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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미 박사의 순천만 이야기 ③ - 개개비

황선미 박사의 순천만 이야기 ③ - 개개비

by 운영자 2015.07.02

‘개~개~개~삐~삐~삐’ 내 사랑을 받아 줘
겨울철새들이 번식지로 이동을 마치고 봄 햇살이 시나브로 순천만을 점령해 가면 갯벌에 뚫린 수만 개의 구멍을 따라 갈대는 새 생명의 촉을 틔우며 역동적인 순천만의 봄을 알린다.4월 말부터 6월까지 갈대 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채 세상을 향해 목청껏 노래 부르는 새가 있다. 바로 개개비다. ‘개~개~개~삐~삐~삐’ 하고 노래 부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개개비는 참새목 휘파람새과에 속하며 서부유럽에서 동아시아까지 번식하고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겨울을 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여름철에 볼 수 있는 여름철새다.

개개비 수컷은 4월 말부터 순천만 갈대밭에 도착해 새끼를 키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선점하고 세력권을 형성하는데 주로 갈대의 밀도가 높고 만조시 둥지가 물에 잠기지 않는 장소를 선호한다.

세력권을 형성한 수컷은 복잡하고 다양한 노랫소리를 낸다. 노랫소리는 참새목 명금류에게서 나타나는 음성적 과시인데 다른 수컷의 세력을 경계할 때는 1~3음절의 짧은 노랫소리를 내고 암컷을 구애할 때는 7~20음절의 긴 노랫소리를 낸다.

개개비 암컷이 수컷을 선택하는 기준은 세력권으로 확보한 넓은 갈대밭이나 잘생긴 외모가 아니다. 바로 이 노래 실력이다. 얼마나 독창적인 콘셉트로 다양한 레퍼토리를 구사하느냐가 짝짓기 성공률을 결정한다.

짝짓기에 성공하면 한 배에 4~5개의 알을 낳는데 이때부터 개개비의 노랫소리는 현저히 줄어든다. 새끼를 안전하게 키워내기 위해 노출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이다.

최대한 높은 곳에 올라 자신의 존재감을 알릴 때와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 된다. 몸높이를 최대한 낮추고 갈대 줄기 사이로 은밀하게 이동하기 때문에 개개비의 위치는 갈대의 미세한 움직임과 갈잎의 서걱거리는 소리로 확인할 수 있다.

개개비의 새끼 사랑은 매우 극진하다. 파리, 거미 등을 잡아 쉴 새 없이 새끼에게 물어 나르고 새끼가 내놓은 배설물은 어미새가 먹거나 물어다 멀리 내다 버린다.

배설물이 갈대밭에 사는 너구리, 삵 등 천적에게 노출 되면 새끼들이 위험해 지기 때문이다.

6월 말 순천만 갈대밭에 개개비 노랫소리가 현저히 줄었다. 포란에 들어간 개개비는 갈대숲에 몸을 숨긴 채 예민하게 주변을 살피고 있고 아직 짝을 찾지 못한 수컷의 애처로운 노랫소리가 간혹 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순천만 초록빛 갈대숲.

기다림과 만남, 그리고 고귀한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내는 생명의 터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