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개봉박두

개봉박두

by 운영자 2015.03.26

안성으로 내려가는 길에 양재꽃시장에 들렀다. 나무가게마다 묘목이 가득하다. 감나무, 매화나무, 모과나무, 살구나무, 자두나무, 목련, 계수나무, 산수유, 왕벚나무, 구지뽕나무……. 심으면 그 자리에서 꽃을 볼 수 있는 나무들로 꽉 찼다.묘목이 통통하게 불어있다. 비라도 한 방울 맞으면 금세 새순을 밀어 올릴 태세다. 봄비가 그리운 나무들이다.

아는 이가 꼭 심어보라는 목련 한 주를 샀다. 목련처럼 봄 느낌이 화사하고 그늘이 좋은 나무도 드물다는 거다. 하긴 옷깃에 목을 움츠려 넣고 추운 골목길을 지날 때 문득 만나는 한 바구니 가득 피워낸 길갓집 목련꽃! 그렇도록 놀라운 봄을 선물하는 나무도 실은 드물겠다.

비록 꽃 지는 뒷모습이 누추하긴 해도 사람 마음에 꼭 드는 꽃나무가 어디 쉬울까.

꽃순이 통통한 목련을 사서 차에 싣고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신갈 나들목을 돌아 영동고속도로를 들어서면서부터 하늘과 산빛이 다르다. 보오얗다. 하늘과 산과 들판의 경계가 아물아물 하다.

FM을 틀었다. 봄소식이 속속 들려왔다. 제주 왕벚꽃축제가 3월 하순. 쌍계사 벚꽃축제는 4월 초이며, 서울로 북상하는 벚꽃은 4월 중순에 터진단다. 봄의 개봉박두가 임박하다. 우리 땅의 남쪽이 서서히 꽃물로 차오르는 느낌이다.

오늘 꽃시장에 들렀다 오기를 참 잘했다. 나무 묘목만이 아니다. 온실에서 키워낸 봄꽃들도 가득 나왔다. 예쁘고 앙증맞은 꽃들이다. 우리는 겨우내 꽃에 목말라 있었다.

너무 오래 추위에 시달렸고, 팍팍한 세상 소식에 마음이 너무 멍들었다. 무엇보다 아내의 독감이 길었다. 봄꽃을 보는 순간 그런 불편한 것들이 일시에 사라지고, 어디서 솟아났는지 봄단장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마음을 추스르는데 봄꽃만 한 것이 또 있을까.

양지터널을 나와 남쪽 국도를 따라 달렸다. 백암에서 차를 멈추었다. 마침 오늘이 백암 장날이다. 봄채소 씨앗이 지천이다. 양상추와 비트, 당귀 씨앗을 샀다. 백암로 201번 길에는 나무 묘목이 줄지어 나와 섰다.

블루베리, 대봉시, 자두나무, 사과나무, 포도나무, 메이플, 목단……. 나는 나무들의 유혹에 못 이겨 목단 한 그루를 집어 들었다. 줄기가 튼실하고, 물려있는 새순이 퉁퉁하고 붉다.

목단과 유기농 거름 두 포대를 차에 싣고 안성 집에 도착했다. 우선 목련과 목단을 심었다. 목련은 집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목단은 조용한 내 창가에 심었다.

6월에 꽃을 보리라는 말을 들었는데 벌써 꽃에 대한 기대가 나를 부풀게 한다. 점심 뒤엔 지난 늦가을에 나무마다 입혀주었던 짚 싸개를 모두 벗겼다.

그리고는 덩굴장미, 자두나무, 매화나무, 백일홍나무, 단풍나무, 뜰보리수 전지를 했다. 지난해 영화를 누렸던 마른 꽃들을 모두 뽑아 봄이 들어설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

4월, 2015년이 개봉할 첫 상영작은 봄이다. 개봉을 기다리는 이들만도 수십억이다. 겨울을 견뎌내고 있는 인류라면 다들 봄을 애타게 기다린다. 개봉과 동시에 관객 수는 기존의 기록을 돌파할 것이고, 그 어떤 상영작보다 관객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리라 믿는다.

등장하는 자연이라 해봐야 늘 그 자연이지만 그들의 연기력은 해마다 신선하고 생동감 있다. 단언컨대 관객 수 경신을 자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