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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염치(廉恥) 없는 광양시의회

<기자수첩> 염치(廉恥) 없는 광양시의회

by 운영자 2014.07.25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은 벼슬아치의 첫 번째 요건으로 ‘몸가짐이 방정(方正)하고 굳은 절개와 염치(廉恥)가 있는 자’를 꼽았다고 한다.염치란 ‘염조지치(廉操知恥)의 약어로 염조는 청렴과 지조를, 지치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뜻한다. 그래서 염치를 모르는 사람은 破廉恥(파렴치)한 사람이라고 한다. 비슷한 말로 ‘몰염치’라는 말도 있다.

염치와 관련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일제 때 안동 지역의 큰 부자인 김용환은 노름으로 집안을 말아먹은 파락호(破落戶)로 유명했다.

도박과 주색잡기에 미쳐 집안을 살피지 않는 것은 당연했고, 심지어 시집 간 무남독녀 외동딸이 시댁에서 농을 사오라 맡긴 돈까지 가로채 노름을 할 정도였다. 노름도 크게 했는데, 새벽녘 마지막에는 판돈을 모두 거는 주특기가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 투전이 적중해 돈을 따면 좋고, 실패하면 ‘새벽 몽둥이야’라는 큰 소리로 노름판 주변에 잠복해 있던 수하들 20여 명을 불러 판돈을 자루에 넣고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을 연출했다고 한다.

그는 노름으로 종가집 재산으로 내려온 전답 18만평, 현재 시가로 200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탕진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안동에서는 노름을 하는 자식을 훈계하는 말로 “도박에 빠지면 김용환처럼 된다”는 말이 유행어가 됐다. 이러한 김용환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김용환의 이런 행동은 독립군의 군자금을 대기 위한 행동으로 밝혀졌다. 일제의 눈을 피해 독립자금을 모으기 위해 철저하게 노름꾼으로 위장한 삶을 산 것이었다.

임종 직전까지도 독립군 동지에게 “선비로서 당연할 일을 했을 뿐이니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할 정도였다.

조국의 독립이란 대의를 위해 몰염치, 파락호란 불명예를 평생 동안 감수한 사례다.

7대 광양시의회가 시작부터 시끄럽다. 개원한 지 한 달도 안됐는데 벌써부터 해외연수를 결정하면서 논란을 자초했다.

세월호 사고의 후유증도 여전하고, 지역경제도 어렵고, 무엇보다 이제 갓 의회에 입성한 의원들이 절반이 넘는데도 해외연수부터 논한다는 것을 시민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의원들이 상대해야 할 집행부 간부 공무원들은 대부분 행정에서 30년 이상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이다. 이번에 시장에 당선된 정현복 시장이 스스로 칭하기를 예산의 ‘달인’이라고 하지 않던가?

의회가 시민의 대의기관으로서 집행부를 감시 견제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인사와 조직, 회계, 예산, 각종 현안 사업이 어떤 절차와 형식으로 돌아가는지 알아내고, 문제점이 있을 경우 적절한 대안을 낼 수 있기까지 의원의 4년 임기도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숨질 때까지 대의를 위해 파렴치한 인간으로, 몰염치한 사람으로 불명예를 안고 간 김용환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해외연수라는 기득권을 챙기기 위해 애쓰는 광양시의회가 ‘염치’라는 말을 알고는 있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