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축제

바람 냄새 따라 걷는 ‘부산 갈맷길’

바람 냄새 따라 걷는 ‘부산 갈맷길’

by 운영자 2013.11.15

바다와 숲, 도심과 외곽을 만나다
냄새로도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른 아침 콧속으로 드는 바람이 군더더기 없다.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요즘은 울긋불긋한 단풍들뿐만 아니라 바람과 공기가 매력적이다.

차가운 향을 품은 바람은 생각마저 명징하게 한다.

이토록 ‘매력적인’ 바람을 맞으며 걷는 것. 이즈음을 가장 즐겁게 하는 까닭 중 하나다.

□ 바람의 노래를 듣는다
부산 갈맷길은 바람을 맞으며 걷기 좋은 길. 바다와 숲과 도심과 외곽이 이어지는 이 길은 가는 곳마다 색다른 느낌을 준다. 9개 코스에 걸쳐 263.8km의 여정을 잇는 갈맷길은 ‘바다’로만 대표되는 부산의 다양한 얼굴들을 만날 수 있다. 바다도 보고, 숲도 만나고, 도심 한가운데도 가로지르다보면 기나긴 여행길이 지루하지 않다.

9개의 코스는 다시 크고 작은 20개 구간으로 나뉜다. 어느 길을 걸어도 나름의 재미가 쏠쏠하니 걱정은 접어둘 것.
부산이 낯선 이들이라면 문탠로드에서 오륙도 선착장까지 이어지는 2코스를 권한다.

달맞이고개, 해운대 등 익숙한 이름들 덕에 마음이 편하다. 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자연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어 좋다. 코스가 험하지 않아 남녀노소 쉽게 걸을 수 있는 것은 덤이다.

□ 바다, 숲, 도시, 역사 … 볼 것 ‘천지’
갈맷길 2코스의 시작점은 문탠로드. 문탠로드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밤하늘의 달이 아름다운 곳으로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하다. 맛있는 밥집과 찻집이 즐비해, 걷기 여행 전 미리 ‘당’ 섭취를 할 수도 있다. 문탠로드 초입에 들어선다. 대로변과 바짝 가까이 붙은 갈맷길에 들어서자 냄새부터 다르다. 나무들 사이에 들어서니, 서늘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나무가 뿜어내는 기분 좋은 향이 훅 폐까지 들이친다.

소나무가 들어찬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방금 전 맞았던 도심의 냄새는 어느새 쏙 빠지고, 기분 좋은 ‘숲향’만이 남았다.

이른 아침이라면 빽빽한 아파트 숲 속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새들의 노래도 들을 수 있다.

들락날락한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푸르른 바다도 시원하다. ‘부산=바다’라는 공식이 역시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해운대로 향하는 길, 꽃을 떨어뜨린 가을의 벚나무가 애처롭다. 하지만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은 벚꽃잎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며 나름의 멋이 있다.

꽃비 대신 나뭇잎비를 맞으며 한참을 걸으니 해운대 속 작은 마을 ‘미포’를 만난다. 번잡한 해운대 속에 웅숭하게 자리잡은 작은 어촌마을 미포는 고요하게 아름답다.
해운대를 지나 동백섬에 다다랐다. 성급한 동백꽃 몇 송이가 삐죽 얼굴을 내민다. 소나무와 동백꽃, 반짝이는 동백잎이 어우러진다. 이제 한두 달 뒷면 이곳에 시뻘건 동백꽃이 만발할 테다. 바다 맞은편으로는 화려한 해운대 신시가지가 보인다. 눈이 심심할 틈이 없다.

갈맷길 2코스 중 기암절벽과 숲이 어우러진 이기대길은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곳 중 하나다.

‘이기대(二妓臺)’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수영성을 함락한 왜군이 이곳의 절경에 취해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두 명의 기생이 술에 취한 왜장을 끌어안고 바다에 뛰어든 것에서 유래됐다.

얼마만큼 이곳의 풍경이 아름다운지는 이름의 유래만으로도 충분할 터.

이 길은 용호동 해안을 따라 오륙도 선착장까지 이어지는데, 곳곳에 구름다리와 해녀막사, 공룡발자국, 농바위 등 볼거리와 이야기들이 널려 있다.

원래 군사작전 지역으로 출입이 통제되던 곳인 이기대는 1993년 개방되며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오랜 시간 외부의 손길이 닿지 않은 덕에 희귀한 식물과 곤충이 서식하는 등 이기대의 자연 보존 상태는 탁월하다.

뿐만 아니라 이 길 속에서는 필부필부들의 삶의 냄새도 맡을 수 있다.
길 중간에 만난 ‘해녀막사’는 해녀들이 잠수복을 갈아입는 용도로 만들어졌다. 지금도 해녀들이 어구를 챙기고 잠수복을 갈아입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은 해녀들이 직접 잡은 해물들을 맛볼 수도 있다. 그날 갓 잡아 올린 해삼, 문어 등 싱싱한 해산물을 그리 비싸지 않게 맛볼 수 있다. 바다를 왼편에 두고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면, 그곳이 바다고 천국일 터다.

길을 따라 더 걸으면 6500만 년 전 살았던 대형 초식 공룡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룡발자국을 만난다.

마치 장롱을 올려놓은 모양이라 해 이름 붙은 ‘농바위’도 신기하다.

갈맷길 2코스는 총 18.3km로 8시간 정도를 걸어야 완주가 가능하다.

달맞이고개 문탠로드↔해운대↔동백섬↔민락교↔광안리해수욕장↔동생말↔이기대 전망대↔오륙도 선착장을 잇는 길을 한번에 다 걷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시간을 여유롭게 잡고 이틀에 걸쳐 걷기를 권한다.

오륙도선착장에서 발길을 돌리기 아쉽다면 직접 배를 타고 들어가 오륙도 6개 섬을 하나하나 만나보는 것도 좋겠다.

[교차로신문사/ 최명희 기자/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