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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순천인 이중근 회장

자랑스러운 순천인 이중근 회장

by 운영자 2015.03.30

전국 어디서나 <사랑으로>란 로고가 선명한 아파트로 유명한 부영의 이중근 회장은 1991년 순천부영초등학교 신축기증 이후 전국 140여 곳의 대학, 초 중 고교에 기숙사, 도서관, 체육관 등 교육·복지시설을 기증했고, 2003년부터는 아태 및 아프리카로 영역을 확대 16개국 600여 학교에 피아노 6만 대, 칠판 60만 개 등을 기부했다.교육입국(敎育立國, 교육을 통해 나라를 튼튼하게 세움)의 철학을 추구하는 이회장이 최근엔 한국전쟁은 세계 3차대전에 다름없다며 대한민국을 위해 국군과 UN군들이 치룬 한국전의 방대한 기록을 요약한 <6.25 참전1129일>을 발간, 무료 배포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6.25전쟁 1129일>은 1950년 6월 25일 새벽4시 242대의 탱크와 170대의 전투기를 앞세운 북한군이 남한에 전면 남침을 개시한 시점부터, UN 측과 공산 측이 2년여에 걸친 회담 끝에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정전협정을 체결하기까지 1129일간, 한반도를 중심으로 국제사회에서 벌어진 일들을 정성껏 수집해 기록했다.

북한군은 개전 4일 만에 서울에 진입했고, 파죽지세로 남하한 북한군은 8월 초 형성된 낙동강방어선의 교착상태가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고비로 무너져, UN군과 한국군은 북한군을 격멸하는 전세로 바뀌게 됐다.

9월 28일에는 서울이 수복되고, 10월 1일 38선을 돌파했다.

그러나 10월 중공군의 1차 공세에 UN군 대부분이 붕괴되거나 고립됐고, 중공군의 2차 공세에 미 제2사단이 괴멸되고 장진호에서 미 제1해병사단이 포위됐으나, 미 제10군단의 흥남철수작전은 10만 명이 넘는 군 병력과 피란민 9만 1000명, 1만 7500대의 각종 차량과 35만 톤의 물자를 수송해냈고, 특히 마지막 출항선인 메러디스 빅토리 호는 무기와 물자를 버리고 정원의 230배를 초과하는 1만 4000명의 피란민을 구한 6.25전쟁이 낳은 인간승리의 대탈출이었다.

그러나 1953년 3월 5일 스탈린이 갑자기 뇌출혈로 사망하자 전쟁은 급격히 휴전협상으로 집중됐다. 그러나 엄청난 희생과 피의 대가가 전쟁 직전 상태의 협상이라는 데 국민들도 분노했고 이승만 대통령도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휴전에 반대, 미국과 사전 협의 없이 반공포로 2만 7389명을 6월 18일 석방했다.

이에 미국무부는 한국정부와 14차례 협상 끝에 1953년 7월 12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됐으나 65년이 흐른 현재까지 북한의 남한 적화통일 정책은 일획도 변함이 없다.

역사는 거짓이 없다. 자조(自助), 상조(相助)하는 나라는 천조(天助)를 받을 수 있으나, 그와 반대 길을 가는 나라는 스스로 망국을 자초한다는 게 역사의 준엄한 교훈이요, 만고불변의 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