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봄
꿈의 봄
by 운영자 2015.03.06
요즘 70년대와 80년대의 ‘추억부활’이 유행이다. 내가 사는 대구의 경우 김광석에 대한 열기가 아주 뜨거운 것도 추억의 부활과 무관하지 않다.나는 아직 ‘김광석 다시 부르기’에 한 번도 참석한 적 없다.
특별히 김광석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그럴 만큼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김광석은 나보다 3살 어리지만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점에서는 동류의식만은 느낄 수 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농촌에는 라디오도 흔치 않았던 터지만, 도시에서는 농촌과 달리 음악다방이 유행했다. 나는 대학 입학 후 난생처음으로 음악대학 소강당에서 아주 좋은 음향기기를 통해 음악을 감상할 기회를 맞았다.
그러나 음악대학에서는 점심시간만 학생들에게 감상할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 나는 부득이 점심을 먹지 않고 음악을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서양 고전음악에 빠져 1학년부터 ‘고전음악 감상반’에 들어가서 많은 음악을 만났다.
그런데 지금도 내가 왜 서양 고전음악에 관심을 가졌는지 알 수 없다. 농사를 짓는 부모 밑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내가 서양음악을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나를 서양 고전음악으로 이끌었는지, 나는 아직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서양 고전음악이 나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학창시절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DJ였다. 그러나 아직 한 번도 DJ의 꿈을 실현하지 못했다.
농촌에서 태어난 나는 도시에서 대학생활을 보내면서 학교 근처에서 DJ 아르바이트를 해볼 맘을 먹고 음악다방을 여러 차례 맴돌았다.
그때는 음악보다는 생활비가 부족했던 탓에 돈벌이로 그 일을 생각했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는 음악에 대한 관심도 적지 않았다. 끝내 나는 DJ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시도조차 못 했지만, 그 꿈은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만약 내가 잠시라도 DJ 일을 맡는다면 가장 먼저 요하네스 브람스의 현악 6중주 제1번을 틀고 싶다.
학창시절 다소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나는 ‘장조’보다는 ‘단조’를 좋아했지만, 브람스의 현악 6중주 1번은 장조이면서도 현악이라서 단조적인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나는 유독 브람스를 좋아했다.
브람스의 음악은 물론 그의 초상화를 구하기 위해 전국을 찾아 헤매는 과정도 보냈다.
결국, 그의 초상화는 전국을 돌고 돌다가 내가 사는 곳에서 찾았지만, 그때 브람스를 사랑했던 시간이야말로 지금 생각하면 무척 행복했다.
그 이유는 오로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집중할 수 시간을 스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꿈의 봄’이라 부른다.
계절은 봄이지만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은 겨울바람처럼 차갑다. 인생의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꿈이 절실하다. 봄을 맞이하듯이 스스로 꿈을 맞이할 수 없다면 내재한 힘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같은 얘기를 밥이 상한 것처럼 식상(食傷)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중국 당나라의 고승인 마조도일(馬祖道一)이 언급한 것처럼 진리는 평범한 일에서 찾아야 한다.
이런 실천 말고 다른 방법이 있던가.
특별히 김광석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그럴 만큼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김광석은 나보다 3살 어리지만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점에서는 동류의식만은 느낄 수 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농촌에는 라디오도 흔치 않았던 터지만, 도시에서는 농촌과 달리 음악다방이 유행했다. 나는 대학 입학 후 난생처음으로 음악대학 소강당에서 아주 좋은 음향기기를 통해 음악을 감상할 기회를 맞았다.
그러나 음악대학에서는 점심시간만 학생들에게 감상할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 나는 부득이 점심을 먹지 않고 음악을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서양 고전음악에 빠져 1학년부터 ‘고전음악 감상반’에 들어가서 많은 음악을 만났다.
그런데 지금도 내가 왜 서양 고전음악에 관심을 가졌는지 알 수 없다. 농사를 짓는 부모 밑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내가 서양음악을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나를 서양 고전음악으로 이끌었는지, 나는 아직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서양 고전음악이 나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학창시절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DJ였다. 그러나 아직 한 번도 DJ의 꿈을 실현하지 못했다.
농촌에서 태어난 나는 도시에서 대학생활을 보내면서 학교 근처에서 DJ 아르바이트를 해볼 맘을 먹고 음악다방을 여러 차례 맴돌았다.
그때는 음악보다는 생활비가 부족했던 탓에 돈벌이로 그 일을 생각했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는 음악에 대한 관심도 적지 않았다. 끝내 나는 DJ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시도조차 못 했지만, 그 꿈은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만약 내가 잠시라도 DJ 일을 맡는다면 가장 먼저 요하네스 브람스의 현악 6중주 제1번을 틀고 싶다.
학창시절 다소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나는 ‘장조’보다는 ‘단조’를 좋아했지만, 브람스의 현악 6중주 1번은 장조이면서도 현악이라서 단조적인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나는 유독 브람스를 좋아했다.
브람스의 음악은 물론 그의 초상화를 구하기 위해 전국을 찾아 헤매는 과정도 보냈다.
결국, 그의 초상화는 전국을 돌고 돌다가 내가 사는 곳에서 찾았지만, 그때 브람스를 사랑했던 시간이야말로 지금 생각하면 무척 행복했다.
그 이유는 오로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집중할 수 시간을 스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꿈의 봄’이라 부른다.
계절은 봄이지만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은 겨울바람처럼 차갑다. 인생의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꿈이 절실하다. 봄을 맞이하듯이 스스로 꿈을 맞이할 수 없다면 내재한 힘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같은 얘기를 밥이 상한 것처럼 식상(食傷)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중국 당나라의 고승인 마조도일(馬祖道一)이 언급한 것처럼 진리는 평범한 일에서 찾아야 한다.
이런 실천 말고 다른 방법이 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