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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터가 풍경이 된 마을

삶터가 풍경이 된 마을

by 운영자 2015.03.27

나이의 무게를 느끼면서 해외여행 패턴이 집중과 선택으로 바뀐다. 예전엔 한 나라라도 더 끼워 넣으려 했지만, 허욕이고 과시욕이다. 전투하듯 바쁜 일정에 쫓기는 것은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다.여행도 가슴 떨릴 때 해야지 다리가 떨리기 시작하면 어렵다. 여장을 풀고 꾸리는 것도 힘들고 장거리 이동도 고역이다.

유적지에서 역사를 더듬는 것도 기억이 가물거려 벅차다.

지난해 동유럽여행 때 비행기 엔진고장으로 모스크바에 불시착한 영향으로 장시간 비행기를 타는 것도 불안하다. 시차 적응과 피로회복도 예전 같지 않고 더디다.

최근 일주일간의 유럽여행은 주변 나라를 빼고 이탈리아에 집중했다. 영원한 도시 로마와 폼페이는 두 번째 방문이지만 도도한 패션도시 밀라노,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 물의 도시 베니스는 처음이다. 북서부 라 스페치아 지방의 친퀘테레(Cinque Terre)는 이탈리아어로 ‘다섯 개의 땅’을 뜻하는 해안가 절벽 마을로 삶터가 풍경이 됐다.

라 스페치아 역에서 출발하는 2층 열차에 올랐다. 관광 비수기라 관광객보다 현지인들이 많다. 주민 네 사람이 마주보고 앉아 담소하는 모습이 평화롭다. 차창에 기대 돋보기를 쓰고 신문을 읽는 할아버지도 느긋하다. 덩치 큰 개와 함께 탄 주민의 덩치도 만만찮고 덩치만큼 여유 넘치는 표정이다.

친퀘테레 마을은 리오마조레, 마나롤라, 코니글리아, 베르나차, 몬테로소 알 마레 등 다섯 곳이다. 각기 다른 매력을 품은 해안 절벽 마을이지만 파스텔 톤의 집과 미로 같은 좁은 골목, 동화 같은 포구는 서로 닮았다.

유네스코는 아름다운 마을들과 절벽 길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해 놓았다. 당일치기 친퀘테레 카드를 이용해 다섯 마을을 순회하는 완행열차를 타고 아무 데서나 내려 돌아볼 수 있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은 10여㎞에 불과해 호젓하게 걸을 수 있다.

첫 번째 마을 리오마조레에서 내렸다. 짙푸른 바다와 아청빛 하늘이 맞닿은 지중해를 발밑에 거느리고 언덕 위에 층층이 들어선 형형색색의 집들은 동화 속 풍경처럼 아름답다. 한낮의 햇살은 은비늘로 부서지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색깔도 푸르다.

산비탈 길을 따라 쉬엄쉬엄 마을을 돈다. 아기자기한 좁은 골목마다 레스토랑과 앙증맞은 가게가 보인다. 자동차의 메케한 매연과 소란한 경적이 없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비탈길 좁은 골목이니 차가 다닐 수 없다. 로마와 밀라노 등 대도시 마다 주차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갓길이나 도로 분리대에 주차한 차량은 묘기에 가깝다. 장난감 같은 2인용(Smart)과 1인용(TWIZY) 경차가 늘어나는 이유다.

포구로 발길을 돌린다. 포구에서 올려다보니 집들의 색깔이 더욱 선명하다.

바다로 나가 고기잡이하다 돌아오면 자기의 집을 쉽게 구별할 수 있게 멋진 색으로 외벽을 칠했다고 한다.

지중해의 해풍과 뜨거운 햇살을 먹고 자란 이곳 포도로 빚은 와인은 친퀘테레와 샤케트라 두 종류. 많은 문인들이 이곳 포도주를 ‘달의 와인’이라 칭송했다기]에 포구의 와인 바를 노크했더니 문이 닫혔다. 관광 성수기를 앞두고 선박 수리와 집 도색 등 단장이 한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