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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우의 고전읽기>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맞이하는 길목에서 귀향

<장인우의 고전읽기>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맞이하는 길목에서 귀향

by 운영자 2016.08.23

- 윤선도가 품은 16~7세기 시가문학을 중심으로
<배 띄워라 배 띄워라 / 아이야 벗님네야 배 띄워서 어서 가자 /동서남북 바람 불제 언제나 기다리나 / 술 익고 달이 뜨니 이 때가 아니더냐/ 배 띄워라 배 띄워라 / 아이야 벗님네야 배 띄워서 어서 가자 / 바람이 안 불면 노를 젓고 바람이 불면 돛을 올려라 /강 건너 벗님네들 앉아서 기다리랴 / 그립고 서럽다고 울기만 하랴 /배 띄워라 배 띄워라> -박범훈 곡, 송소희 창고산 윤선도 선생을 만나고자 배를 탔다. 순천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 반 가량을 달려 해남 땅끝 마을에 도착했다. 갈두 포구에서 장보고호에 차를 싣고 가족들과 더불어 보길도를 향해 갔다. 명칭은 문학기행이었지만 우선은 알고 싶었다.

고산 선생의 「오우가」를 비롯하여「어부사시사」같은 작품들이야 책을 통해 수차례 만났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책에서 만나는 문학작품에 대한 감흥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지 않던가. 선생의 삶과 문학작품, 창작배경 그리고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세밀하게 이해하는 데는 직접 찾아가 대면하기 그 이상이 없다 싶었다. 34~5도를 넘나드는 무더운 여름날 잔잔한 바닷물에 이는 하얀 물결을 바라보며 상상해 보았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화~ 어디선가, 저 멀리서 찌그덩 찌그덩 어여차~ 구름에 밀려오는가, 갈매기에 쫓겨 오는가, 누구를 만나려 그리 바삐 노 젓는가>
선생의 문학은 선생의 삶 어디쯤이었을까?

<궂은비 멎어 가고 시냇물이 맑아 온다. / 배 띄워라 배 띄워라. / 낚싯대를 둘러메니 깊은 흥을 금할 수 없구나. / 찌그덩 찌그덩 어여차 / 안개 자욱한 강과 첩첩이 싸인 산봉우리는 누가 이처럼 그려 냈는가?> - 윤선도 「어부사시사」하사(夏詞) 1.

노화도는 작지 않았다. 연강 첩장 - 안개 자욱한 강과 첩첩이 싸인 산봉우리를 만나기엔 나의 무지가 깊었고 시간이 없었다.

노화도는 지도로 보았을 때 거북이 헤엄쳐가는 형상을 하고 있는 섬이다. 염등리 앞 300ha에 달하는 갯벌에 갈대꽃이 피면 장관을 이룬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고, 윤선도가 섬으로 들어올 때 어린 종을 데리고 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보길도로 가는 작은 어촌 마을이겠지 하는 생각을 뒤엎는 이곳 역시 발목 시큰하게 걸어보아야 그 진면목을 알 것 같은 곳이었다.

보길도를 향해 팔을 뻗은 듯 등을 맞댄 것도 같았다. 풍수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는 무식쟁이지만 들어가서 보고 나와서 보았을 때 노화도는 분명 보길도와 등을 맞대고 있는 형상이었다. 짝사랑이었을까? 이루지 못한 사랑이었을까?

밀려드는 거센 파도로부터 자식을 지켜내려던 어미의 마음이었을까? 버텨내고 버텨내려던 것이, 등을 맞댈 수밖에 없었던 세월이, 망부석처럼 굳어져버린 것일까?

오랜 세월 안개에 싸여 햇빛에 드러나고 바람에 감기다가 빗물로 적시고 한 자도 넘게 내리는 눈으로 온 산을 뒤덮어버렸을 세월, 바다로 이어진 장구한 세월, 그 무던한 인고(忍苦)를 오늘은 이 나그네와 더불어 풀어보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보길도 세연정을 찾아드는 길은 갈림길이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갔다가 다시 돌아 오른팔 쪽으로 들어가서야 고산 윤선도 선생의 자취와 대면하게 되었다.

느린 듯 빠르게, 빠른 듯 느리게 베일에 가려져 있던 선생의 삶과 문학 그리고 치열했던, 길고 길었던 역사의 웅크림이 서서히 눈을 뜨려하고 있었다.

세연정, 낙서재 그리고 동천 석실, 삼각형의 구도였다. 한 옆으로는 저수지가 물을 담아 흘려보내고 들녘은 제각기 몫으로 구분 지어져 푸르게 펼쳐져 있는 부용동, 그곳은 선생의 바다였으리라. 옛사람의 미음완보(微吟緩步)가 추억처럼 그 자리에 어려 느린 걸음으로 시를 읊조리며 천천히 걷는 유유자적의 모습, 그 속에 서린 갖가지 애환들까지 그대로 펼쳐지는, 그곳은 선생의 푸른 바다였다.

- 들리지 아니한가? 강촌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찌는 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