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대학진학은 어리석은 선택일 수 있다.

대학진학은 어리석은 선택일 수 있다.

by 운영자 2015.03.19

봄이다. 다시 새로운 봄이다. 지금쯤 대학교 캠퍼스엔 12년간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을 온전히 바친 새내기들의 싱그런 웃음과 희망의 찬가가 울려 퍼지고 있을 것이다.하지만 조금만 들어가 보면 곧 그 희망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거리고 있음을 안다.

국회 보고에 의하면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난 등으로 다시 전문대에 입학한 인원이 지난 3년간 36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로·진학 미스매치로 인한 사회적 낭비가 학비만 2,500억이 넘는다는 보고가 뒤따른다. 1980년대 27%선이던 대학진학률은 1990년대 50%, 2000년대 80%를 정점으로 현재도 70%를 웃돌고 있다.

유럽의 30%선은 물론 미국이나 일본의 60% 선을 훨씬 웃돈다. 오로지 대학을 졸업해야만 취업을 할 수 있고,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우리의 머릿속에 심어놓은 ‘신화’가 아직도 굳건히 자리하고 있는 까닭이다.

물론 대졸자와 고졸자의 임금 격차가 크고 일자리의 질이 달라 어쩔 수 없이 누구나 할 것 없이 대학에 갈 수밖에 없었던 지난 시절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이 있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현실은 이름이 알려진 대학을 졸업하고도 변변한 일자리 하나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니 이를 어찌할까.

거꾸로 4년제 대졸임을 숨기도 학력 하향의 새로운 형태의 위장취업(?)이 나타나기도 한다.

어쨌거나 도토리 하나 때문에 숲 속의 동물들이 일제히 달아나는 것처럼 남이 장을 가니 나도 따라간다는 식의 대학진학은 더는 통하지도 않을뿐더러 까닥하면 인생을 불행으로 이끄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이미 세계경제는 저성장, 제로성장의 넘어 심지어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가고 있으며 이에 따라 갈수록 일자리는 줄고 있고, 인생 100세 시대의 축복은 재앙의 전조가 될 수 있음이 세상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그러기에 왜 대학을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그에 따라 이제 다른 게임을 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태클’의 저자인 김흥기 카이스트 겸직교수는 이야기한다.

패배가 뻔히 보이는 싸움에 무작정 뛰어들지 말고, 이기는 방법을 찾아서 그 방법으로 싸움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가 적성이 아닌 사람이라면 공부가 적성인 사람들과 게임의 규칙이 정해진 장에서 경쟁하려 들면 백전백패할 것임은 너무나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유리한 장에서 경쟁해야 이길 가능성이 큰 건 당연하다.

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처럼, 제리가 톰을 이겨내는 것처럼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 내가 유리한 게임규칙이 있는 곳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능력과 역량을 펼쳐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대학은 누구나 가는 곳이 아니라 일부만이 선택하는 하나의 길에 불과한 것임을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꿈꾸는 인생의 성공과 행복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을 가지 않는 것이 새로운 인생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것, 공부가 자신에게 불리한 게임이었던 누군가에겐 희망의 소식임엔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