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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70 …보성 득량면 ‘추억의거리’

응답하라 1970 …보성 득량면 ‘추억의거리’

by 운영자 2014.02.07

교실 안 난로 위에는 켜켜이 쌓은 ‘벤또’
골목 한켠에는 그 시절 잘 나가던 ‘포니’
먼지 낀 만화방에는 ‘내 이름은 독고탁’
사는 것이 팍팍해서일까. 현재나 미래보다 과거를 ‘소환’하는 것이 더 애틋하고 즐겁다. 지난해 말 종영한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인기가 이를 증명한다.

드라마 속이 아닌 현실에서 기억 저편으로 밀려난 우리의 추억을 불러올 수 있는 곳이 있다. 보성 득량면 득량역 앞의 ‘추억의 거리’.

그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 물건, 음악, 옷….

보성 득량에 가면 우리를 웃게도, 울게도 했던 그 시절을 만난다.

◈ 반갑다, 추억아!

보성 득량역은 몇 해 전 새 건물로 짓고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으로 ‘문화역’으로 변신하며 옛날 역사의 느낌은 사라졌지만, 득량역 앞의 ‘추억의거리’는 그 옛날 모습을 기가 막히게 재현하고 있다.

‘추억의거리’는 득량역에서 나와 오른편으로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조성됐다.

좁다란 길에는 1970~1980년대 시골 마을의 ‘전형적인’ 풍경이 확 펼쳐진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은 ‘역전이발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낯선’ 이발관 모습이 눈에 확 들어온다.

빛바랜 진한 나무색의 서랍장과 정면의 큼지막한 거울, 그 옛날 유행했을법한 남자 머리 모양들이 걸린 액자, 이발사가 직접 입었을 가운, 그 시절 유명하던 여배우의 화보와 타일로 만든 세면대까지 영화 속에서나 봄직한 모습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낡은 이발가위와 ‘바리깡’, 현상수배범의 얼굴이 찍힌 전단도 재미있다.

지금은 구경할 수 없는 두툼한 브라운관 텔레비전도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1970년대 중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공병학 씨가 인수해 문을 연 이발관은 여전히 운영 중이다. 이발 가격은 1만1000원. 추억을 보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면 한번쯤 손질을 받아보는 것도 좋겠다.

이곳에서 여전히 영업 중인 곳이 한 곳 더 있다.
‘행운다방’이다. ‘역전이발관’ 공병학씨의 아내가 운영하고 있는 다방도 추억이 한가득 묻어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다방 고유의 냄새가 확 끼친다. 낡은 천 소파에서 나오는 먼지 냄새와 커피 냄새 등이 섞인 다방 냄새 말이다.

다방은 팔걸이가 없는 낡은 천소파와 인조가죽 소파, 탁자가 가득 메우고 있다.

탁자 위에는 심심풀이로 하루의 운수를 점치기도 했던 뽑기도 있다. 지금도 뽑기는 이용이 가능하다. 낡은 공중전화와 텔레비전, 축음기 등도 볼거리.

득량국민학교 교실은 70년대 이전 출생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빙그레 웃음이 지어지는 곳이다.

짝꿍에게 넘어오지 말라며 굵은 선을 그었던 녹색 책상과 삐걱거리는 의자, 난로 위에 켜켜이 올려진 ‘벤또’와 오르간, 교실 뒷면의 알록달록 그림까지 어쩌면 그렇게 옛날 우리가 다니던 학교 교실의 모습을 똑같이 옮겨놨을까 신기할 정도다.

“앉아 봐요. 앉아 봐도 돼요. 천천히 구경하고 사진도 찍어 가세요.”

역전이발관 주인 공병학 씨는 낯선 방문객에게 추억의거리를 안내하며 인심 좋게 오감으로 즐기기를 권한다.

공병학 씨는 이곳 추억의거리를 꾸민 공주빈씨의 아버지다.

꾸러기문구는 1980년대 문방구를 재현해 놓은 곳. 당시 유행하던 장난감과 인기를 끌었던 만화영화 포스터들, 동전을 모두 털어간 오락기까지 옛 모습이 오롯하다.

만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종이 딱지를 보면 어릴 적 딱지 때문에 울고 웃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1970~80년대 대통령 담화문, 선거 벽보, ‘쥐를 잡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국민 계도 포스터 등 골목 벽에 붙어있는 벽보도 감탄스럽다.

골목에 버젓이 서있는 자동차 포니는 금방이라도 시동을 걸고 추억 속으로 데려다 줄 것만 같다.

[교차로신문사/ 최명희 기자 cmh@sgs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