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기울이면
마음을 기울이면
by 운영자 2015.03.04
막 3월의 커튼을 엽니다. 아무래도 겨울은 길고 사납다 싶어 겨울이 찾아오면 이 계절이 언제쯤 지나갈까, 찬바람에 옷깃 여미듯 마음이 움츠러들게 되지요. 그런 점에서 3월은 2월을 지나 맞는 것이 아니라 겨울을 지나 맞는 달이다 싶습니다.2월까지 이어진 겨울의 빛깔이 우중충함이었다면 3월은 연초록 환한 빛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3월!” 하면 뭔가 푸릇하고 싱그러운 기운이 뚝 뚝 묻어나는 것만 같습니다.
지난 설 명절에 저는 어머니를 모시고 강원도를 다녀왔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모처럼 식구들이 어머니와 한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들은 지가 오래되어 이제는 가물가물한 어머니의 옛 시절 이야기를 다시 들었습니다. 어느 누구의 삶이 간단하겠습니까만, 어머니의 삶도 나라와 민족이 겪은 아픔을 고스란히 겪어 오셨음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침밥을 먹고는 마당에 쌓아놓은 나무를 정리하려 장갑을 끼고 나섰습니다. 나뭇가지를 불쏘시개로 쓰기 위해 손도끼를 가지고 일정한 크기로 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도끼로 나무를 자르는 일은 오랜만의 일, 힘들기보다는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일에 열중하던 중 발아래를 보는 순간 깜짝 놀라 일손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파란 싹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반지르르 윤기가 나는, 야무지게 보이는 싹들이 마치 아우성을 치듯이 땅 위로 고개를 막 내밀고 있었습니다.
줄을 맞춰 심었던 화초가 겨울을 견디고 돋아나고 있는데 나무하는 일에 정신이 팔려 아무것도 모른 채 싹을 밟고 있었던 것이었지요. 화들짝 놀라 얼른 일하는 자리를 옮겼습니다.
오후에는 산소를 찾았습니다. 개울 건너 양지바른 언덕 소나무 아래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먼저 떠난 동생이 누워 있습니다. 만날 수는 없는 분들이지만 그 앞에 서니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산소에 들렀다가 내려오는 길, 발끝에 닿는 푸른 기운이 있어 유심히 보니 냉이였습니다. 아직도 땅은 딱딱하게 얼어 있는데 그 언 땅을 뚫고 냉이가 동그란 모양으로 싹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봄철 냉이를 끓이면 왜 시원한 맛이 우러나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주 지인과 함께 충북 진천을 다녀왔습니다. 외진 골짜기였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신비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끼루룩, 끼루룩!” 마치 물결이 밀려오듯 그 소리는 묘한 파문을 일으키며 이어졌습니다.
갈매기 떼가 날아오르는 듯한 소리, 궁금하기도 했고 더없이 반가운 소리이기도 했습니다. 곧 ‘경칩’,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다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어김없이 그 소리 들려올까 궁금하기도 했던 차였습니다.
어김없이 지나가는 시간의 발자국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조용히 다가오는 봄의 발자국 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가 있을까요? 겨울 지나 봄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짧은 생각일 뿐, 마음 모아 귀 기울이면 온통 세상엔 봄이 오는 소리 가득합니다.
지난 설 명절에 저는 어머니를 모시고 강원도를 다녀왔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모처럼 식구들이 어머니와 한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들은 지가 오래되어 이제는 가물가물한 어머니의 옛 시절 이야기를 다시 들었습니다. 어느 누구의 삶이 간단하겠습니까만, 어머니의 삶도 나라와 민족이 겪은 아픔을 고스란히 겪어 오셨음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침밥을 먹고는 마당에 쌓아놓은 나무를 정리하려 장갑을 끼고 나섰습니다. 나뭇가지를 불쏘시개로 쓰기 위해 손도끼를 가지고 일정한 크기로 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도끼로 나무를 자르는 일은 오랜만의 일, 힘들기보다는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일에 열중하던 중 발아래를 보는 순간 깜짝 놀라 일손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파란 싹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반지르르 윤기가 나는, 야무지게 보이는 싹들이 마치 아우성을 치듯이 땅 위로 고개를 막 내밀고 있었습니다.
줄을 맞춰 심었던 화초가 겨울을 견디고 돋아나고 있는데 나무하는 일에 정신이 팔려 아무것도 모른 채 싹을 밟고 있었던 것이었지요. 화들짝 놀라 얼른 일하는 자리를 옮겼습니다.
오후에는 산소를 찾았습니다. 개울 건너 양지바른 언덕 소나무 아래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먼저 떠난 동생이 누워 있습니다. 만날 수는 없는 분들이지만 그 앞에 서니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산소에 들렀다가 내려오는 길, 발끝에 닿는 푸른 기운이 있어 유심히 보니 냉이였습니다. 아직도 땅은 딱딱하게 얼어 있는데 그 언 땅을 뚫고 냉이가 동그란 모양으로 싹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봄철 냉이를 끓이면 왜 시원한 맛이 우러나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주 지인과 함께 충북 진천을 다녀왔습니다. 외진 골짜기였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신비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끼루룩, 끼루룩!” 마치 물결이 밀려오듯 그 소리는 묘한 파문을 일으키며 이어졌습니다.
갈매기 떼가 날아오르는 듯한 소리, 궁금하기도 했고 더없이 반가운 소리이기도 했습니다. 곧 ‘경칩’,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다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어김없이 그 소리 들려올까 궁금하기도 했던 차였습니다.
어김없이 지나가는 시간의 발자국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조용히 다가오는 봄의 발자국 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가 있을까요? 겨울 지나 봄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짧은 생각일 뿐, 마음 모아 귀 기울이면 온통 세상엔 봄이 오는 소리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