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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꽈리를 바라보다

눈물로 꽈리를 바라보다

by 운영자 2015.02.25

설 명절을 맞아 고향을 다녀오는 일은 때로 전쟁을 치르는 것 같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표를 구하는 일이 만만치를 않고, 차로 다녀오는 이들은 주차장처럼 변한 도로를 감수해야 합니다.그 모든 것을 고생이라 여기지 않고 고향을 찾는 것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뿌리를 그리워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누구보다 고향과 고국을 그리워 한 사람 중에는 이미륵 씨가 있습니다. 본명은 의경(儀景)인데, 필명 ‘미륵’은 어머니가 지어준 어릴 때의 아명입니다.

황해도 해주의 부유한 가정에서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1919년 3·1 운동에 가담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수배되어 상해와 프랑스를 거쳐 1920년 독일로 망명을 합니다.

뮌헨대학에서 동물학·철학·생물학을 전공하고 뮌헨대학의 동양학부에서 한학과 한국어 및 한국 문학을 강의하였지요.

1931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1946년<압록강은 흐른다>라는 자전적 소설을 발표하여 독일 문단의 주목을 받았는데, 이 책은 여러 나라에서 번역되었고 독일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압록강은 흐른다>라는 책의 맨 끝 부분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독일에서 지내게 된 그는 날마다 한 번씩 고향에서 소식이 오지 않았는지 우편국에 가 봅니다. 그러나 언제나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고, 점점 더 불안해졌습니다.

이미 유럽에 도착한 지 5개월이 지났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에 자신의 편지가 배달되지 않는 것 같고 또 해마다 고향에서의 아무 소식 없이 그곳에서 살게 될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언젠가 우편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알지 못하는 집 앞에 섭니다. 그 집 정원에는 한 포기 꽈리가 서 있었고 그 열매는 햇빛에 빛났습니다.

어릴 적 자신의 집 뒷마당에서 그처럼 많이 봤고 또 어릴 때 즐겨 놀았던 꽈리를 보는 순간 마치 고향의 일부분이 눈앞에 현실적으로 놓여 있는 것 같았습니다.

꽈리를 보며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그 집에서 어떤 부인이 나와 왜 그렇게 서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가능한 한 자신의 소년 시대를 상세히 이야기했습니다. 그 여자는 꽈리를 한 가지 꺾어서 그에게 주었습니다. 꽈리 이야기에 이어 책은 이렇게 끝나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에 눈이 왔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자 나는 성벽에 흰 눈이 휘날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흰 눈에서 행복을 느꼈다. 이것은 우리 고향 마을과 송림만에 휘날리던 눈과 같았다. 이날 아침, 나는 먼 고향에서의 첫 소식을 받았다.

나의 맏누님의 편지였다. 지난 가을에 어머님이 며칠 동안 앓으시다가 갑자기 별세하셨다는 사연이었다.”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눈이 내리던 날 고향의 맏누님이 보낸 첫 소식을 받았는데, 그토록 그리워하던 어머니의 별세 소식이 담겨 있었다는 대목을 읽으며 마치 옆자리에서 편지를 함께 읽은 것처럼 뜨겁게 눈시울이 젖어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빨간 꽈리 앞에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춘 사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그토록 진한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