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랏돈을 쌈짓돈처럼

나랏돈을 쌈짓돈처럼

by 이규섭 시인 2018.10.19

어린이집의 어린이 학대는 잊힐 만하면 터져 울화통이 터진다. CCTV 설치 의무화 이후 수그러드는가 싶더니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최근엔 어린이집 이사장이 일곱 살 아동에게 음란물을 보여줬다니 아동학대 양상도 변하는 것 같아 충격이 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랏돈을 쌈짓돈처럼 쓴 사립유치원 비리 실태가 드러나 파장이 만만찮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한 여당 의원은 17개 시·도 교육청이 지난 5년간 벌인 감사 결과를 실명으로 공개했다. 1878개 유치원에서 5951건의 비리가 적발됐다.

유치원 돈으로 명품가방과 성인용품 등 6억 원 넘게 부정 사용한 원장도 있다. 노래방·숙박업소에서 결제했는가 하면, 원장 개인차량의 주유비·자동차세를 내거나 아파트 관리비로 쓴 경우도 드러났다.

감사 결과엔 단순 실수도 포함돼 있다고 하나, 전국 유치원 수는 6153곳(2017년 기준)으로 전수 감사를 하면 이 보다 더 많은 비리가 드러날 수 있다.

‘200명이 넘는 아이들과 교사들이 닭 세 마리로 우린 국물로 닭곰탕을 먹였다’는 전직 유치원 교사의 청와대 청원글을 보니 분노가 솟는다.

사립유치원은 매년 누리과정(만 3∼5세 무상교육) 예산 2조원을 지원받는다. 시·도 교육청이 실시하는 감사 외에는 사실상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지원금의 경우 원장 명의의 통장으로 입금되어 사용하는 과정에서 원장이 부정을 저질러도 횡령죄 적용이 안 된다고 한다. 환수 조치도 불가능하다.

빠져나간 돈을 원장 통장에 채워놓는 것이니 왼손 주머니 돈을 오른손 주머니로 옮겨 놓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효성이 없다.

지원금은 횡령죄 적용이 안 되다 보니 원장 쌈짓돈으로 변한 게 아닌가.

‘지원금’인 누리과정 세목을 ‘보조금’으로 바꿔 이를 유용하면 횡령죄로 다스릴 수 있도록 입법화한다고 한다.

교육부는 운영자금 출처와 사용처를 명확히 기재하는 ‘사립유치원 회계시스템’ 도입 등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반발을 우려한 듯 ‘무관용’ 방침도 밝혔다. 하지만 빨라야 내년 하반기에나 도입이 가능하다니 비리를 감시할 장치가 없는 상황이 장기화 될 수밖에 없다.

‘열 사람이 한 도둑 못 막는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허술한 법망은 언제든 뚫릴 수 있는 만큼 대책도 빈틈없이 촘촘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나랏돈을 눈먼 돈으로 생각하는 도덕적 해이가 팽배하다. 국민 혈세로 퍼주기 식 정책이 늘어나다 보니 ‘먼저 먹는 게 임자’라는 도둑 심보가 생겼다.

새싹과 같은 어린이들을 위한 보육 지원비를 쌈짓돈 쓰듯이 빼돌린 건 지탄 받아 마땅하다.

유치원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가장 기초적인 교육 기관이다. 설립인가 절차부터 운영자의 자질을 꼼꼼하게 체크하고 정기적 감사로 나랏돈 누수를 막아야 한다.

유치원 운영자가 보육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보육의 현대적 개념은 교육과 보호양육을 합친 에듀케어(Educare)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운영자가 원생들을 내 자식이나 내 손주처럼 생각한다면 그들에게 돌아가야 할 운영비를 빼돌리고 멀건 닭곰탕을 먹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