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우의 고전 읽기- 안빈낙도 천석고황은 선택인가 도피인가 (2)
장인우의 고전 읽기- 안빈낙도 천석고황은 선택인가 도피인가 (2)
by 운영자 2016.10.07
- 윤선도가 품은 16~7세기 시가문학을 중심으로
고산 선생께서 ‘병진소’를 올렸을 때가 선생께서 서른 되던 해였다. 광해군 8년 1616년이었다. 대북파들이 소북파를 누르고 득세하면서 이이첨의 전횡이 극에 달할 때였다. 누구도 감히 대적할 수 없었던 때에 이제 갓 정계에 발을 들인 새내기가 정계의 핵심을 향해 비판의 날을 세운 것이다. 하지만 이이첨의 전횡과 같은 일은 비단 광해 때만의 일은 아니었다. 고산 선생이 스물한 살이 되던 해 1607년(선조40)의 상황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음을 그의 한시「차운하여 장자호에게 답하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옛날 나 책상자 지고 서울에서 노닐었으니 / 이때 나이 겨우 열다섯을 지났다네. / 가난한 집 쓸쓸하니 누가 왕림하랴만 /「체두」편을 읊다가 도리어 자책하였네.
선생의 청소년기 순수함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가난한 집이라 찾아오는 사람마저 없다하니 적적함에 쓸쓸함이 묻어나기도 한다.
‘홀로 우뚝 선 아가위나무처럼 잎새만 더부룩할 뿐 외로이 길을 가는 나의 신세여, 어찌 다른 사람이 있으랴마는 아무래도 나의 형제만은 못하지’라는 「체두」편을 읊으며 자책하였다 회고한다. ‘가난한 집’이란 봉문필호(蓬門畢戶)의 준말로 ‘오두막의 사립문’ 이라는 뜻이지만 너무 열악해서 과거에 급제하기가 무척 어려운 지방 출신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선생의 열다섯 쓸쓸함은 한미한 지방 출신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어려움, 막막함에서 오는 것이었으리라.
명석한 소년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니 / 진세(塵世)에 이런 손(客)이 있어 노라며 기뻐했네. / 말 나누다 동리(同里)가 같은 줄 알게 되니 / 친밀하게 사귀는 정(膠漆交情)이 갑자기 깊어졌네.
선생은 진세(塵世)라 했다. 조선 사대부들의 문학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 중의 하나가 진세, 홍진이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상세계, 그것은 표면적으로 자연이었다. 자연 속에 파묻혀 사는 지락을 노래했던 문인들에게 자연은 유배지였고, 은일, 탈속, 낙향의 공간이었다. 유배지에서의 ‘진세’는 어떻게든 돌아가고픈 공간이었기에 ‘충신연주지사’로 이어져 임과 이별한 여인의 애절한 그리움의 노래로 불려졌고, 은일·탈속은 ‘진세’에 대한 회의와 염증으로 도피해온 공간이었기에 멀수록 좋고, 행여나 시비하는 소리 들려올세라 첩첩만산으로 둘러치고 온 산의 골짜기를 미친 듯 굽이지며 흐르는 물로 둘러버리기도 했다.
두려운 세상인 것이다.
다만 낙향인 경우 ‘진세’에서 벗어나 돌아온 자연은 정신적 고향, 안식처였기에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역군은(亦君恩)을 표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열다섯 고산에게는 나아가야 될, 뚜벅뚜벅 걸어서 기어코 도달해야 될 세상, 공간이었다. 안개 자욱한 나날을 보낼 때 찾아온 고향이 같은 벗은 수십 년을 쌓이고 흩어졌다 다시 쌓이는 사막 모래밭에서 찾아낸 진주 같은 기쁨이었을 것이다.
그 돈독해져가는 정을 부레와 옻나무의 칠(膠漆)에 비유한 것에서 그 마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자기보다 못한 이를 벗삼아 그대는 손해이나 / 가까이 주남(朱藍)을 얻은 나는 이익이었지. / 이튿날 아침에 신발을 끌고 그대의 집에 이르니 / 조그만 궤안에 책 끈은 해지고 작은 탑상 비껴 있었네. / 담장 안 쓸쓸하고 자리로 지게문을 삼았지만 / 누가 알리오! 그 가운데 아양곡이 있음을. / 사람들아 비웃지 마오. 의복이 옻칠한 듯하다고 / 빙호(氷壺)에 가을달 담음에는 해될 것 없다오.
선생께서는 장자호와의 만남을 주남을 얻은 것이라 했다. 주남은 주사를 가까이 하면 붉어지고 청색은 쪽에서 나온다 했다. 그만큼 인물이 출중해 모범이 될 만한 인물이라는 뜻으로 자기는 장자호에게 보잘 것 없으나 자신은 주남을 얻은 것이라 기쁨에 차고 넘침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 아침 찾아간 벗의 집은 허름한 모옥이었다. 안분지족마저도 추구하던 사대부들의 허름함이란 벽계수 앞에 두고 지은 수간모옥으로 두 벗에게는 빛 고운 그림이었을 것이다. 궤 안이든 탑상(평상)이든 가난한 풍경이라 하여 다 같은 가난은 아닐 것이기에 ‘물물마다 헌사로운 조화신공이나 소요음영하는 가운데 느끼는 한중진미’와는 견줄 것이 못되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누항에 ‘아양곡’이 있고, 겉모습은 옻칠을 한 듯 지저분해도 속마음은 맑고 깨끗해서 흠이 하나도 없는, 얼음 담은 옥병에 담을 가을달에 장자호를 비유했으니 청운의 꿈도 함께 그렸을 것이다.
모를 일이다. 북궐의 움직임을, 정치라 하는 것의 그 깊은 속을 누가 알 것인가. 열다섯으로 거슬러간 반추의 시간들, 스물한 살의 새내기에게 그것은….
선생의 청소년기 순수함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가난한 집이라 찾아오는 사람마저 없다하니 적적함에 쓸쓸함이 묻어나기도 한다.
‘홀로 우뚝 선 아가위나무처럼 잎새만 더부룩할 뿐 외로이 길을 가는 나의 신세여, 어찌 다른 사람이 있으랴마는 아무래도 나의 형제만은 못하지’라는 「체두」편을 읊으며 자책하였다 회고한다. ‘가난한 집’이란 봉문필호(蓬門畢戶)의 준말로 ‘오두막의 사립문’ 이라는 뜻이지만 너무 열악해서 과거에 급제하기가 무척 어려운 지방 출신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선생의 열다섯 쓸쓸함은 한미한 지방 출신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어려움, 막막함에서 오는 것이었으리라.
명석한 소년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니 / 진세(塵世)에 이런 손(客)이 있어 노라며 기뻐했네. / 말 나누다 동리(同里)가 같은 줄 알게 되니 / 친밀하게 사귀는 정(膠漆交情)이 갑자기 깊어졌네.
선생은 진세(塵世)라 했다. 조선 사대부들의 문학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 중의 하나가 진세, 홍진이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상세계, 그것은 표면적으로 자연이었다. 자연 속에 파묻혀 사는 지락을 노래했던 문인들에게 자연은 유배지였고, 은일, 탈속, 낙향의 공간이었다. 유배지에서의 ‘진세’는 어떻게든 돌아가고픈 공간이었기에 ‘충신연주지사’로 이어져 임과 이별한 여인의 애절한 그리움의 노래로 불려졌고, 은일·탈속은 ‘진세’에 대한 회의와 염증으로 도피해온 공간이었기에 멀수록 좋고, 행여나 시비하는 소리 들려올세라 첩첩만산으로 둘러치고 온 산의 골짜기를 미친 듯 굽이지며 흐르는 물로 둘러버리기도 했다.
두려운 세상인 것이다.
다만 낙향인 경우 ‘진세’에서 벗어나 돌아온 자연은 정신적 고향, 안식처였기에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역군은(亦君恩)을 표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열다섯 고산에게는 나아가야 될, 뚜벅뚜벅 걸어서 기어코 도달해야 될 세상, 공간이었다. 안개 자욱한 나날을 보낼 때 찾아온 고향이 같은 벗은 수십 년을 쌓이고 흩어졌다 다시 쌓이는 사막 모래밭에서 찾아낸 진주 같은 기쁨이었을 것이다.
그 돈독해져가는 정을 부레와 옻나무의 칠(膠漆)에 비유한 것에서 그 마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자기보다 못한 이를 벗삼아 그대는 손해이나 / 가까이 주남(朱藍)을 얻은 나는 이익이었지. / 이튿날 아침에 신발을 끌고 그대의 집에 이르니 / 조그만 궤안에 책 끈은 해지고 작은 탑상 비껴 있었네. / 담장 안 쓸쓸하고 자리로 지게문을 삼았지만 / 누가 알리오! 그 가운데 아양곡이 있음을. / 사람들아 비웃지 마오. 의복이 옻칠한 듯하다고 / 빙호(氷壺)에 가을달 담음에는 해될 것 없다오.
선생께서는 장자호와의 만남을 주남을 얻은 것이라 했다. 주남은 주사를 가까이 하면 붉어지고 청색은 쪽에서 나온다 했다. 그만큼 인물이 출중해 모범이 될 만한 인물이라는 뜻으로 자기는 장자호에게 보잘 것 없으나 자신은 주남을 얻은 것이라 기쁨에 차고 넘침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 아침 찾아간 벗의 집은 허름한 모옥이었다. 안분지족마저도 추구하던 사대부들의 허름함이란 벽계수 앞에 두고 지은 수간모옥으로 두 벗에게는 빛 고운 그림이었을 것이다. 궤 안이든 탑상(평상)이든 가난한 풍경이라 하여 다 같은 가난은 아닐 것이기에 ‘물물마다 헌사로운 조화신공이나 소요음영하는 가운데 느끼는 한중진미’와는 견줄 것이 못되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누항에 ‘아양곡’이 있고, 겉모습은 옻칠을 한 듯 지저분해도 속마음은 맑고 깨끗해서 흠이 하나도 없는, 얼음 담은 옥병에 담을 가을달에 장자호를 비유했으니 청운의 꿈도 함께 그렸을 것이다.
모를 일이다. 북궐의 움직임을, 정치라 하는 것의 그 깊은 속을 누가 알 것인가. 열다섯으로 거슬러간 반추의 시간들, 스물한 살의 새내기에게 그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