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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한 것

남이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한 것

by 운영자 2015.06.16

얼마 전 우리나라에 외국 스님들이 몇 분 방문했다. 외국 스님 인터뷰 가운데 티베트의 사캬 티진(70) 스님의 이런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우리가 세상에 온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스스로도 행복해지고, 남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다. 그걸 알아야만 삶의 의미가 생긴다.”

타인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할 때 삶의 의미가 있으며, 자타가 모두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에 공감이 간다. 마침 이 무렵, 대학생 과제 가운데 이와 비슷한 내용을 발견하였다. 강좌명이 명상 혹은 자아 성찰과 관련되기 때문에 ‘인생의 소중한 것에 대한 마음가짐이나 실천 방향을 써보라’는 주제이다.

대학생들 과제는 전반적으로 내용이 비슷하다. 자신이 소유한 것이나 희망,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언급한다. 국문과생 중에는 문학성을 띤 아름다운 문장으로 자신을 미화한 경우도 있다. 앞에서 말한 대로 가슴 따스한 내용이 있어 소개하려고 한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원하는지에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숙고를 거친 결과, ‘남이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남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현재는 주말마다 봉사활동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도 정기적으로 봉사활동 할 예정이다. … 훗날 돈을 많이 벌고 싶다.

내가 쓸 돈은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 내가 맛있는 거 하나 덜 먹고 옷 하나 덜 사면 남에게는 꼭 필요한 것을 해줄 수 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되 나의 사치를 위해 쓸 것이 아니라 남에게 베푸는 생활을 하고 싶다.

물론 살아가면서 이 신념이 흔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런 생각을 하루에 한 번씩 하면서 살아간다면 결코 내가 세운 신념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대학 2학년 남학생의 글을 읽고, 한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지만, 존경스럽다고 하면 맞을 것이다. 물론 저 학생의 말대로 생활하면서 신념을 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그 학생의 진심을 믿는다. 불교에서도 수행으로 베풂(보시)을 강조하는데, 마음만큼 쉽게 행동으로 옮겨가지 않는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베풂을 우선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요, 사람이 가장 향기롭다.

일전에 읽은 류시화 씨의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에 있는 내용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인도 철학자 크리슈나무르티는 제자들과 함께 기차로 인도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제자들은 기차 안에 모여 앉아 명상이 무엇인가를 격렬하게 토론하였는데 결론이 나지 않자, 한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 저희들이 아무리 토론해도 명상에 대해 정의내릴 수 없습니다. 명상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타고 가는 이 기차가 조금 전에 철로에서 염소를 한 마리 치었다. 그래서 기차가 잠시 멎었다가 떠났다. 그런데 그대들은 명상 토론에 열중해 있느라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을 몰랐다. 그것은 명상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