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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놀혼행

혼놀혼행

by 운영자 2016.11.23

세월이 그렇게 빠른 것인지, 나이를 먹으면서 감각이 느려지는 것인지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면 세월이 저만큼입니다.이름조차 어색하고 조심스러웠던 병신년, 겨우 2016이라는 숫자에 익숙해진다 싶은데 기우뚱 한 해가 기울며 절기로도 ‘소설’(小雪)을 지나니 말이지요.

두이레 지난 강아지처럼 연초록 이파리가 눈부신 눈을 뜨고 이내 녹색의 물결 사방 가득하다가 나뭇잎 붉게 물든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나무들은 잠이 들기 위해 옷을 벗은 듯 빈 가지가 되었고, 흐린 하늘에서 무엇이 내린다면 비가 아니라 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어색하지를 않습니다.

세월이 지나가며 나이를 먹는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 중의 하나가 몰랐던 단어를 만날 때입니다.

어떤 단어가 새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그 시대만이 가지고 있는 현상이나 생각을 담아내는 것이겠지요.

청소년들이 우리말을 줄이거나 비틀어 만들어내는 단어 중에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단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새로 만들어지는 말 중에는 그 말 밖에는 달리 표현할 단어가 없겠다 싶은, 수많은 경험과 생각이 담겨 있다 여겨지는 말들도 있습니다.

최근에 만난 ‘혼놀혼행’이라는 단어도 그랬습니다.

혼밥, 혼술이라는 말은 귀동냥처럼 들어 알고 있었지만, 혼놀혼행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이었습니다.

그래도 혼밥, 혼술에 대한 이해 덕분이겠지요, 아마도 혼자 놀고 혼자 여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암호를 해독하듯이 그 말의 뜻을 짐작해볼 여지는 있었습니다.

혼자인 사람도 많지만 혼자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쉬고 싶어서, 대인 관계에 지쳐서, 그냥 혼자이고 싶어서 등 이유도 다양합니다.

처음 듣는 말 중에는 ‘관태기’라는 말도 있었는데, 관계와 권태기가 합해진 말로 대인관계에 피로를 느끼는 현상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혼자 밥 먹는 것이 영 어색하여 심지어는 화장실에 숨어서 먹는다는 말까지 있었는데, 이제는 홀로 지내는 문화에 대한 인식이 놀랄 만큼 달라졌다 합니다.

혼자 술을 마시고 혼자 밥을 먹는 모습도 자연스러워졌습니다. 혼자 여행 다니는 사람을 보면 아무렇지도 않다고, 오히려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예전 같으면 간첩으로 오인되어 신고당하기 십상이었을 텐데요.

더욱 놀라운 것은 연인이나 배우자가 혼자 여행을 간다고 해도 열에 일곱 명은 허락하겠다고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혼밥, 혼술, 혼놀혼행의 문화 속에는 다른 사람을 의지하거나 기대지 않으려는, 내가 나로서 나의 삶을 살려고 하는, 고독을 피하지 않고 즐기려는 긍정적인 면이 얼마든지 있겠다 싶습니다.

분주한 삶을 살며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는 안간힘으로도 보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힘들어하고 만남 자체를 피하려 하는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모습도 담겨 있겠지요.

혼놀혼행의 문화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배려하고 존중하는, 균형 잡힌 삶으로 자리를 잡는다면 우리 삶은 조화를 이룰 수 있겠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