 요리경연’이 진행된다.
전주의 특산물인 미나리, 콩나물 등을 이용해 자유롭게 음식을 만드는 ‘전주 십미(十味) 경연’, 폐백음식과 한식 반찬 부문의 최고 요리사를 뽑는 경연대회도 잇따라 열린다.
음식관광축제를 둘러보며 자연스럽게 전주 곳곳을 둘러보게 되겠지만 축제와 별개로 산책을 다녀도 좋다.
고풍 어린 도시는 비빔밥이나 막걸리보다 더 진한 풍류와 문화를 곳곳에 간직하고 있다.
이씨 왕조의 발상지임을 가리키는 경기전과 그 뒤편의 한옥마을, 전동성당과 풍남문, 오목대, 전주객사, 한벽루, 덕진공원의 연꽃, 전주대사습놀이로 상징되는 소리문화, 부채와 한지 등 천년고도의 전통은 여태 살아 숨쉰다.
한옥마을을 돌아보는 것은 필수. 오목대·향교 등 문화재가 산재해 이곳만 돌아보려 해도 반나절이 걸린다.
한옥마을은 1930년을 전후로 일본인들의 세력 확장에 대한 반발로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형성됐다. 이는 일본인 주택에 대한 반대 의식의 표현이었다.
오목대에 오르면 한옥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최근엔 음식점과 카페들이 많이 들어서있어 고풍스러운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기도 좋다.
서너 시간 코스로 경기전~전동성당~풍남문~한벽당을 천천히 돌아보는 것도 괜찮다. 경기전·전동성당·풍남문은 모두 크게 보아 한옥마을에 속한 곳으로 지척에 있다.
경기전은 조선 태조의 영정을 봉안한 전각이다. 나무가 많이 우거져 사색하며 산책하기 좋은 곳.
혼불의 작가 최명희씨는 그의 단편소설 ‘만종’에서 경기전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고궁(古宮)의 묵은 지붕 너머로 새파란 하늘이 씻은 듯이 시리다. 우선 무엇보다도 그것에는 나무들이 울창하게 밀밀하였으며, 대낮에도 하늘이 안 보일 만큼 가지가 우거져 있었다.
그 나무들이 뿜어내는 젖은 숲 냄새와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며, 지천으로 피어 있는 시계꽃의 하얀 모가지, 우리는, 그 경기전이 얼마나 넓은 곳인지를 짐작조차도 할 수 없었다.”
경사스런 땅에 지어진 경기전은 조선의 창업자인 태조 이성계의 어진과 조선왕조의 역사를 보존하는 사고의 설치는 조선 왕실의 영원함을 바라는 점에서 풍패지향(豊沛之鄕) 전주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경기전 정문 앞에는 하마비가 있다. 하마비에는 “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至此皆下馬 雜人毋得入)”라고 쓰여 있다. 이곳에 이르는 자는 계급의 높고 낮음,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고 잡인들은 출입을 금한다는 뜻이다.
조선왕조의 상징인 태조어진을 봉안한 곳이어서 이 수문장의 위력은 대단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전동성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꼽힌다. 1907년 짓기 시작해 1914년에 완공된 오래된 성당으로 호남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서양 건물이다.
전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1791년 신해박해 때에 처형당한 풍남문(豊南門)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건립됐다.
이곳은 처형지인 풍남문 성벽을 헐어 낸 돌로 성당 주춧돌을 세웠다고 한다. 호남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서양식 건물로, 순교지를 알리는 머릿돌과 순교자 권상연과 윤지충, 유중철·이순이 동정 부부를 채색화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눈길을 끌고 있다.
우리나라의 된장, 고추장부터 이탈리아의 와인, 일본의 사케, 치즈, 보이차 등 우수 발효 식품이 총망라되는 세계적 규모의 엑스포이다.
와인과 사케 등을 직접 배우고 시음하는 기회도 마련된다.
한옥마을에서 23일까지 열리는 ‘2011 전주비빔밥축제’에서는 최고의 비빔밥, 한정식 요리사를 뽑는 ‘나는 쉐프다’와 일반인이 참여해 다양한 형태의 비빔밥과 한정식을 만들어보는 ‘라이브 요리경연’이 진행된다.
전주의 특산물인 미나리, 콩나물 등을 이용해 자유롭게 음식을 만드는 ‘전주 십미(十味) 경연’, 폐백음식과 한식 반찬 부문의 최고 요리사를 뽑는 경연대회도 잇따라 열린다.
음식관광축제를 둘러보며 자연스럽게 전주 곳곳을 둘러보게 되겠지만 축제와 별개로 산책을 다녀도 좋다.
고풍 어린 도시는 비빔밥이나 막걸리보다 더 진한 풍류와 문화를 곳곳에 간직하고 있다.
이씨 왕조의 발상지임을 가리키는 경기전과 그 뒤편의 한옥마을, 전동성당과 풍남문, 오목대, 전주객사, 한벽루, 덕진공원의 연꽃, 전주대사습놀이로 상징되는 소리문화, 부채와 한지 등 천년고도의 전통은 여태 살아 숨쉰다.
한옥마을을 돌아보는 것은 필수. 오목대·향교 등 문화재가 산재해 이곳만 돌아보려 해도 반나절이 걸린다.
한옥마을은 1930년을 전후로 일본인들의 세력 확장에 대한 반발로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형성됐다. 이는 일본인 주택에 대한 반대 의식의 표현이었다.
오목대에 오르면 한옥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최근엔 음식점과 카페들이 많이 들어서있어 고풍스러운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기도 좋다.
서너 시간 코스로 경기전~전동성당~풍남문~한벽당을 천천히 돌아보는 것도 괜찮다. 경기전·전동성당·풍남문은 모두 크게 보아 한옥마을에 속한 곳으로 지척에 있다.
경기전은 조선 태조의 영정을 봉안한 전각이다. 나무가 많이 우거져 사색하며 산책하기 좋은 곳.
혼불의 작가 최명희씨는 그의 단편소설 ‘만종’에서 경기전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고궁(古宮)의 묵은 지붕 너머로 새파란 하늘이 씻은 듯이 시리다. 우선 무엇보다도 그것에는 나무들이 울창하게 밀밀하였으며, 대낮에도 하늘이 안 보일 만큼 가지가 우거져 있었다.
그 나무들이 뿜어내는 젖은 숲 냄새와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며, 지천으로 피어 있는 시계꽃의 하얀 모가지, 우리는, 그 경기전이 얼마나 넓은 곳인지를 짐작조차도 할 수 없었다.”
경사스런 땅에 지어진 경기전은 조선의 창업자인 태조 이성계의 어진과 조선왕조의 역사를 보존하는 사고의 설치는 조선 왕실의 영원함을 바라는 점에서 풍패지향(豊沛之鄕) 전주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경기전 정문 앞에는 하마비가 있다. 하마비에는 “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至此皆下馬 雜人毋得入)”라고 쓰여 있다. 이곳에 이르는 자는 계급의 높고 낮음,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고 잡인들은 출입을 금한다는 뜻이다.
조선왕조의 상징인 태조어진을 봉안한 곳이어서 이 수문장의 위력은 대단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전동성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꼽힌다. 1907년 짓기 시작해 1914년에 완공된 오래된 성당으로 호남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서양 건물이다.
전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1791년 신해박해 때에 처형당한 풍남문(豊南門)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건립됐다.
이곳은 처형지인 풍남문 성벽을 헐어 낸 돌로 성당 주춧돌을 세웠다고 한다. 호남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서양식 건물로, 순교지를 알리는 머릿돌과 순교자 권상연과 윤지충, 유중철·이순이 동정 부부를 채색화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눈길을 끌고 있다.
풍남문은 전주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원래 전주부성의 사대문 중 남문으로 고려 공양왕 원년인 1389년에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1905년 조선통감부의 폐성령에 의해 사대문 중 풍남문을 제외한 삼대문이 동시에 철거된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한벽당은 한옥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상암산 기슭의 절벽을 깎아 세운 누각으로,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은 전주 8경 중 하나다.
가을이 되면 노란 은행잎으로 채색되는 전주향교는 우리나라 향교 가운데 온전히 보존된 향교 가운데 으뜸이라고 한다.
전주향교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 건물은 조선 선조 때 건립되었다고 한다.
대성전 중앙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안자, 자사, 증자, 맹자 등 다섯 성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향교에는 다섯 그루의 크고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는데, 향교 내 서문 앞 은행나무 수령이 400년이나 된다.
향교에 은행나무를 심은 뜻이 은행나무가 벌레를 타지 않듯 유생들도 건전하게 자라 바른 사람이 되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오목대는 조선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가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개경 개선길에 들려 잔치를 베풀었다는 곳이다.
새 나라 개국의 꿈을 중국 한고조 유방의 대풍가를 통해 호기롭게 불렀다고 전해지는 이곳은 함께 길을 동행했던 포은 정몽주와 갈라서게 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주에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곳이 또 있다. 전주대학교 부근 삼천변 근처에 위치한 문학대공원이 그곳.
문학대는 고려 공민왕 때 성리학자 황강 이문정이 후학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곳으로 이문정의 후손 이백유가 세운 황강서원이 바로 발아래 있다.
곤지산에 있던 것이 서원철폐령 이후 이곳으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신도시 개발 중에 청동기 고분 유적이 발굴되어 공원화되었으며, ‘마전유적지’로 불리기도 한다. 삼국시대 초기의 유적으로 고분들의 구조와 유물들을 밖에서 볼 수 있게 유리관으로 만들어 보존한 공원으로 현재 고고학적 분석이 진행 중인 상태라 한다. 아직은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유구한 시간의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국립전주박물관과 시립전주역사박물관도 둘러보자.
국립전주박물관은 전라북도 전역의 문화재와 역사유물이 보존되어 있고, 시립전주역사박물관은 이름 그대로 전주의 역사와 얼을 찾아볼 수 있다.
시간이 조금 여유롭다면 남고산성을 오르는 것을 권한다.
고덕산 줄기인 남고산에 축성된 남고산성은 901년 견훤이 쌓은 것. 성벽이 높지는 않지만 절벽 지형을 이용해 축성해서 요새로서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둘레가 총 5km 남짓하니 상당히 규모가 큰 산성이다.
남고산성 맞은편으로 조그만 봉우리가 하나 있는데 이것은 ‘만경대’다. 만경대에는 포은 정몽주의 ‘우국시’가 새겨져 있다.
이성계가 왜구 퇴치 작전 중 조상들의 고향인 전주에 들렀을 때 포은이 종사관으로 수행을 하게 되었다 한다.
그런데 지역의 원로들과 가진 잔치 자리에서 새나라 건국의 야심을 언뜻 비치는 이성계의 모습을 보고 이곳 만경대에 올라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쓴 시가 바로 ‘우국시’라 전해진다.
「동국여지승람」을 통해 전해지던 시를 영조 22년 진장(鎭將) 김의수가 암각한 것이라 전한다.
[교차로신문사 / 최명희 기자 cmh@sgsee.com ]
1905년 조선통감부의 폐성령에 의해 사대문 중 풍남문을 제외한 삼대문이 동시에 철거된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한벽당은 한옥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상암산 기슭의 절벽을 깎아 세운 누각으로,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은 전주 8경 중 하나다.
가을이 되면 노란 은행잎으로 채색되는 전주향교는 우리나라 향교 가운데 온전히 보존된 향교 가운데 으뜸이라고 한다.
전주향교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 건물은 조선 선조 때 건립되었다고 한다.
대성전 중앙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안자, 자사, 증자, 맹자 등 다섯 성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향교에는 다섯 그루의 크고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는데, 향교 내 서문 앞 은행나무 수령이 400년이나 된다.
향교에 은행나무를 심은 뜻이 은행나무가 벌레를 타지 않듯 유생들도 건전하게 자라 바른 사람이 되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오목대는 조선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가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개경 개선길에 들려 잔치를 베풀었다는 곳이다.
새 나라 개국의 꿈을 중국 한고조 유방의 대풍가를 통해 호기롭게 불렀다고 전해지는 이곳은 함께 길을 동행했던 포은 정몽주와 갈라서게 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주에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곳이 또 있다. 전주대학교 부근 삼천변 근처에 위치한 문학대공원이 그곳.
문학대는 고려 공민왕 때 성리학자 황강 이문정이 후학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곳으로 이문정의 후손 이백유가 세운 황강서원이 바로 발아래 있다.
곤지산에 있던 것이 서원철폐령 이후 이곳으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신도시 개발 중에 청동기 고분 유적이 발굴되어 공원화되었으며, ‘마전유적지’로 불리기도 한다. 삼국시대 초기의 유적으로 고분들의 구조와 유물들을 밖에서 볼 수 있게 유리관으로 만들어 보존한 공원으로 현재 고고학적 분석이 진행 중인 상태라 한다. 아직은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유구한 시간의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국립전주박물관과 시립전주역사박물관도 둘러보자.
국립전주박물관은 전라북도 전역의 문화재와 역사유물이 보존되어 있고, 시립전주역사박물관은 이름 그대로 전주의 역사와 얼을 찾아볼 수 있다.
시간이 조금 여유롭다면 남고산성을 오르는 것을 권한다.
고덕산 줄기인 남고산에 축성된 남고산성은 901년 견훤이 쌓은 것. 성벽이 높지는 않지만 절벽 지형을 이용해 축성해서 요새로서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둘레가 총 5km 남짓하니 상당히 규모가 큰 산성이다.
남고산성 맞은편으로 조그만 봉우리가 하나 있는데 이것은 ‘만경대’다. 만경대에는 포은 정몽주의 ‘우국시’가 새겨져 있다.
이성계가 왜구 퇴치 작전 중 조상들의 고향인 전주에 들렀을 때 포은이 종사관으로 수행을 하게 되었다 한다.
그런데 지역의 원로들과 가진 잔치 자리에서 새나라 건국의 야심을 언뜻 비치는 이성계의 모습을 보고 이곳 만경대에 올라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쓴 시가 바로 ‘우국시’라 전해진다.
「동국여지승람」을 통해 전해지던 시를 영조 22년 진장(鎭將) 김의수가 암각한 것이라 전한다.
[교차로신문사 / 최명희 기자 cmh@sgse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