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까지도 사랑해야지
그림자까지도 사랑해야지
by 운영자 2015.06.25
메르스 감염이 주로 병원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에 문득 서형이 생각났습니다.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습니다. 별일 없이 통원치료를 잘 받고 있다면서도 목소리에 힘이 없습니다. 서형에겐 오래도록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아내가 있습니다.
서형의 아내는 신장이 건강하지 못해 일주일에 두어 번씩 투석을 받으러 병원을 드나들어야 합니다. 내가 알기로 20여 년이 넘었습니다.
지난해에 퇴직하였으니, 서형은 그동안 직장을 다니면서, 글을 쓰면서, 아내의 간병까지 맡아 했을테니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테지요. 집안에 우환이 있으면 본인도 그렇지만 가족이 모두 힘을 잃게 마련입니다.
“가족과 함께 여행 많이 하세요.”
서형이 그 말을 하였습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아내가 병석에 있으니 한시도 집을 비울 수 없을 테지요. 집에서 여자가 해야 할 일이 또 좀 많습니까. 그 일을 도맡아 하지야 않겠지만, 서형의 손이 아무래도 많이 갈 테지요.
그런 그가 1995년 일본 여행을 혼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기내에서 자신도 모르게 한참을 울었답니다. 왜 울었느냐고, 서형의 마음속 대답을 꼭 듣고 싶어 물었습니다. “막막해서.” 서형이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또 알 것 같았습니다. 완치되는 우환이 아니고 보면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서는 일은 어쩌면 이승에서는 요원할지 모릅니다. 한번 가보려고 해도 도저히 갈 수 없는, 벽 앞에 서 있는 심정이 그 막막함이겠지요.
저번에는 간신히 날짜를 잡아 서울역 근처에서 저녁식사 모임을 가졌습니다. 한창 술기운이 돌 때쯤입니다. 음식점의 열린 문으로 소리 없이 나가는 서형을 보았습니다. 나는 얼른 뒤따라 나가 좀 있다 함께 가자며 서형의 손을 잡았습니다.
“권형만 알고 있어. 9시가 넘으면 집사람이 우울해지는가 봐. 옆을 지켜주려고.”
그 말을 남기고 서형은 서부역 건널목을 투덕투덕 건너갔습니다. 외로이 밤길을 건너가는 서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려니 마음이 찡했습니다. 이 밤, 병석을 지켜줄 사람은 서형밖에는 없습니다. 분가한 자식들은 또 자식들이지요. 그들도 사는 일이 우리의 젊은 시절이 그러했듯 바쁘고 힘들게 뻔합니다.
“내 그림자까지 내가 사랑해야 할 몫인 것 같아.”
서형은 자신에게 닥친 그늘을 피하기보다 받아들이는 편이었습니다. 점점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그만 돌아섰습니다.
오늘 낮에 마당에 나갔습니다.
뜨거운 볕에 채송화가 곱게 피었습니다. 꽃빛이 참 앙증맞도록 예쁩니다. 유월이 떨어뜨려놓 은 황홀한 빛깔입니다. 근데 그 예쁜 꽃 뒤에도 꽃그늘이 숨어 있습니다.
예쁘고, 빛나는 존재의 뒤에도 다 어두운 그늘이 있기 마련인가 봅니다. 그러나 꽃은 그 그늘로 하여 낙담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 그늘을 딛고 고운 꽃을 피웁니다. 눈물에 젖었으나 이제는 눈물을 이겨낸 서형의 아름다운 사랑을 보는 듯합니다.
서형의 아내는 신장이 건강하지 못해 일주일에 두어 번씩 투석을 받으러 병원을 드나들어야 합니다. 내가 알기로 20여 년이 넘었습니다.
지난해에 퇴직하였으니, 서형은 그동안 직장을 다니면서, 글을 쓰면서, 아내의 간병까지 맡아 했을테니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테지요. 집안에 우환이 있으면 본인도 그렇지만 가족이 모두 힘을 잃게 마련입니다.
“가족과 함께 여행 많이 하세요.”
서형이 그 말을 하였습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아내가 병석에 있으니 한시도 집을 비울 수 없을 테지요. 집에서 여자가 해야 할 일이 또 좀 많습니까. 그 일을 도맡아 하지야 않겠지만, 서형의 손이 아무래도 많이 갈 테지요.
그런 그가 1995년 일본 여행을 혼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기내에서 자신도 모르게 한참을 울었답니다. 왜 울었느냐고, 서형의 마음속 대답을 꼭 듣고 싶어 물었습니다. “막막해서.” 서형이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또 알 것 같았습니다. 완치되는 우환이 아니고 보면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서는 일은 어쩌면 이승에서는 요원할지 모릅니다. 한번 가보려고 해도 도저히 갈 수 없는, 벽 앞에 서 있는 심정이 그 막막함이겠지요.
저번에는 간신히 날짜를 잡아 서울역 근처에서 저녁식사 모임을 가졌습니다. 한창 술기운이 돌 때쯤입니다. 음식점의 열린 문으로 소리 없이 나가는 서형을 보았습니다. 나는 얼른 뒤따라 나가 좀 있다 함께 가자며 서형의 손을 잡았습니다.
“권형만 알고 있어. 9시가 넘으면 집사람이 우울해지는가 봐. 옆을 지켜주려고.”
그 말을 남기고 서형은 서부역 건널목을 투덕투덕 건너갔습니다. 외로이 밤길을 건너가는 서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려니 마음이 찡했습니다. 이 밤, 병석을 지켜줄 사람은 서형밖에는 없습니다. 분가한 자식들은 또 자식들이지요. 그들도 사는 일이 우리의 젊은 시절이 그러했듯 바쁘고 힘들게 뻔합니다.
“내 그림자까지 내가 사랑해야 할 몫인 것 같아.”
서형은 자신에게 닥친 그늘을 피하기보다 받아들이는 편이었습니다. 점점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그만 돌아섰습니다.
오늘 낮에 마당에 나갔습니다.
뜨거운 볕에 채송화가 곱게 피었습니다. 꽃빛이 참 앙증맞도록 예쁩니다. 유월이 떨어뜨려놓 은 황홀한 빛깔입니다. 근데 그 예쁜 꽃 뒤에도 꽃그늘이 숨어 있습니다.
예쁘고, 빛나는 존재의 뒤에도 다 어두운 그늘이 있기 마련인가 봅니다. 그러나 꽃은 그 그늘로 하여 낙담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 그늘을 딛고 고운 꽃을 피웁니다. 눈물에 젖었으나 이제는 눈물을 이겨낸 서형의 아름다운 사랑을 보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