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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방 속의 책 한 권

여행가방 속의 책 한 권

by 운영자 2015.10.13

“웬 책이야? 여행 왔으면 구경을 해야지!”여행지에 책을 가져간 나더러 벗들이 말한다. 책보다 관광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여행을 떠날 때면 항상 책을 챙겨간다. 여행이라고 해서 항상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오랜 시간 이동할 때는 딱히 할 일이 없다. 창밖을 봐도 비슷비슷하게 펼쳐지는 산과 들의 풍경이 더 이상 새롭게 다가오지 않는다.

노곤한 김에 한숨까지 붙인 터라 더 이상 졸리지도 않는다. 바로 이 때 나는 책을 꺼내든다. 독서삼매에 빠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지난여름 미국 동부 여행을 떠나면서 최명희의 <혼불>을 가져갔다. 인천공항에서 뉴욕까지 비행시간이 무려 열네 시간이었다. 화장실 다녀올 때 말고는 꼼짝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 그 시간을 나는 책과 함께 했다.

읽다가 졸리면 눈을 붙이고, 다시 눈을 뜨면 책을 펼치는 시간의 반복이었다.

여행지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워싱턴 D.C.를 둘러본 다음날 나이아가라폭포까지 가는데 전용버스로 여덟 시간이 걸렸다. 순천에서 인천공항을 왕복하는 것과 맞먹는 시간이었다.

역시 나는 그 시간을 <혼불>로 채웠다. 원고지에 글 쓰는 일을 맨손가락으로 바위를 후벼 글씨를 새기듯 했다는 최명희! 그의 정갈하면서도 유려한 문체에 한껏 매료되는 시간이었다. 책 속에 묻히다 보니 훨씬 지루함이 덜했다.

요즘 주위를 살펴보면 책을 읽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신간도서는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데 책과 독자의 거리는 더 멀어지는 것 같다. 무엇 때문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스마트폰이 아닌가 싶다.

스마트폰이 책읽기를 방해하고 있다. 예전에는 텔레비전이 독서의 장애물이었는데,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바뀌었다. 통신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전화기가 나머지 기능을 너무 많이 갖고 있는 것이 문제다.

어른이나 아이나 할 것 없이 다들 스마트폰에 미쳐 있는 세상이다.

서울에서 직장 다니는 우리 집 아이도 그렇다. 어쩌다 집에 오면 밤낮없이 끼고 사는 것이 스마트폰이다. 뭘 그리 열심히 하나 하고 들여다보면 게임 아니면 운동경기 시청이다.

“너 스마트폰에 너무 빠지는 것 아니냐?”

보다 못해 아들에게 한 마디 던졌다.

“그냥 심심해서요.”

심심하다니! 앞날이 구만 리 같은 녀석이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심심하면 책을 읽어야지. 그따위 오락에다 시간을 낭비하면 되겠어?”

다 큰 친구에게 뭘 지적하고 싶지 않지만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책도 가져왔어요.”

그러면서도 정작 책을 꺼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들에게 한 가지 방안을 제시해보았다.

“스마트폰을 한 시간 할 때마다 책 읽기를 한 시간씩 하면 어떻겠어?”

반응이 시큰둥하다. 아무래도 행동으로 옮겨질 것 같지가 않다. 하기야 신나는 놀이를 하는 중에 무슨 충고가 귀에 들어오겠는가.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에게 칡뿌리를 씹으라고 하는 꼴이고, 오토바이 폭주족에게 세 발 자전거를 타라는 것과 같은 모양이 아닌가 싶다.

스마트폰은 독서를 방해할 뿐만 아니라 청소년의 정신발달에도 해악을 끼친다. 뇌의 균형 발달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요즘 갓 젖을 뗀 유아에게 장난감 대신 스마트폰을 안기는 엄마들이 있는데,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한창 뇌의 발달이 진행되는 시기에 게임이나 오락에 탐닉하게 되면 그쪽으로만 지능이 발달하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 엄마들이 잘하는 일이 하나 있다. 아이가 잠자리에 들 때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준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책에 친근감을 갖도록 도와주니 자연스레 책과 평생의 반려가 되는 것이다. 보채는 아이가 귀찮다고 스마트폰을 던져주는 것은 아이를 평생 게임의 노예로 만드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독서도 하나의 습관이다. 어릴 때부터 책에 흥미를 갖게 하고 독서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 습관이 인생을 지배하고, 좋은 습관이 좋은 결과를 낳는다.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차이는 지능이나 재능이 아니라 습관의 차이에 있다고 하지 않는가. 아이에게 어떤 습관을 길러주느냐는 것은 아이의 미래를 판가름하는 첫 단추라고 하겠다.

돌이켜보면 내 경우도 어린 시절 책을 좋아하는 형제들 틈에서 은연중 책 읽는 습관이 길러진 듯하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책이 없으면 허전하고, 여행을 떠날 때도 가방에 책을 빠뜨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만약 내 어린 시절에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과연 내가 지금처럼 책과의 인연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이 없다. 필경 나도 스마트폰의 달콤한 유혹에 휘말려 책과 담을 쌓고 있지 않을까 싶다.

‘너희들은 참 편리하면서도 불행한 시대에 태어났구나!’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린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이런 탄식을 내뱉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