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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미의 순천만 이야기 ⑥ - 도둑게

황선미의 순천만 이야기 ⑥ - 도둑게

by 운영자 2015.07.23

순천만 용산에 도둑게가 산다마른 장마가 지속되는 가운데 최근 연달아 태풍이 몰고 온 수증기로 순천만에 단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면 습지의 생명력은 배가 된다.

갯벌주변 육상에 만들어진 물웅덩이는 그동안 육지에서 숨어 지내던 뭇생명들의 놀이터가 된다. 이들 중 가장 먼저 존재감을 알리며 얼굴을 내미는 녀석이 바로 도둑게다.

도둑게는 억세 보이는 빨간 집게 다리와 무성한 털을 지닌 걷는 다리를 재빨리 움직이며 사람 무서운지 모르고 자꾸만 눈앞에서 오락가락한다. 탐방객들은 갯벌이 아닌 육지에 갑자기 나타난 게들을 신기해 한다.

하지만 어촌마을 사람들에게는 마당, 장독대, 심지어 방안까지 드나드는 제법 친숙한 게다. 도둑게는 바다와 강이 만나는 기수역에서 주로 서식하며 바닷가 해안선 부근에 위치한 어촌마을의 정제(부엌)에서 음식을 훔쳐 먹는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에는 부엌이 대부분 실외에 위치해 도둑게의 표적이 됐으나 지금은 대부분의 음식을 냉장고에 보관하기 때문에 도둑게의 먹이활동은 더욱 제약 받고 있다.

그러나 도둑게는 과거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인가 주변을 배회하며 살고 있다.

도둑게는 산에서도 산다. 나무의 씨앗이나 열매를 먹이 삼아 주로 해안선과 인접한 야산에 구멍을 뚫고 생활한다.

용산전망대로 가는 길가 주변에 커다랗게 뚫린 구멍이 바로 도둑게 집이다.

비가 오는 날 용산을 오르면 구멍 밖으로 얼굴을 반쯤 내밀고 있거나 소나무를 타고 올라가 솔잎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한다.

짝짓기를 한 도둑게는 7월 중순에서 9월말까지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바닷가로 나간다. 달의 인력에 태양의 인력이 더해지는 보름, 바닷물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날을 택해 알을 털러 바다로 나가는 것이다.

알(조에아)은 바닷물에 떠다니며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이로 성장한다. 조에아에서 새끼게로 성장하기까지 보통 6개월에서 1년 남짓 걸리는데 자라는 동안 물고기, 조개 같은 바다 동물에게 잡아 먹히기도 한다.

결국 아주 적은 수만 살아남아서 순천만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최근 알을 털러 바다로 향하는 도둑게의 이동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국내 갯벌매립으로 인한 해안선 직선화, 해안가의 구조물 설치, 해안도로 개설이 증가되면서 이들의 행렬이 무참히 짓밟히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 생태계속에서 혹독한 경쟁과 치열한 생존경쟁이야 어찌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인간의 인위적 간섭에 의해 그 질서를 파괴하는 것만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