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우의 고전 읽기> 허초희에게서 듣노라
<장인우의 고전 읽기> 허초희에게서 듣노라
by 운영자 2016.04.22
- 여인 허난설헌의 삶과 문학을 중심으로
<화분에 저녁 이슬 각시방에 어리니 / 여인의 열 손가락 어여쁘고 길어라. // 대절구에 찧어서 장다리잎으로 말아/ 귀고리 울리며 등잔 앞에서 동여맸네. // 새벽에 일어나 발을 걷다가 보니 / 반갑게도 붉은 별이 거울에 비치네. // 풀잎을 뜯을 때는 호랑나비 날아온 듯 / 가야금 탈 때는 복사꽃잎 떨어진 듯 // 토닥토닥 분 바르고 큰머리 만질 때면 / 소상반죽 피눈물의 자국처럼 곱구나. // 이따금 붓을 들어 초승달 그리다 보면 / 붉은 빗방울이 눈썹에 스치는 듯하네.>초희, 그대는 참으로 어여쁜 여인이었습니다. 온화하면서도 여린 성품에 섬세한 감성을 지닌, 그러나 누구보다도 강인한 여인이셨습니다. 단아한 자태와 은은한 향기를 지닌 ‘난’을 사랑하셨고, 세상의 모든 더러움을 하얗게 덮고, 세상살이 번뇌를 잠시나마 잊게 하는 ‘눈’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대의 청초한, 섬세한 감성은 봉선화로 붉게 물든 손톱에 머문 기억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대가 여인이었음을 알게 해 주는 기억이지만 아릿한 붉은 상처이기도 합니다.
봉선화. 여름이면 우리 땅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다정한 꽃입니다. 아직 덜 자란 누이 같은 이 꽃은 그 형상이 마치 봉(鳳)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빗방울 토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상상해 봅니다.
가녀린 몸매, 하얀 속적삼, 부서질 듯 고운 치마에 다소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거울을 보다가 문득 붉게 물든 손톱을 보게 되었을 그대의 눈망울, 그대의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오는 탄성을 가슴으로 들으며 그대 손톱 위에 떠오른 붉은 별빛에 눈을 맞춥니다.
초희, 그대는 내내 들뜬 마음에 잠시도 가만있기가 힘들었겠죠? 풀잎 고운 뜨락에 내려서서 호랑나비인 양 바라보고, 손짓으로 잡아보려 하지만 이내 손톱 위로 날아가는 호랑나비 날갯짓에 웃음 지었겠죠?
가야금 열두 줄 사이로 복사꽃잎 떨어진 양 바라보며 손가락 튕겨 잡아보려 분주했을 그대, 그 빛깔 곱기가 소상반죽 피눈물 자국처럼 곱구나 하였지요.
까마득히 먼 옛날, 순 임금이 창오산에서 죽자 두 왕비 아황과 여영이 소상강에서 남편의 시체를 찾다가 끝내 찾지 못하여 피눈물을 흘렸다는데…. 그 피눈물이 대나무에 얼룩져서 소상반죽(瀟湘班竹)이라 했다는데…. 그대의 손톱 끝에 물든 봉선화 빛깔이 그리 고왔다하니 그 여름 한 나절 작은 소동이 그대의 봄 햇살보다 눈부신 젊은 날 하롱하롱 여울진 붉은 꽃잎의 추억이었으려니, 짐작해 봅니다.
초희, 그대 떠난 이후 수많은 시간이 흘러 오늘에 이르기까지 봉선화는 피고지기를 멈추지 않았지요. 임은 가고, 그 향기마저도 기억 저편에서 아슴아슴하는데 꽃은 매양 피어서 옛 노래를 멈추지 않습니다.
봉선화는 그렇게 우리 곁을 맴돌며 우리 민족 가슴에, 우리네 여인들 눈가에 웃음으로 번져, 한숨으로 토해지고, 눈물로 흘러, 또다시 웃음으로 피어나곤 했지요.
1920년 일제 강점기에는 홍난파라는 음악가가 만든 곡조에 김형준이라는 이가 노랫말을 붙여, 가곡 ‘봉선화’ 로 태어났지요.
그대의 손톱 위에서 호랑나비로, 복사꽃으로 피어나던 그 고운 빛깔, 그대 눈썹 위에 초승달로 번지던 그 고운 빛깔이 1942년에 불렸답니다.
소프라노 가수 김천애가 고향 어머니께서 보내 주신 흰 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일제 가슴 한복판에서 앙코르 곡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그 애절한 음색, 2016년 4월, 아리따운 여인 초희, 당신에게 바칩니다.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 어언 간에 여름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위의 한시와 해설은 허경진 님의 허난설헌 시집을 참고했습니다. 때때로 만나게 되는 수준 높은 작품들 앞에서 무한한 경외감을 느낍니다.
그대의 청초한, 섬세한 감성은 봉선화로 붉게 물든 손톱에 머문 기억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대가 여인이었음을 알게 해 주는 기억이지만 아릿한 붉은 상처이기도 합니다.
봉선화. 여름이면 우리 땅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다정한 꽃입니다. 아직 덜 자란 누이 같은 이 꽃은 그 형상이 마치 봉(鳳)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빗방울 토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상상해 봅니다.
가녀린 몸매, 하얀 속적삼, 부서질 듯 고운 치마에 다소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거울을 보다가 문득 붉게 물든 손톱을 보게 되었을 그대의 눈망울, 그대의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오는 탄성을 가슴으로 들으며 그대 손톱 위에 떠오른 붉은 별빛에 눈을 맞춥니다.
초희, 그대는 내내 들뜬 마음에 잠시도 가만있기가 힘들었겠죠? 풀잎 고운 뜨락에 내려서서 호랑나비인 양 바라보고, 손짓으로 잡아보려 하지만 이내 손톱 위로 날아가는 호랑나비 날갯짓에 웃음 지었겠죠?
가야금 열두 줄 사이로 복사꽃잎 떨어진 양 바라보며 손가락 튕겨 잡아보려 분주했을 그대, 그 빛깔 곱기가 소상반죽 피눈물 자국처럼 곱구나 하였지요.
까마득히 먼 옛날, 순 임금이 창오산에서 죽자 두 왕비 아황과 여영이 소상강에서 남편의 시체를 찾다가 끝내 찾지 못하여 피눈물을 흘렸다는데…. 그 피눈물이 대나무에 얼룩져서 소상반죽(瀟湘班竹)이라 했다는데…. 그대의 손톱 끝에 물든 봉선화 빛깔이 그리 고왔다하니 그 여름 한 나절 작은 소동이 그대의 봄 햇살보다 눈부신 젊은 날 하롱하롱 여울진 붉은 꽃잎의 추억이었으려니, 짐작해 봅니다.
초희, 그대 떠난 이후 수많은 시간이 흘러 오늘에 이르기까지 봉선화는 피고지기를 멈추지 않았지요. 임은 가고, 그 향기마저도 기억 저편에서 아슴아슴하는데 꽃은 매양 피어서 옛 노래를 멈추지 않습니다.
봉선화는 그렇게 우리 곁을 맴돌며 우리 민족 가슴에, 우리네 여인들 눈가에 웃음으로 번져, 한숨으로 토해지고, 눈물로 흘러, 또다시 웃음으로 피어나곤 했지요.
1920년 일제 강점기에는 홍난파라는 음악가가 만든 곡조에 김형준이라는 이가 노랫말을 붙여, 가곡 ‘봉선화’ 로 태어났지요.
그대의 손톱 위에서 호랑나비로, 복사꽃으로 피어나던 그 고운 빛깔, 그대 눈썹 위에 초승달로 번지던 그 고운 빛깔이 1942년에 불렸답니다.
소프라노 가수 김천애가 고향 어머니께서 보내 주신 흰 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일제 가슴 한복판에서 앙코르 곡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그 애절한 음색, 2016년 4월, 아리따운 여인 초희, 당신에게 바칩니다.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 어언 간에 여름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위의 한시와 해설은 허경진 님의 허난설헌 시집을 참고했습니다. 때때로 만나게 되는 수준 높은 작품들 앞에서 무한한 경외감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