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언어생활 무너지면 정신 세계 황폐화
올바른 언어생활 무너지면 정신 세계 황폐화
by 운영자 2015.10.30
어느 날 늦은 오후 초등학교 학생들이 하교하면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담 너머로 들려왔다.천천히 들어봤더니 바이올린 수업을 하는 특기적성 과목 여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상황을 들어보니 그 선생님은 키가 작은 편으로 목소리도 작은데,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그를 ‘존만한 X’이라고 부르면서 이야기를 했다.
학교 부근 가게에서는 떡볶이를 먹으면서 떠들었다.
“X새끼, 존니 쳐먹네, X발!” “존나 맛있다, X발!”
주위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
가게 주인에게 물었더니 “요즘 애들이 다 그렇죠, 뭐”하면서 주인아줌마 반응도 덤덤하다. 가까이 다가가 “친구에게 욕하면 쓰냐”고 말하자
“왜요, 왜요? 맨날 쓰는데…. 재미있잖아요.”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지금 아이들의 세계는 ‘욕하는 것이 재미로 느껴지는 세상’이다.
이와 같이 욕설을 친숙하게 느끼는 것은 그것이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진 자신들의 심리상태에 어울리기 때문이 아닐까? 때문에 현재 욕설은 자기들끼리 서로의 동질감을 확인하고 서로를 위안하는 기능이 되고 있다.
아이들은 그냥 말하는 법이 없이 호칭과 부사, 끝말은 모두 욕이다. 남학생이 더 심하다.
2011년 9월 어느 교직단체가 실시한 4명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4시간 동안 나눈 대화 속에서 욕설은 대략 75초에 한 번씩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하나 이는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욕을 하는 아이도, 듣는 아이도 낯빛 하나 변하지 않는다.
평범하게 보인 초등학교 6학년 한 아이에게 알고 있는 욕을 물어봤다. 망설이더니 “X같네, X발, 싹스, 창X아, 개XX, 존니, 존나, 졸라, 지랄…” 끝없이 이어졌다.
이러한 반응에 대해 학교 현장의 대응은 미약한 형편이다.
접근이 쉬운 대중매체는 ‘욕의 평준화 시대’를 열었다.
K유치원 한 교사는 “바보, 멍청이 정도만 알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어른이 하는 욕을 하기에 물었더니 전날 부모랑 본 영화 때문이더라”라고 했다.
남보다 튀기 위한 ‘욕 경쟁’도 일상사가 되었다.
한 6학년 여학생은 “멋진 욕을 배우기 위해 중학생 언니들과 친하게 지낸다”고 했다. “멋진 욕을 배워오면 여동급생들에게 인기를 끌기 때문이다”는 남학생도 있었다.
인터넷이 역시 주범이라 할 수 있다.
초등학교 입학 후 또래 집단을 형성한 아이들은 온라인 게임과 채팅 문화를 통해 욕을 학습하고 실생활에 응용한다. 부모와 담임교사는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왜냐하면 ‘야단맞을까 봐’ 보이는 곳에서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학부모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릴 때 버릇은 나이가 들더라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언어습관을 교정할 시기를 놓친다는 것도 문제다. 그들의 욕은 또래집단과 인터넷, 익명의 울타리 안에서 활개 친다.
언어폭력에 대한 교육을 교육과정에 맞춰 실시하면 그때뿐이라고 교사들은 하소연을 한다. 우리 아이들은 모두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언어생활은 가르쳐서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반복하는 가운데 습득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학교보다 학교 밖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인터넷, 대중매체 등 아이들의 의사소통 네트워크가 넓어지면서 언어교육을 담당할 주체가 사라졌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관해 만일 학교가 무관심 하고 가정은 무지하며 사회는 무책임하다면 우리 사회엔 희망이 없다.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관심을 갖지 않으면 우리의 언어생활은 무너질 것이다. 강물을 막는 둑이 무너지면 홍수가 나 나중에는 큰 수해를 입듯이 우리의 정신세계도 황폐화 될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학생들의 언어습관을 돌아보고 매일 우리의 삶 속에서 욕설을 씻어내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는지.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실행이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해결 방안은 없는 것인지를 가정과 학교, 사회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학교 부근 가게에서는 떡볶이를 먹으면서 떠들었다.
“X새끼, 존니 쳐먹네, X발!” “존나 맛있다, X발!”
주위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
가게 주인에게 물었더니 “요즘 애들이 다 그렇죠, 뭐”하면서 주인아줌마 반응도 덤덤하다. 가까이 다가가 “친구에게 욕하면 쓰냐”고 말하자
“왜요, 왜요? 맨날 쓰는데…. 재미있잖아요.”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지금 아이들의 세계는 ‘욕하는 것이 재미로 느껴지는 세상’이다.
이와 같이 욕설을 친숙하게 느끼는 것은 그것이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진 자신들의 심리상태에 어울리기 때문이 아닐까? 때문에 현재 욕설은 자기들끼리 서로의 동질감을 확인하고 서로를 위안하는 기능이 되고 있다.
아이들은 그냥 말하는 법이 없이 호칭과 부사, 끝말은 모두 욕이다. 남학생이 더 심하다.
2011년 9월 어느 교직단체가 실시한 4명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4시간 동안 나눈 대화 속에서 욕설은 대략 75초에 한 번씩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하나 이는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욕을 하는 아이도, 듣는 아이도 낯빛 하나 변하지 않는다.
평범하게 보인 초등학교 6학년 한 아이에게 알고 있는 욕을 물어봤다. 망설이더니 “X같네, X발, 싹스, 창X아, 개XX, 존니, 존나, 졸라, 지랄…” 끝없이 이어졌다.
이러한 반응에 대해 학교 현장의 대응은 미약한 형편이다.
접근이 쉬운 대중매체는 ‘욕의 평준화 시대’를 열었다.
K유치원 한 교사는 “바보, 멍청이 정도만 알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어른이 하는 욕을 하기에 물었더니 전날 부모랑 본 영화 때문이더라”라고 했다.
남보다 튀기 위한 ‘욕 경쟁’도 일상사가 되었다.
한 6학년 여학생은 “멋진 욕을 배우기 위해 중학생 언니들과 친하게 지낸다”고 했다. “멋진 욕을 배워오면 여동급생들에게 인기를 끌기 때문이다”는 남학생도 있었다.
인터넷이 역시 주범이라 할 수 있다.
초등학교 입학 후 또래 집단을 형성한 아이들은 온라인 게임과 채팅 문화를 통해 욕을 학습하고 실생활에 응용한다. 부모와 담임교사는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왜냐하면 ‘야단맞을까 봐’ 보이는 곳에서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학부모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릴 때 버릇은 나이가 들더라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언어습관을 교정할 시기를 놓친다는 것도 문제다. 그들의 욕은 또래집단과 인터넷, 익명의 울타리 안에서 활개 친다.
언어폭력에 대한 교육을 교육과정에 맞춰 실시하면 그때뿐이라고 교사들은 하소연을 한다. 우리 아이들은 모두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언어생활은 가르쳐서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반복하는 가운데 습득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학교보다 학교 밖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인터넷, 대중매체 등 아이들의 의사소통 네트워크가 넓어지면서 언어교육을 담당할 주체가 사라졌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관해 만일 학교가 무관심 하고 가정은 무지하며 사회는 무책임하다면 우리 사회엔 희망이 없다.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관심을 갖지 않으면 우리의 언어생활은 무너질 것이다. 강물을 막는 둑이 무너지면 홍수가 나 나중에는 큰 수해를 입듯이 우리의 정신세계도 황폐화 될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학생들의 언어습관을 돌아보고 매일 우리의 삶 속에서 욕설을 씻어내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는지.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실행이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해결 방안은 없는 것인지를 가정과 학교, 사회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