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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우의 고전읽기

장인우의 고전읽기

by 운영자 2016.07.08

모정의 세월(2)
- 허난설헌의 삶과 문학을 중심으로
<순애 … / 순애 … / 초록빛 고왔던 / 우리 순애는 // 보랏빛 가지꽃 피는 유월이면 / 가지꽃 그늘에 숨어 울었습니다. / 간 밤 비 내리고/ 이른 아침 햇살 엷게 퍼지면/ 이슬 머금은 눈망울/ 꽃 사이에 감추어두고 / 바구니에 담긴 가지 / 밥물 넘어 흐르는 속에 가지런히 넣어두었습니다. // 그리운 마음 하나 / 미운 마음 하나 / 보고픈 마음 하나 / 초록 고추 붉은 고추 쫑쫑 썰어 모아두고 / 조선간장 두르고 참기름 둘러 통깨 소올솔 뿌려 / 하이얀 접시에 담아 놓으면 / 젓가락 소리 분주하게 오고갑니다. // 순애 / 초록빛 고운 / 우리 순애는 / 이슬 머금은 눈망울 / 사라질까 꽃 사이로 갑니다. // 추억처럼 그곳에 앉아봅니다.- 장인우 ‘전라도 가시내 순애는’ -

향림사 대웅전 앞마당에 햇살이 고르게 퍼져 내리고 있었다. 느티나무 우람한 아래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게 오고 간다. 공양간에선 달그락달그락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보살들의 들뜬 말소리가 요사채 사이로 퍼져 나온다. 호기심 어린 눈빛들이 빠르게 오고가는 사이 오늘 결혼식을 이끌어 줄 스님들이 들어온다. 밝은 표정으로 합장을 하며 녹야원으로 들어가고 차 한 잔씩 오가는 사이 영혼 결혼식 순서가 정해진다.

대웅전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 대행보현보살님, 문수보살님, 지장보살님이 정좌하시고, 신중단 신들께서도 왁자지껄 웃음소리를 정리하며 각자의 자리에 정렬하시고, 칠성단 신들께서도 독각 선사 옆 자리에 앉으신다.

뒤이어 영단에 초청 받은 영가들 모두 영혼 결혼식 당사자들을 축하해 준다며 소란스럽다. 신들의 축하소리 울려 퍼지는 사이 오늘의 신랑과 신부는 얼굴을 붉힌 채 수줍게 앉아 식을 기다린다.
더덩 덩덩 더엉덩 덩덩~~댕댕 대대댕 댕댕~~ 채앵챙챙챙~~차앙창차앙창~~덩더덩덩덩

식을 주관하는 스님은 영단 앞에 서서 식을 알리고, 늙으신 어머니는 방석 위에 쭈그리고 앉아 영단을 바라보며 합장을 하고 고개를 주억거린다.

“아들아, 으이, 내 아들아, 어찌 잘 지냈드냐? 니 사는 디는 차지는 않드냐? 어찌여? 니 아버지는 만나 봤드냐? 내사 미워허구 원망헌 거시 가심팍에 맺힌 사람이지만 니사 아버지 아니드냐? 문딩이 겉은 인사지만, 혹 만나거든 내사 이야그는 당최 허지 말고, 다정스레 손잡고 살갑게 인사허고 지내라이. 혼자 지내는 것보다야 낫지 않겄냐아?

아들아, 오늘 니 장개 간다고 여그 다들 모이서 축하히준다는디 각시 비록 어리지만 잘 다독이고 이뻐허면서 살그라이. 니 살았을 적이 히주야는디 니 큰오매도 못히주고 그리 허망허게 보냈는디, 미얀타. 어쩌겄냐? 니 팔자나 내 팔자가 이리 사나운 것을 누굴 원망허고, 누굴 탓허겄냐이? 그려, 그리여, 그리여. 다 잊어뿌리고 인자라도 새출발히여. 백년해로 허그라이. 아이고 내 아들아.”

북소리, 징소리, 꽹과리, 자바라 소리 어우러져 판에 흥이 오르면 양가 가족 대표 두 사람이 나란히 선다.

위폐는 부처님 전을 향해 인사를 올리며 참례 스님들의 합장배례가 이루어진다. 엄숙하고 경건한 가운데 신랑 각시 초례청 앞으로 나서고, 가사에 장삼을 두룬 스님은 하이얀 듯 파아란 듯 푸르게 빛나는 머리 위로 팔을 들어 올리며 춤을 춘다.

모 년 모 월 모 시에 신랑 모 군과 신부 모 양이 영혼 결혼식을 올린다는 주례사가 시작되고, 물빛 가사의 긴 소맷자락이 휘날리는 사이로 붉은 장삼도 따라 휘감기며 자바라 꽃을 피웠다가 지기를 반복한다. 버선코는 한껏 하늘을 향하고 뒷발꿈치 스르르 돌며 춤을 춘다.
자바라 콰광콰앙쾅쾅 소리에 북소리 징소리 어우러지면 꽃은 피어나고, 이는 바람결에 지는 듯 다시 피어오르면 대웅전 둥근 촛대는 흐르는 눈물을 멈칫하며 사방을 둘러보다가 속으로속으로 눈물을 삼킨다.

‘으아 으아 으으으으아~~으이이이이으아 으아 어이아 어어허허어아 으으으으으이아아으’

음성공양 이루어지면 두 스님이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선 채로 예를 올린다. 그리고는 음성공양 가운데 양쪽으로 서서 바라춤을 춘다. 늙으신 어머니는 부처님을 향해

“부처님, 부처님, 이 죄 많은 사람의 소원을 들어줍시오. 생기지 말았어야 헐 자식이 생겼 는디, 낳지 말어야 헐 자식을 낳았는디, 그나마 하나밖이 없는 피붙이라 있는디끼 없는디끼 숨키가며 낳습니다. 그 아 뱃속에 이씰 때 먹고 싶은 것도 많었습니다.
어디서 냄새는 그러케 나는지, 고기 냄새 풀풀 나고, 김치 넣고 부친 거 냄새 풀풀 나고, 흙 속에서 막 캐낸 고구마 옷자락에 쓱쓱 문대 비먹고 싶은디, 썩을놈으 인생이라 … 후우 … 누가 알라요.

뺏낏소. 고실고실 웃는 애기, 애비 이름 못불러도 빵긋빵긋 웃는 내 새낀디, 어느날 불같이 들이닥친 본 각시년이 눈을 흘기고 욕을 해쌌더니 싹 쓸어가버립디다.

방 안에 남은 것이라곤 고실고실 웃던 내새끼 눈빛허고, 오줌 묻은 기저귀 몇 개허고, 퉁퉁 불은 젖 흘러내린 냄새 밖엔 암것도 없습디다. 징그러운 시절, 그 세월을 부처님은 안다요?

내 새끼 젖 먹을 때는 어떻게 알고 젖은 띵띵 붓고 아픈지. 손으로 짜믄 아프기만 허고 나오지도 않는 그것을 본 각시년도 알었겄지요? 지도 새끼 나봤응께 말이여. 죄로 갈놈으 시상. 후우 …

부처님, 지 아들이 오늘 장개 간당께 어찌든지 저승에서라도 잘 살도록 돌봐 주시요이. 이렇게 비요. 불쌍헌 내 새끼.”

‘어아 어어어어아 어아어아 으으으으으으응~~으으~ 어어허허허어어아~’

끊어질 듯 이어지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구슬픈 가락 사이에도 늙으신 어머니의 손은 고개를 따라 올라가고 내려간다. 혼자서 피던 꽃이 둘로 피어나는 아침, 절 마당엔 곱디고운 비구니의 눈물이 아롱져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