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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 결혼식 따라잡기

들판 결혼식 따라잡기

by 운영자 2015.06.26

주례 없는 결혼식을 가끔 본다. 신랑 신부가 나란히 입장하여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혼인서약을 한다. 부모님께 감사의 편지를 낭독하는 게 틀에 박힌 주례사보다 신선하다.신랑이 나비넥타이 차림의 아버지와 함께 입장하고, 신부가 아버지 손을 잡고 등장할 때 피아노 반주에 맞춘 결혼행진곡 대신 귀에 익은 경쾌한 팝송이 흘러 나오기도 한다. 신부에게 바치는 노래를 신랑이 직접 부르는 것도 진화다.

인기배우 원빈·이나영 커플의 들판 결혼식은 형식 파괴의 모범사례다. 훈풍에 일렁이는 초록 밀밭 사이를 걸어 나와 혼인서약을 했다. 가족·친지 50여 명만이 참석해 비공개로 진행됐다고 한다.

들판에 솥을 걸고 잔치국수를 삶는 풍경도 소박해서 좋다. 원빈의 고향은 강원도 정선 여량리로 결혼식을 올린 들판은 정선읍 덕우리다.

부근 덕산기계곡은 뼝대(강기슭의 높은 바위 절벽을 뜻하는 강원도 말)를 감싸고 흐르는 맑은 물과 예능프로 촬영지로 주목받으면서 관광객이 늘어나는 부수적인 효과도 톡톡히 누린다.

이벤트성 연출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대중 전파력이 강한 연예인의 이색 결혼식이 소박한 결혼문화의 기폭제가 된다면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호화결혼식은 당사자는 물론 혼주와 하객 모두에게 부담을 주고 서민들에게 박탈감을 준다. 일반 예식장도 하객들이 밀물처럼 몰려왔다가 예식은 보는 둥 마는 둥 식당으로 우르르 몰려간다.

누가 다녀갔는지 축의금 봉투로 확인한다. 비싼 비용 부담과 감동 없는 결혼식을 바꿔보자는 인식은 확산되고 있으나 어쩔 수 없이 되풀이되는 것은 부모와 자신이 낸 축의금을 무시하거나 내려놓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결혼식보다,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결혼식, 적은 비용으로 치르는 실속 결혼식의 확산 추세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들판 결혼식이 별건가. 월드컵공원 평화의 공원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소풍 결혼식’을 치르는 것도 원빈·이나영 커플 따라잡기다. 재생용지로 청첩장을 만들고 축의금 일부로 나무를 심으면 된다.

스토리텔링이 담긴 대본을 만들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실속 있는 작은 결혼식 장소로 공공기관 활용이 효율적이다. 양재시민의 숲, 서울시 인재개발원 등도 예식공간으로 내놨다. 광화문 근처 국립민속박물관은 다문화가정 전통혼례를 올릴 수 있다.

청와대 사랑채 이용 조건은 혼례비용을 부모의 지원 없이 예비부부 힘으로 마련해야 하며 하객은 100명 안팎으로 제한한다. 서울시청 시민청은 3개월 전에 신청해야 할 될 정도로 인기다.

예비부부가 교육을 받아야 하고 하객 규모는 120명 내외, 결혼비용은 500만∼600만 원 정도. 홀 테이블과 조화, 신부대기실과 전통혼례를 위한 족두리 등은 시에서 무료로 제공해주니 비용이 절감된다.

저렴한 가격에 결혼 예식을 올릴 수 있게 장소를 제공하는 공공기관은 전국적으로 140여 곳. 여성가족부에서 운영하는 ‘작은 결혼 정보센터’ 홈페이지에서 전국 공공시설 웨딩홀 현황과 이용요금을 확인할 수 있다.

남들 따라 하기 결혼식에서 벗어나 둘만의 의미를 아로새길 소박한 작은 결혼식이 빠르게 정착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