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고창 선운산 수줍은 차꽃 피고 붉은 단풍 피어

고창 선운산 수줍은 차꽃 피고 붉은 단풍 피어

by 운영자 2012.11.02

“엄마, 차꽃은 지금이 봄인가 봐”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계절마다 색색의 꽃이 핀다. 찬 서리가 내리는 상강이 지나고 입동이 닷새 앞으로 다가온 요즘, 막 피는 꽃보다는 스러지는 낙엽이 먼저 떠오르는 때다. 만물이 생동하는 것을 멈추고 지는 이때, 막 피어 생명을 터트리는 꽃이 있다.
차꽃이다. 차나무에는 지금 꽃이 핀다.

차밭은 봄부터 여름까지 초록이 물이 오른 때에 그 빛을 발한다고 생각하지만, 초록이 숨을 죽이고 조용히 하양 꽃을 밝히는 요즈음도 운치 있다.
■ 선운산, 새하얀 수줍음
늦가을 선운산은 새하얀 수줍음이 내려앉았다.

선운사에서 동운암과 도솔암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면 오른편으로 차밭이 나온다. 푸르른 차밭에는 새하얀 차꽃들이 몽실몽실 피었다.

“엄마, 차꽃은 지금이 봄인 줄 아나 봐. 이렇게 추운데!”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등산객이 처음 보는 차꽃을 보며 소리친다. 하기는 추워지는 이즈음의 하얀 꽃이라니 낯설 만도 하다. 가까이 가 꽃을 본다. 차나무 끝에 고개를 살짝 숙이고 오종종 달린 차꽃은 수줍은 소녀 같다.

차나무꽃은 9월 말에서 12월 초까지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피어난다. 꽃과 열매가 함께 만나 마주보고 있어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라고도 부른다.

꽃은 흰색의 다섯 장의 꽃잎으로 이뤄지는데. 이 다섯 장의 꽃잎은 차가 지닌 5가지 맛과 인생의 5가지 맛을 담고 있다고 한다.
잎 5장의 의미이자 차와 인생의 5가지 맛은 괴롭고(苦), 달고(甘), 시고(酸), 짜고(鹹), 떫(澁)다.

선인들은 차꽃의 5장을 인생에 비유하며 너무 인색하지 말고(鹹), 너무 티나게도(酸), 너무 복잡하게도(澁) 말고, 너무 편하게도 말고(甘), 너무 어렵게도(苦) 살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차밭에서 눈을 돌려 보니 동백나무가 동그란 열매를 달고 있다. 이른 봄, 꽃을 피워낸 꼭 그 자리다. 누리장나무에도 검붉은 열매가 달렸고, 은행잎은 발끝부터 노랗게 물고 있다.
■ 선운산, 붉은 생
<비 올랑가? // 비 오고 나먼 단풍은 더 고울 턴디 / 산은 내 맘같이 바작바작 달아오를 턴디 / 큰일났네 … (중략) … 시방 저 단풍 보고는 가만히는 못 있겄는디 / 아, 이 맘이 시방 내 맘이 아니여! / 시방 이 맘이 내 맘이 아니랑게! // 거시기 뭐시냐 / 저 단풍나무 아래 / 나도 오만가지 색으로 물들어 갖고는 / 그리갖고는 그냥 뭐시냐 거시기 그리갖고는 그냥 / 확 타불고 싶당게 // 너를 생각하는 내 맘은 / 시방 짧은 가을빛에 바짝 마른 장작개비 같당게 // 나는 시방 / 바짝 마른 장작이여! 장작> - 김용택 ‘마른 장작’ -

사실 선운산을 찾은 이들에게 차꽃보다 먼저 보이는 것이 단풍이다. 상가단지 입구부터 선운사에 이르는 길. 선운사 계곡의 나무들이 마지막 생을 붉게 불태우고 있다.

특히 선운사와 도솔암의 가을 단풍은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 나무마다 붉은 단풍도 아름답지만, 선운사 계곡에 비친 단풍은 더 아름다워 절로 그림이 된다.

막 피어나는 것이 아닌 지는 것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지 절로 숙연해지는 순간이다. 더불어 나무처럼 지는 때도 아름다워야겠다 하는 마음의 자성도 든다.

오르는 길 중간에 있는 선운사 부도밭은 전나무숲 속에 아늑하게 들어앉았다.

일부러 느리게 걷는 것이 아닌 단풍 구경에 절로 느려진 발걸음이 선운사 경내에 닿으면 또다른 즐거움이 숨 쉰다. 경내의 감들과 오미자가 붉게 익어 적막한 절간을 그득 채운다.

경내로 들어서면 만세루와 대웅보전, 그 옆으로 영산전과 명부전 등의 건물이 보인다. 일주문 부근에서 갈라지는 산길을 따라 도솔암까지 오르면 차밭에서 차꽃을 만날 수 있다.

[교차로신문사 / 최명희 기자 cmh9630@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