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아직 끝나지 않은 꿈, 화순 운주사

아직 끝나지 않은 꿈, 화순 운주사

by 운영자 2012.01.06

지구 종말이 걱정이라면…
2012년. 올해의 화두는 단연코 종말론이다.

‘고대 마야문명의 달력이 기원 전 3114년 8월에 시작해 2012년 12월 21일 끝난다’는 것을 시작으로, ‘태양계의 감춰진 행성 엑스(X)가 2012년 지구와 충돌한다’, ‘초강력 태양폭풍으로 지구의 급격한 지각변동이 일어난다’는 설이 나돈다.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을 재해석하면 종말은 1999년이 아니라 2012년이란 주장도 제기된다. 새해 벽두부터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연일 방송되는 할리우드 영화 <2012>도 올해 지구의 멸망을 이야기한다.

각종 신문과 방송 매체들도 ‘지구가 종말하는 날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설문을 내놓거나, 종말과 관련한 방송들을 준비하고 있다.

현대인은 현재의 불안과 공포를 이해하기 힘들 때 재난 시나리오를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는 바람직한 일은 아닐 듯하다. 그보다는 지금, 현재의 삶에서 희망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화순 운주사. 꿈꾸는 이들이 아직도 누워 있는 곳으로 떠난다. 그들과 함께 꿈과 희망을 찾아볼 테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
화순 운주사 ‘천불천탑’에 기원 담아


2012년 깨끗한 첫 달력을 받고 처음 한 일은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고 그냥 한장한장 모두 12장을 넘겨보는 일이었다. 올해도 꼬박 12장 달력을 넘겨야 한다. 2월이 29일로 평소보다 하루 많은 366일. 어제와 똑같이 오늘도 힘을 내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는 꼭 기억해야 할 이들의 생일을 하나하나 적었다. 또 일정한 주기마다 해야 하는 숙제들도 표시했다. 어느새 달력에는 한달 30개의 칸 중에 10개가 넘는 곳에 올해 내가 기억해야 하고 해야 할 일들이 적혔다. 꿈과 목표가 적힌 셈이다.

설사 끝까지 ‘미완(未完)’으로 남을지라도 꿈을 꿔야 한다.

화순의 운주사, 꿈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떠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도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시겠다’는 스프노자에는 못 미치더라도 꿈, 내일에 대한 희망은 놓고 싶지 않으므로.


■ 운주사, 그대 꿈꾸고 있는가
화순 운주사는 다른 것은 몰라도 누워 있는 불상 ‘와불’이 있다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 몇 가지 상식을 더해 보자.

운주사는 천불 천탑이라 불리는 불상과 불탑이 여기저기 셀 수 없이 많다. 불상은 누웠거나 어떤 것은 머리가 없거나 어떤 것은 코가 없거나 해서 번듯하고 온화한 표정과 자태의 정형화된 불상의 모습을 완전히 뒤엎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언제 어떻게 왜 이 불상들이 이 깊은 산골짝까지 들어왔는지, 누가 불탑은 세웠는지, 지금껏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곳이 바로 ‘운주사’다.

운주사는 다른 대사찰처럼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그저 낮추볼 수 없는 어떤 ‘내공’이 느껴지는 절이다. 소박함에 깃들어진 따뜻함과 위로, 그 안에서 엿보이는 희망이 운주사의 매력이다.

운주사는 통일신라 말 도선국사가 세웠다고 전해진다. 천태산 서쪽 골짜기 전체가 모두 운주사터다. 운주사에 들어서니 부처들이 먼저 반긴다.
절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서 있는 천불천답이 볼거리다. 머리며 코언저리에 눈을 얹은 불상들이 삐뚤빼뚤 못나서 더 정이 가는 모습으로 한데에서 그렇게 편히 손을 반긴다.

화려하거나 무섭도록 위엄 있거나 하지 않아 더 좋다. 여느 마을의 필부필부를 본 따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운주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석탑들도 편하기 그지없다.
조각 수법은 투박하지만 살갑게 다가오는 울림이 크다. 운주사 대웅전 동쪽 언덕에는 거대한 두 분의 와불(臥佛, 미완성석불)이 누워있다. 이 와불은 운주사의 존재 의미를 더해준다.

창건 기록이 확실치 않은 운주사의 전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도선국사의 전설.

이 누워있는 불상은 도선국사가 하루 낮 하루 밤 사이 불상을 세워 민초들의 세상을 열려고 매달렸다. 도선국사는 우리 땅을 바다를 향해 나가는 배의 형국으로 보았다.

운주사 자리는 한반도의 배꼽이자 배의 중심에 해당한다는 것. 기가 허한 이 자리에 천불천탑을 세우면 국운이 열릴 것으로 생각한 국사는 도력을 부려 하룻밤에 1000기의 석탑과 1000기의 석불을 세우기로 했다.

그러나 새벽녘 일하기 싫은 동자승이 ‘꼬끼오’ 소리를 내는 바람에 석수장이들이 날이 샌 줄 알고 하늘로 올라가버렸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그리고 도선국사의 꿈은 그렇게 미완으로 끝났다.

현재 운주사에 남아 있는 석탑은 12기, 돌부처는 70여기. <신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옛날에는 천불천탑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어느 것도 없다. 때문의 마음대로 꿈을 꾸고 상상을 해도 된다.

소설가 황석영은 대하소설 ‘장길산’에서 운주사를 두고, 숙종 때 의적 장길산이 민중들과 함께 새 세상을 꿈꾸며 천불천탑을 세우려다 실패했던 ‘혁명의 땅’으로 묘사했고 임영조 시인은 ‘운주사 와불’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먼 옛날 키 크고 마음 착한 미남 석공과 키 작지만 요염한 공주가 살았는데 한가윗날 밤 우연히 눈맞아 연정을 품게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유부남 유부녀라 사랑이 깊어질수록 괴로워했다.

하늘도 이들의 애틋한 순애보에 감복하여 구름배 한 척을 내려주었다. 그런데 하필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밤 북두칠성 모서리에 부딪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하늘은 천상의 석공을 내려보내 천일동안 천불천탑을 세우면 다시 하늘로 갈 수 있다고 약속했는데 그만 새벽닭이 우는 바람에 석공들이 놀라 떠나버렸다. 그래서 두 사람은 지금 돌이 된 채 운주산 자락에 누워 구름배 한 척을 기다리고 있다고.

이밖에도 고은, 조태일, 황지우, 윤중호, 이종현, 이원규 등 많은 문인들이 운주사를 찾아 글을 남겼다. 2001년에는 프랑스 소설가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가 20년 전 운주사 방문의 감동을 잊지 못해 시를 써서 한국에 보내오기도 했다.

눈 덮인 운주사를 느리게 걸으며 올 한해 계획을 정리한다. 현재의 상황에서 어려운 일을 해야 할 때 ‘그래, 올해 12월이면 지구가 멸망하는데 굳이 할 필요 있겠어’ 라고 장난스레 내뱉었던 말을, 사고 싶지만 가격이 비싸 엄두가 안 나는 물건을 앞에 두고 ‘그래, 종말이 온다는데 아등바등 살아 뭐해! 사버릴 거야!’ 하며 합리화했던 말들을 입밖으로 뱉지 않기로 했다. 가급적 생각지도 않기로 했다.

꿈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니까.


■ 물염정, 나란히 생각이 정리되는
분명 앞에서 ‘꿈’을 잃지 말자고, 설사 종말이 온다 해도 꿈을 잃지 말자고 써놓고 ‘종말이 온다면’이라는 가정으로 나머지 글을 이어나간다는 것이 참 이상하다. 하지만 대비 없이 맞는 것보다 조금 준비하고 그날을 맞는 것이 당연히 낫다.

실은 생각해둔 몇 가지 일정이 있다. 오전에는 이곳 화순 물염정에 들릴 예정이다.

혼자서만. 그리고 짧은 생을 한번 정리해볼 터다. 왜 물염정에 오는 지는 직접 물염정에 와봐야 비로소 알 수 있을 터다. 말로만 설명이 가능할는지.

물염정은 조선 명종대에 물염(勿染) 송정순(宋庭筍)이 건립한 정자로 ‘세상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고 티끌 하나 속됨 없이 살겠다’(勿染)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한동안 사람이 찾지 않은 듯 고즈넉한 가을의 물염정은 속세와 단절된 기분마저 든다.

물염정에 서 멀리 적벽을 바라본다. 평야지대로만 알려진 이곳에 중국 양자강의 적벽과 견줄만한 비경의 절벽이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유유히 흐르는 물과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비경 앞에 절로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곳의 경치에 방랑시인 김삿갓도 감탄하고 즐겨 찾았으며, 훗날 방랑을 멈추고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고 전해진다.

화순 동복댐에는 이곳 말고도 노루목 적벽(화순적벽)과 보산리적벽, 창랑리 적벽 등 3곳의 적벽이 더 있는데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물염정에서의 일정이 끝나면 가족의 품으로 갈 생각이다. 식구들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다 모여, 분주히 움직여 가장 맛있는 음식을 해먹으리라. 그리고 옛날 얘기를 좀 하며 울다 웃다 조금 목소리도 높였다, 그렇게 끝을 맞는다면 별 후회가 없을 듯.

아담하고 소박한 절 쌍봉사도 종말의 날 찾아도 좋을 곳이다. 화순군 이양면 증리, 쌍봉사 가는 길엔 빈 들녘이 이어지고 띄엄띄엄 마을들이 이어진다.

나무도 들녘도 제 가진 열매들을 모두 털어내고 비워냈다. 해탈문 돌계단을 올라서면 대웅전이다. 정면 한 칸, 측면 한 칸에 3층 목탑 모양. 이게 무슨 대웅전인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우리에겐 익숙지 않은 모양이다.
쌍봉사 대웅전은 법주사 팔상전과 더불어 보기 드물게 목조탑 형식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목탑의 원형을 가늠하게 하는 귀중한 목조건축물. 지장전과 선방 사이에 나있는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철감선사부도와 부도비가 나란히 있다. 오르는 길엔 대나무가 울창하다.

색색의 옷을 갈아입은 산하와 들녘에 가운데서 만난 푸른빛이 반갑고 귀하다. 차나무도 많다.

차밭과 대숲 지나 있는 철감선사 부도탑(국보 제57호)과 부도비(보물 제 170호) 그 정교한 아름다움으로 이미 널리 이름나있다.

특히 거북 모양의 철감선사 부도비는 앞쪽 오른발을 눈여겨 볼 것. 왼발은 땅을 힘 있게 그러쥐고 있고 오른발은 지금 막 앞을 향해 내딛는 중이다.

네 발을 모두 땅에 붙이지 않고 그중 한발을 치켜 올려 만든 옛 장인의 마음으로 인해 이 거북은 늘 앞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내딛는 이 한발로 인해 영원성과 현재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현실을 굳건하게 딛고 쉼 없이 앞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 사노라면 험한 일 궂은 일 왜 없겠냐마는 그것들 앞에서 무너지거나 그치지 말고 네 갈 길을 지성으로 열심히 가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또 하나, 쌍봉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누구에게나 베풀어 주는 공양(밥) 한 끼다. 모르는 남에게 기꺼이 밥 한끼를 내주는 이곳은 그래서 더더욱 찾고 싶은 곳이다.

▶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송광사 IC를 나와 구암 삼거리에서 벌교?화순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818번 지방도를 타고 춘양교차로에서 춘양?고인돌공원 방면으로 우측 방향으로 달린다. 길을 따라 가다 춘양로 다도ㆍ운주사 방면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해 가다, 나주?도암 방면으로 우측 방향으로 7km만 더 가면 된다. 가는 시간은 1시간30분 남짓. 이정표가 잘 돼있다. 화순읍에서 운주사까지는 15㎞ 정도다. 운주사 ☎374-0660

▶ 잠잘 곳
도곡면 천암리, 원화리에 도곡온천이 있다. 호텔, 여관, 찜질방 등이 많다. 운주사에서 도곡온천까지 차로 15분 거리. 88년 이 일대 18만평이 온천지구로 지정됐다. 유황이 많이 함유되어있는 중탄산나트륨 유황온천, 약알칼리성 망조천으로 피로회복 효과가 높다고 한다.

▶ 볼거리
화순은 광주, 나주와 인접해있다. 쌍봉사는 통일신라 때 철감선사가 창건했다. 3층으로 된 대웅전이 독특하다. 가지런한 가람 배치도 예쁘다. 국보 제57호인 철감선사탑과 보물 170호인 탑비가 있다. 적벽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백아산자연휴양림(061-374-1493)이 있다.

[교차로신문사 / 최명희 기자 cmh@sgse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