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핏빛 단풍 짙어지는 지리산 피아골 자락

핏빛 단풍 짙어지는 지리산 피아골 자락

by 운영자 2011.10.28


가자, 마음에 ‘불’ 지피러

때 아닌 겨울 추위에 ‘오들오들’ 떨린다. 급작스러운 일에는 준비가 소홀하기 마련. 도톰한 옷을 미처 꺼내기도 전에 찾아온 추위에 마음까지 스산해진다.

이렇게 또 한 계절을 덧없이 흘러 보내는 것이 아닌가 자꾸만 아쉬운 마음이 든다. 오들오들 떨리는 것은 몸뿐이 아니다. 마음까지 시리다.

이럴 때는 고민 없이 가자. 마음에 불 지피러 가자. 노랗게 빨갛게 타는 가을 산에 오르면 마음까지 후끈 달아오른다. 추위도 잊는다. 가는 세월에 대한 무상함도 잊는다.

지리산 피아골 자락은 지금 물들어가고 있다. 게다가 이번 주는 ‘삼홍(三紅)과 함께하는 오색단풍 여행’이라는 주제로 피아골단풍축제도 열린다.

가자, 마음에 불 지피러.

‘붉게’ 타는 지리산 피아골 단풍
단풍축제ㆍ연곡사 부도 등 ‘눈 호강’
단풍이 남하하고 있다. 헌데, 단풍이 오는 속도 가을이 깊어지는 속도는 얼마나 될까? 재미삼아 잠깐 계산해보자. 서울에서 시작된 단풍이 저 아래 제주도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20일. 여기에 서울에서 제주도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440km로 그 거리를 시간으로 나누면, 곧 440km를 20일로 나누면 22km/일이 나온다.

하루에 22km씩 단풍이 아래로 아래로 이동하고 있는 셈.

이것을 다시 시속으로 바꾸면 하루는 24시간이기 때문에 22km를 24로 나누면 된다.

여기서부터는 계산기나 볼펜이 필요하다. 계산하면 0.91666667km/h로 약 0.917km/h로 하면 된다.

단풍은 걸음이 느리다. 막 걸음마를 뗀 아이들이 아장아장 걷는 속도와 비슷할 듯. 하지만 단풍이란 녀석이 걸음이 느리다고 ‘다음에, 시간 나면’하고 늑장을 부렸다간 어느새 단풍이 후두둑 져버리고 만다.

■ ‘핏빛’ 단풍으로 물든 지리산 ‘피아골’
지리산에서 이름난 단풍골은 대개 피아골과 뱀사골 두 군데를 꼽을 수 있다. 산 좀 다녔다는 이들은 단풍색은 피아골이 더 진하며 곱고, 뱀사골은 계곡이 넓고 아름답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주저할 필요가 없다. 단풍맞이는 역시 ‘피아골’이다. 헌데 피아골은 왜 피아골일까.

지리산 깊은 속에 꽁꽁 숨겨진 탓에 빨치산이 숨어들었던 곳이라 사람들의 눈을 피해 ‘피아골’일까. 전쟁의 상처로 피가 물들어 피아골일까.

‘피아골’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오만 생각이 다 든다. 하지만 실제 피아골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피아골’은 ‘직전(稷田)이 있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피아골이 있는 마을이 직전마을인데, 글자 ‘직(稷)’은 곡식 기장을 뜻한다.

기장의 다른 이름은 ‘피’. ‘전(田)’은 밭을 뜻하니, 직전(稷田)은 피밭이라는 뜻.

다시 정리해보면 피아골은 ‘피밭골’인 것이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의 ‘피아골’로 변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피아골’이라는 이름을 갖게 한 ‘피’농사, 즉 기장 농사는 대체 누가 지었을까.

피밭 농사는 한때 수백 명의 스님들이 기거하며 수행했던 피아골 입구의 연곡사 스님들이 지었다고 한다.

척박했던 땅에서도 잘 자라는 피는 배고픈 스님들의 배를 채우기에 안성맞춤이었다고.

피아골은 노고단(1507m)과 삼도봉(1550m) 사이의 골짜기. 이곳에는 졸참나무, 갈참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등 활엽수가 대부분. 당단풍, 일본단풍 등 단풍나무 많다. 피아골 단풍이 그리 고운 덕은 활엽수와 단풍나무가 많기 때문.

지리산에 묻혀 꼿꼿하게 선비의 길을 걸었던 조선 중기의 학자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은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도 붉다’는 삼홍시(三紅詩)로 지리산 단풍의 아름다움을 노래했을까.

■ 국보 연곡사 부도 ‘눈 호강’
피아골 단풍은 코스에 따라 다르지만 연곡사에서 피아골 대피소까지가 단풍나들이 코스다.
연곡사는 지리산에서도 가장 단풍이 붉다는 피아골 입구에 있다. 연곡사는 화엄사를 지은 연기조사가 세웠다.

골짜기 연못에서 제비가 물수제비 뜨며 노니는 모습을 보고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 못을 메우고 지었다 한다.

절 이름에 제비 연(燕)자가 들어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제비가 물어다준 것이 흥부의 ‘박씨’뿐인 줄 알았더니 연곡사도 제비가 물어다 준 셈인 것.

연곡사는 신라 진흥왕 때 지은 고찰이지만 한국전쟁으로 전소됐다.

지금의 절은 새로 지은 것. 하지만 뒤편의 부도밭의 부도들은 불을 피해, 국보로 지정됐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연곡사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부도들의 축제를 고이 간직하고 있어서 지리산 옛 절집의 마지막 보루라 할 만하다’고 했다.

법당 뒤편으로 20m쯤 떨어진 산 언덕에 있는 동부도(국보 제53호)는 완벽한 형태와 섬세한 조각 장식의 아름다움으로 ‘부도 중의 꽃’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팔각기단 연화받침에 평면이 네모꼴인 지대석 위에 8각 2단의 아래 받침대 돌을 얹었는데 구름속의 용과 사자가 장식되어 있다.

동부도 앞에는 보물 제153호인 동부도비가 있는데 고려 초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 비석의 몸체 부분이 없어지고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다.

대적광전에서 북쪽으로 약 150m쯤 숲 속에 있는 북부도(국보 제54호)는 4각형의 지대석 위에 구름무늬가 조각된 8각형의 받침돌을 놓고 그 위에 연꽃무늬를 새긴 간석을 얹혔다.
8각 탑신의 각 면은 문짝, 향로, 사천왕상을 장식했다. 2점의 국보 외에도 연곡사에는 보물이 4점이나 있다.

법당에서 우측으로 5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삼층석탑은 3층 기단과 3층 탑신부를 갖추고 있으며 통일신라 말기나 고려 초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소요대사부도라 불리는 서부도는 경내에서 서북쪽으로 약 100m 떨어진 산비탈에 위치하고 있다.

경내에 있는 현각선사탑비는 비석의 주된 부분(비신)은 없어졌고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귀부)과 뿔 없는 용의 모양만 새긴 이수만 남아 있다.

다른 2기의 부도에 비해 형태나 꾸밈은 아름답지 못하나 위, 아래 각 부분의 비례가 안정되며 기품이 있다.

■ 피아골 단풍은 붉고 내 마음도 뜨거워지고
연곡사에서 직전마을까지 자동차로 갈 수 있지만, 단풍 나들이 온 인파들이 많아 매우 혼잡하다. 연곡사 아래 주차장에 차를 두고 걸을 것을 권한다.

연곡사에서 피아골 산장까지는 2시간여 거리. 20여개의 계곡을 따라 단풍이 이어진다. 특히 표고막터에서 삼홍소까지 1㎞ 정도가 가장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는 곳. 해마다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면 사진작가들이 새벽부터 와 진을 친다.

연곡사부터 피아골 산장까지는 가기 편하다. 경사가 급하지 않아 걷기 편하고 등산로도 잘 정비됐다.

연곡사 주차장에서 시작된 피아골 단풍맞이는 먼저 그 산세에 놀란다. 관광객들의 왁자한 소리가 아니라면 세상의 소리는 빽빽한 나무와 계곡의 물들이 다 삼켰을 테다.

아직 단풍이 짙지 않아, 해찰하는 재미도 좋다. 단풍이 깊었다면 단풍만 보느라 다른 풍경은 놓쳤을지도 모른다.

해찰하며 보니 피아골의 계곡이 깊고 예쁘다. 물도 맑다. 등산로를 살짝 이탈해 계곡물에 손을 담가본다. “아, 차가워!” 소리가 절로 나온다.

깊은 산속에서 흐르는 물은 차갑다. 도시의 수돗물과는 비교가 안 된다. 시골 할머니댁 지하수보다도 더 차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도 청아하다.

나무들은 오래된 역사가 눈에 보인다. 곧게 뻗은 것보다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몸을 뒤틀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허나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분명 있다. 둥글게 몸을 뒤튼 나무들은 노랗고 붉은 단풍을 달고 있다.
물론 아직은 이르다. 절정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듯.
■ ‘피아골 단풍축제’ 29일 개막
남녘의 가을을 알리는 구례군의 ‘제35회 지리산 피아골 단풍축제’가 피아골 단풍공원에서 29일 개막해 30일까지 열린다.

구례군 피아골축제위원회(위원장 우두성)는 ‘삼홍과 함께하는 오색단풍 여행’이라는 주제로 올해 축제를 마련한다고 밝혔다.

29일은 표고막터에서 국태민안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단풍제례’를 봉행한다. 30일은 관광객들과 함께 즐기는 오색단풍 콘서트 등을 마련할 예정이다.

특별행사로 캠핑 체험을 할 수 있는 1박2일 지리산 둘레길 트레킹을 운영하고 다채로운 체험과 문화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천년고찰 연곡사에서 전통 ‘산사음악제’도 마련한다.

■ 지리산 단풍 절정, 이번 주
기상청은 늦더위로 인해 올해 단풍은 지난해보다 1~5일 늦게 찾아오겠다고 밝혔다. 올해 첫 단풍은 지난 3일 설악산을 시작으로 6일에는 오대산, 13일에는 지리산, 19일에는 북한산, 26일에는 내장산에서 첫 단풍이 졌다.

그러나 단풍의 절정기는 지난해보다 1~5일 빨리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산 전체의 80%에 단풍이 드는 절정기는 첫 단풍이 든 뒤 2주 후쯤 나타난다.

중부 지방과 지리산에서는 10월 중순 후반에서 하순 사이, 남부지방에서는 10월 말에서 11월 초순 절정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설악산과 오대산은 다음달 18일, 지리산은 23일, 내장산은 11월 7일쯤 단풍이 절정기를 맞는다. 지난 23일 찾은 지리산 피아골은 단풍이 절정은 아니었다. 군데군데 단풍이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교차로신문사 / 최명희 기자 cmh@sgse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