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의 봄에서 ‘저만치’의 깨달음을 얻다
하동의 봄에서 ‘저만치’의 깨달음을 얻다
by 운영자 2015.03.31
꽃샘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매화, 산수유를 시작으로 봄꽃들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때에 맞추어 피어나는 봄꽃들을 보노라면 신기함과 경이로움이 절로 일어난다.육상 중거리경기의 릴레이 주자처럼 매화-산수유-개나리-벚꽃-진달래-철쭉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꽃 팀은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 있는 즐거움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난 주말 좋은 사람들과 매화 향기를 쫓아 물길과 꽃길의 고장 하동을 다녀왔다. 화개장터에 도착하니 매화 향기가 코를 향기롭게 자극한다. 장터 아래 섬진강 작은 개울엔 때 이르게 천렵하는 아이들의 싱그런 웃음소리가 강물과 함께 흐른다.
미안한 느낌이 순간 스쳤지만 매화 하면 먼저 떠오르는 곳은 사실 광양이다.
하지만 안내하는 지인은 아쉬움을 숨기지 않은 채 매화의 본향은 하동이라며 매화 향기 가득한 먹점마을로 일행을 안내했다. 여기서 어디가 매화의 시작인지 따지려 하는 것이 아니다.
고즈넉한 하동길을 가노라니 섬진강 너머 전남 광양의 매화 숲이 한눈에 들어온다. 끝없이 이어지는 관광버스와 차들도 이미 숲이 되어있다.
몸은 하동에 있는데 멀리 광양땅의 매화가 눈에 아름답게 들어오더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 시간 광양땅에 있는 누군가의 눈에는 하동의 매화가 눈부시게 보였을 것이다.
어라, 그렇구나. 순간 세상의 이치랄까, 삶의 작은 깨달음이 스치듯 지나간다. 무엇의 진면목, 제대로 된 모습을 알려면 조금 떨어져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육지의 아름다운 모습은 바다로 나가 육지를 바라볼 때 느낀다고 한다. 밀착접근으로 아이들을 다그치고 서로의 배우자에게 짜증을 내는 우리네 세상살이가 거기에 그대로 오버랩된다. 섬진강 너머로 광양의 매화는 하동에서, 하동의 매화는 광양에서 사랑하는 연인 바라보듯 하면 매화의 진수, 진한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의 두 이웃, 하동과 광양 사람들이 서로의 매화를 아끼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모습,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즐거움이 넘실댄다.
양쪽의 사람들이 걷기모임을 만들어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이쪽도 걸어보고 저쪽도 걸어보면 참 좋겠다.
시비하기보다는 함께 어우렁더우렁 조화를 이루어 더 큰 가치를 만들어가는 세상이지 않은가. 한 치의 오차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적 삶 속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작은 여유이다.
그 여유는 삶에서 한 발짝 떨어져 나올 때 생긴다. ‘저만치’ 떨어져 바라볼 때 삶의 본 모습, 실상이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실마리 없이 엉키고 감정의 앙금들로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는 세상살이에 저만치의 작은 여유가 그립다.
여정 중 즐거운 밤에 함께 불렀던 조영남의 화개장터가 중년 사내의 귓가에 섬진강 물 흐르듯 아직 맴돈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저만치 봄이 오고 있다. 봄이다.
지난 주말 좋은 사람들과 매화 향기를 쫓아 물길과 꽃길의 고장 하동을 다녀왔다. 화개장터에 도착하니 매화 향기가 코를 향기롭게 자극한다. 장터 아래 섬진강 작은 개울엔 때 이르게 천렵하는 아이들의 싱그런 웃음소리가 강물과 함께 흐른다.
미안한 느낌이 순간 스쳤지만 매화 하면 먼저 떠오르는 곳은 사실 광양이다.
하지만 안내하는 지인은 아쉬움을 숨기지 않은 채 매화의 본향은 하동이라며 매화 향기 가득한 먹점마을로 일행을 안내했다. 여기서 어디가 매화의 시작인지 따지려 하는 것이 아니다.
고즈넉한 하동길을 가노라니 섬진강 너머 전남 광양의 매화 숲이 한눈에 들어온다. 끝없이 이어지는 관광버스와 차들도 이미 숲이 되어있다.
몸은 하동에 있는데 멀리 광양땅의 매화가 눈에 아름답게 들어오더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 시간 광양땅에 있는 누군가의 눈에는 하동의 매화가 눈부시게 보였을 것이다.
어라, 그렇구나. 순간 세상의 이치랄까, 삶의 작은 깨달음이 스치듯 지나간다. 무엇의 진면목, 제대로 된 모습을 알려면 조금 떨어져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육지의 아름다운 모습은 바다로 나가 육지를 바라볼 때 느낀다고 한다. 밀착접근으로 아이들을 다그치고 서로의 배우자에게 짜증을 내는 우리네 세상살이가 거기에 그대로 오버랩된다. 섬진강 너머로 광양의 매화는 하동에서, 하동의 매화는 광양에서 사랑하는 연인 바라보듯 하면 매화의 진수, 진한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의 두 이웃, 하동과 광양 사람들이 서로의 매화를 아끼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모습,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즐거움이 넘실댄다.
양쪽의 사람들이 걷기모임을 만들어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이쪽도 걸어보고 저쪽도 걸어보면 참 좋겠다.
시비하기보다는 함께 어우렁더우렁 조화를 이루어 더 큰 가치를 만들어가는 세상이지 않은가. 한 치의 오차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적 삶 속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작은 여유이다.
그 여유는 삶에서 한 발짝 떨어져 나올 때 생긴다. ‘저만치’ 떨어져 바라볼 때 삶의 본 모습, 실상이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실마리 없이 엉키고 감정의 앙금들로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는 세상살이에 저만치의 작은 여유가 그립다.
여정 중 즐거운 밤에 함께 불렀던 조영남의 화개장터가 중년 사내의 귓가에 섬진강 물 흐르듯 아직 맴돈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저만치 봄이 오고 있다.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