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우의 고전 읽기> 모정의 세월 (1) - 허난설헌의 삶과 문학을 중심으로
<장인우의 고전 읽기> 모정의 세월 (1) - 허난설헌의 삶과 문학을 중심으로
by 운영자 2016.06.24
한(恨), 한이 없는 인생이 있을까요?‘인명은 재천이고 주어진 분수에 맞게 사는 것 아니야?’라고 수긍하고 순응하며 사는 것 같아도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아니, 어머니의 자궁에 착상이 되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바라고 설레고 무너지고 넘어지다가 다시 일어서서 하늘을 우러르지 않나요?
이러한 삶 속에 한(恨), 그 응어리가 없다니, 차라리 나는 향기도 맥도 없이 살았노라 하는 것이 솔직할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 속에 더 많은 한, 응어리가 덩어리 덩어리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만 인정하기 싫은 것, 정말 싫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관계와 시간, 사연 속에서 피워낸 한 송이 연약한 꽃이고 열매라 한다면 너무 쓸까요? 입 안에 들어가 단맛을 내는 것들은 대개 혀의 감각을 마비시키면서 혀 뿌리에 닿아 우둘투둘 점 같은 것들이 일게 하고, 목구멍으로 단물을 넘기면서 쓰라림을 느끼게 합니다.
결국 혓바늘이 솟고, 입 안 전체에 염증이 퍼져 물조차 넘기기 힘들어집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흠모하는 단 것들에게 우리는 자칫 가슴 속 응어리를 들켜 입 안으로 뿜어 올리고 속앓이를 하고 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지난해 귀여운 딸아이 여의고 / 올해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 서러워라 서러워라 광릉땅이여. / 두 무덤 나란히 마주하고 있구나. 사시나무 가지에는 쓸쓸히 바람이 불고 / 솔 숲에선 도깨비불 반짝이는데 / 지전을 흩날리고 너의 혼을 부르고 / 너의 무덤 위에다 술잔을 붓노라. / 너희 둘 남매의 가여운 혼이야 / 밤마다 정답게 놀고 있으리라. / 비록 뱃속에는 아이가 있다 하지만 / 어찌 제대로 자랄 수 있으랴. / 하염없이 황대사를 읊조리다 / 애끓는 피눈물에 목이 메는구나.> - 허난설헌‘곡자’
순천 향림사 라는 절에 한 여인이 머물렀던 적이 있습니다.
그 여인은 지금 이곳저곳을 떠돌며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 여인의 한을 누가 풀어 줄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1950여 년 무렵이었을까요. 순애는 시집을 갔습니다. 갓 스물을 넘겼을까요? 순애는 고왔습니다. 자그마한 키에 허리는 가늘었고, 가슴은 도도록한 것이 아직 초록빛이 다 가시지 않은 사과 두 개를 얹어놓은 것처럼 달큼한 것이 한 입 베어 물면 사각거릴 듯 탐스러웠습니다.
자그마한 얼굴은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살짝살짝 붓질을 하면 달걀 하나 세워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눈은 검게 맑은 빛이었지만 고개를 수그리고 자꾸 감추어서 자세히 보기가 어려웠고, 코는 제법 오똑하면서도 크거나 높다기보다는 손가락 한 마디를 세울 정도였고, 입술은 작고 도톰한 것이 다홍빛이었습니다.
어수선한 시절 탓에 넉넉할 리 없는 살림이라 물색 고운 옷에 갖가지 패물이야 본 듯 없는 남의 것들이지만 처녀와의 결별식은 순애에게도 어색한데, 민망한데, 무안한데, 그냥 잘 모르겠는, 하지만 좀 아쉬운 것이었습니다.
그의 신랑은 키가 컸습니다. 156, 7정도 되는 순애를 가슴에 안으면 가슴이 훤칠하게 높아 신랑의 눈이 순애의 정수리를 내려다보고, 두 눈에 입을 맞추려면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 주어야 될 정도였으니까요. 순애는 좋았습니다. 무작정 좋았습니다. 가끔씩 소문으로 듣던 오빠였어요.
마음은 여러 날 꿈을 꾸었으니까요. 하지만 단 일주일이었습니다.
순애에게 그 남자가 허락된 시간은 일주일이었고, 나머지는 80 중반을 넘어 선 지금도 가슴에만 남아 있습니다. 메마른 삭정이 같은 사랑이지만 지금껏 순애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신랑은 일주일의 추억만을 남겨 둔 채 군대로 가버렸습니다. 순식간에 다가온 이별 앞에 맥 놓고 있을 때 한 마리 새처럼 나비처럼 군대로 가버렸지요.
그리고 한 달쯤 지났을 때였을까요. 신랑의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매번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것처럼 보였던 남자가 순애에게 해 줄 말이 있다고 불러 세웠습니다. 잠깐인지, 얼마인지 머뭇거리던 남자가 순애를 안아버렸습니다.
군대로 끌려간 친구의 아내를 개와 늑대의 사이쯤 되는 시간에, 노을도 비켜 선 밤에 삼켜버렸습니다.
이미 처자식을 둔 남자였지만 한순간 무너뜨리고 순애의 몸에 너무도 익숙하게 또 하나의 생명을 그려 넣었습니다.
순애는 어떻게 시간을 보냈을까요? 아침 해를, 대낮의 해보다 더 밝은 달빛을 어찌 보았을까요? 다리는 후들거리고 정신은 아득하고, 입 안이 타들어 가는 시간들, 그 징그러운 시간들을 순애는 어찌 보냈을까요?
그리고 오 개월 후 들려 온 신랑의 전사 통보, 신랑은 군대라는 그 어디쯤에서 미안하다는 말도 전하지 못한 채 떠났고, 순애는 밀려 오르는 구역질을 해가며, 쫓겨 났습니다.
생명은 뜨거운 것이라 몸 안에 퍼지며 자꾸 소리하고 발길 해대는데 …. 그것은 신비함이고, 늘 새로운 격정이지만 온전하게 감싸는 것마저 금지 당하며 감추어야 했습니다.
순애에게 삶은 그런 것이었지만 몇 해 전인가. 쉰이 훨씬 넘도록 장가를 들지 않았던 아들의 심장이 정지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선생 난설헌께서 하염없이 읊조리던 ‘황대사’를 순애의 소리로 들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삶 속에 한(恨), 그 응어리가 없다니, 차라리 나는 향기도 맥도 없이 살았노라 하는 것이 솔직할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 속에 더 많은 한, 응어리가 덩어리 덩어리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만 인정하기 싫은 것, 정말 싫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관계와 시간, 사연 속에서 피워낸 한 송이 연약한 꽃이고 열매라 한다면 너무 쓸까요? 입 안에 들어가 단맛을 내는 것들은 대개 혀의 감각을 마비시키면서 혀 뿌리에 닿아 우둘투둘 점 같은 것들이 일게 하고, 목구멍으로 단물을 넘기면서 쓰라림을 느끼게 합니다.
결국 혓바늘이 솟고, 입 안 전체에 염증이 퍼져 물조차 넘기기 힘들어집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흠모하는 단 것들에게 우리는 자칫 가슴 속 응어리를 들켜 입 안으로 뿜어 올리고 속앓이를 하고 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지난해 귀여운 딸아이 여의고 / 올해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 서러워라 서러워라 광릉땅이여. / 두 무덤 나란히 마주하고 있구나. 사시나무 가지에는 쓸쓸히 바람이 불고 / 솔 숲에선 도깨비불 반짝이는데 / 지전을 흩날리고 너의 혼을 부르고 / 너의 무덤 위에다 술잔을 붓노라. / 너희 둘 남매의 가여운 혼이야 / 밤마다 정답게 놀고 있으리라. / 비록 뱃속에는 아이가 있다 하지만 / 어찌 제대로 자랄 수 있으랴. / 하염없이 황대사를 읊조리다 / 애끓는 피눈물에 목이 메는구나.> - 허난설헌‘곡자’
순천 향림사 라는 절에 한 여인이 머물렀던 적이 있습니다.
그 여인은 지금 이곳저곳을 떠돌며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 여인의 한을 누가 풀어 줄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1950여 년 무렵이었을까요. 순애는 시집을 갔습니다. 갓 스물을 넘겼을까요? 순애는 고왔습니다. 자그마한 키에 허리는 가늘었고, 가슴은 도도록한 것이 아직 초록빛이 다 가시지 않은 사과 두 개를 얹어놓은 것처럼 달큼한 것이 한 입 베어 물면 사각거릴 듯 탐스러웠습니다.
자그마한 얼굴은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살짝살짝 붓질을 하면 달걀 하나 세워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눈은 검게 맑은 빛이었지만 고개를 수그리고 자꾸 감추어서 자세히 보기가 어려웠고, 코는 제법 오똑하면서도 크거나 높다기보다는 손가락 한 마디를 세울 정도였고, 입술은 작고 도톰한 것이 다홍빛이었습니다.
어수선한 시절 탓에 넉넉할 리 없는 살림이라 물색 고운 옷에 갖가지 패물이야 본 듯 없는 남의 것들이지만 처녀와의 결별식은 순애에게도 어색한데, 민망한데, 무안한데, 그냥 잘 모르겠는, 하지만 좀 아쉬운 것이었습니다.
그의 신랑은 키가 컸습니다. 156, 7정도 되는 순애를 가슴에 안으면 가슴이 훤칠하게 높아 신랑의 눈이 순애의 정수리를 내려다보고, 두 눈에 입을 맞추려면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 주어야 될 정도였으니까요. 순애는 좋았습니다. 무작정 좋았습니다. 가끔씩 소문으로 듣던 오빠였어요.
마음은 여러 날 꿈을 꾸었으니까요. 하지만 단 일주일이었습니다.
순애에게 그 남자가 허락된 시간은 일주일이었고, 나머지는 80 중반을 넘어 선 지금도 가슴에만 남아 있습니다. 메마른 삭정이 같은 사랑이지만 지금껏 순애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신랑은 일주일의 추억만을 남겨 둔 채 군대로 가버렸습니다. 순식간에 다가온 이별 앞에 맥 놓고 있을 때 한 마리 새처럼 나비처럼 군대로 가버렸지요.
그리고 한 달쯤 지났을 때였을까요. 신랑의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매번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것처럼 보였던 남자가 순애에게 해 줄 말이 있다고 불러 세웠습니다. 잠깐인지, 얼마인지 머뭇거리던 남자가 순애를 안아버렸습니다.
군대로 끌려간 친구의 아내를 개와 늑대의 사이쯤 되는 시간에, 노을도 비켜 선 밤에 삼켜버렸습니다.
이미 처자식을 둔 남자였지만 한순간 무너뜨리고 순애의 몸에 너무도 익숙하게 또 하나의 생명을 그려 넣었습니다.
순애는 어떻게 시간을 보냈을까요? 아침 해를, 대낮의 해보다 더 밝은 달빛을 어찌 보았을까요? 다리는 후들거리고 정신은 아득하고, 입 안이 타들어 가는 시간들, 그 징그러운 시간들을 순애는 어찌 보냈을까요?
그리고 오 개월 후 들려 온 신랑의 전사 통보, 신랑은 군대라는 그 어디쯤에서 미안하다는 말도 전하지 못한 채 떠났고, 순애는 밀려 오르는 구역질을 해가며, 쫓겨 났습니다.
생명은 뜨거운 것이라 몸 안에 퍼지며 자꾸 소리하고 발길 해대는데 …. 그것은 신비함이고, 늘 새로운 격정이지만 온전하게 감싸는 것마저 금지 당하며 감추어야 했습니다.
순애에게 삶은 그런 것이었지만 몇 해 전인가. 쉰이 훨씬 넘도록 장가를 들지 않았던 아들의 심장이 정지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선생 난설헌께서 하염없이 읊조리던 ‘황대사’를 순애의 소리로 들어야 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