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메달의 행복
은메달의 행복
by 운영자 2015.09.03
올림픽과 같은 국제경기 시상식 장면에서 특이한 광경을 종종 본다.바로 시상대에 올라선 선수들의 표정이다. 금메달 수상자를 가운데 두고 은메달과 동메달 수상자가 좌우에 서게 되는데, 이들의 표정이 순위와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가장 기뻐해야 할 금메달 수상자는 눈물을 흘리고 있고, 다음 기뻐해야 할 은메달 수상자는 뭔가 시원찮은 표정으로 시무룩해 있으며, 오로지 동메달 수상자만 싱글벙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순위대로 한다면 가장 크게 웃어야 할 사람은 금메달 수상자이고, 가장 애석하여 눈물을 많이 쏟아야 할 사람은 동메달 수상자인데, 어찌하여 표정이 그리 뒤바뀐단 말인가?
물론 금메달 수상자의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닐 것이다. 눈물은 기쁨에 겨울 때도 솟아나지 않는가. 그동안 금메달을 목표로 피나는 훈련을 거듭해 왔는데, 마침내 소망을 이루었으니 어찌 감격의 눈물이 나오지 않겠는가!
문제는 은메달 수상자의 표정이다. 왜 자기보다 못한 동메달 수상자는 환호작약하는데, 더 나은 메달을 목에 걸고서도 마음이 편치 않은가? 대답은 간단하다. 마음 상태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속마음을 한 번 들여다보자.
먼저 은메달 수상자는 은메달을 딴 기쁨에 앞서 금메달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다.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금메달을 딸 수 있었는데….’
코앞에까지 다가온 금메달을 아차 하는 순간에 잃어버렸으니, 다 잡았던 고기를 놓친 것 같은 허탈감을 쉽게 지울 수가 없다.
반면에 동메달 수상자는 그나마 천만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이거라도 땄으니 망정이지, 까딱 잘못했으면 얼굴도 못 들고 다닐 뻔했잖아!’
그는 준결승에서 탈락해 은메달과 멀어지는 순간 마지막 희망인 동메달에 목숨을 걸었다.
‘동메달이라도 따야 한다. 그마저 놓치면 끝장이다!’
그리하여 3·4위 결정전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싸웠고, 마침내 동메달을 거머쥐게 된 것이다. 지옥의 문턱까지 갔다가 천당에 돌아왔으니 어찌 기쁘고 감격스럽지 않겠는가. 그에게는 동메달도 감지덕지일 따름이다.
바로 여기서 행복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은메달을 따고서도 의기소침하고, 동메달을 따고서도 의기양양할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많이 가지고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적게 가지고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 그것은 결국 자신의 마음가짐에 좌우되는 것이 아닌가.
어느 선수든지 목표는 금메달이다. 선수가 금메달을 욕심내는 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소유욕과 성취욕이 있지 않은가. 금메달을 따서 최고라는 말도 듣고 싶고, 박수도 받고 싶은 것은 당연한 욕구이다.
그러나 금메달을 원한다고 누구나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는 사람은 최후의 한 사람뿐이다.
따라서 금메달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좋으나 거기에 너무 목을 매어서도 곤란하다. 다음을 기약하며 어느 정도에서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 최고가 되지 못했다고 자책에 빠질 것이 아니라, 현재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메달을 따지도 못하고 탈락한 수많은 선수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에 비하면 은메달은 얼마나 큰 영광인가!
행복의 방정식이라는 것이 있다.
이에 따르면 행복은 ‘욕망’이 분모이고 ‘성취’는 분자이다. 따라서 행복의 수치를 높이려면 분자인 성취를 키우든지, 아니면 분모인 욕망을 줄여야 한다.
혹 분자인 성취가 낮더라도 분모인 욕망을 그보다 낮추면 행복의 수치는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대개 우리는 낮은 성취에도 불구하고 욕망을 날로 키움으로써 스스로 행복의 수치를 떨어뜨리곤 한다.
행복은 만족의 문으로 들어오고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다. 진정 행복한 사람은 지금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올림픽 시상식의 은메달 수상자도 금메달의 아쉬움을 훌훌 털고 동메달 수상자보다 더 크게 웃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는 완벽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편파 판정으로 은메달에 머무르고 말았다. 순위를 발표하는 순간, 방송을 시청하던 우리 국민들은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
나는 김연아의 표정이 궁금해졌다. 놀랍게도 시상대에 선 그는 시종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 금메달을 목에 건 러시아 선수와도 웃으며 악수를 나누었다.
속마음이야 어찌 판정에 불만이 없었겠을까만 조금도 아쉬운 기색을 비치지 않았다.
내가 김연아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장 기뻐해야 할 금메달 수상자는 눈물을 흘리고 있고, 다음 기뻐해야 할 은메달 수상자는 뭔가 시원찮은 표정으로 시무룩해 있으며, 오로지 동메달 수상자만 싱글벙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순위대로 한다면 가장 크게 웃어야 할 사람은 금메달 수상자이고, 가장 애석하여 눈물을 많이 쏟아야 할 사람은 동메달 수상자인데, 어찌하여 표정이 그리 뒤바뀐단 말인가?
물론 금메달 수상자의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닐 것이다. 눈물은 기쁨에 겨울 때도 솟아나지 않는가. 그동안 금메달을 목표로 피나는 훈련을 거듭해 왔는데, 마침내 소망을 이루었으니 어찌 감격의 눈물이 나오지 않겠는가!
문제는 은메달 수상자의 표정이다. 왜 자기보다 못한 동메달 수상자는 환호작약하는데, 더 나은 메달을 목에 걸고서도 마음이 편치 않은가? 대답은 간단하다. 마음 상태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속마음을 한 번 들여다보자.
먼저 은메달 수상자는 은메달을 딴 기쁨에 앞서 금메달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다.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금메달을 딸 수 있었는데….’
코앞에까지 다가온 금메달을 아차 하는 순간에 잃어버렸으니, 다 잡았던 고기를 놓친 것 같은 허탈감을 쉽게 지울 수가 없다.
반면에 동메달 수상자는 그나마 천만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이거라도 땄으니 망정이지, 까딱 잘못했으면 얼굴도 못 들고 다닐 뻔했잖아!’
그는 준결승에서 탈락해 은메달과 멀어지는 순간 마지막 희망인 동메달에 목숨을 걸었다.
‘동메달이라도 따야 한다. 그마저 놓치면 끝장이다!’
그리하여 3·4위 결정전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싸웠고, 마침내 동메달을 거머쥐게 된 것이다. 지옥의 문턱까지 갔다가 천당에 돌아왔으니 어찌 기쁘고 감격스럽지 않겠는가. 그에게는 동메달도 감지덕지일 따름이다.
바로 여기서 행복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은메달을 따고서도 의기소침하고, 동메달을 따고서도 의기양양할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많이 가지고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적게 가지고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 그것은 결국 자신의 마음가짐에 좌우되는 것이 아닌가.
어느 선수든지 목표는 금메달이다. 선수가 금메달을 욕심내는 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소유욕과 성취욕이 있지 않은가. 금메달을 따서 최고라는 말도 듣고 싶고, 박수도 받고 싶은 것은 당연한 욕구이다.
그러나 금메달을 원한다고 누구나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는 사람은 최후의 한 사람뿐이다.
따라서 금메달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좋으나 거기에 너무 목을 매어서도 곤란하다. 다음을 기약하며 어느 정도에서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 최고가 되지 못했다고 자책에 빠질 것이 아니라, 현재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메달을 따지도 못하고 탈락한 수많은 선수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에 비하면 은메달은 얼마나 큰 영광인가!
행복의 방정식이라는 것이 있다.
이에 따르면 행복은 ‘욕망’이 분모이고 ‘성취’는 분자이다. 따라서 행복의 수치를 높이려면 분자인 성취를 키우든지, 아니면 분모인 욕망을 줄여야 한다.
혹 분자인 성취가 낮더라도 분모인 욕망을 그보다 낮추면 행복의 수치는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대개 우리는 낮은 성취에도 불구하고 욕망을 날로 키움으로써 스스로 행복의 수치를 떨어뜨리곤 한다.
행복은 만족의 문으로 들어오고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다. 진정 행복한 사람은 지금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올림픽 시상식의 은메달 수상자도 금메달의 아쉬움을 훌훌 털고 동메달 수상자보다 더 크게 웃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는 완벽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편파 판정으로 은메달에 머무르고 말았다. 순위를 발표하는 순간, 방송을 시청하던 우리 국민들은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
나는 김연아의 표정이 궁금해졌다. 놀랍게도 시상대에 선 그는 시종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 금메달을 목에 건 러시아 선수와도 웃으며 악수를 나누었다.
속마음이야 어찌 판정에 불만이 없었겠을까만 조금도 아쉬운 기색을 비치지 않았다.
내가 김연아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