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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우의 고전 읽기] 세상에 그립지 않은 것은 없다

[장인우의 고전 읽기] 세상에 그립지 않은 것은 없다

by 운영자 2016.12.02

- 고산 윤선도 선생의 시가문학을 탐하다
당나라 초기 최고의 문인이라 일컫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장약허(張若虛). 시 한 수로 세상에 이름을 남겼다지만 언제 와서 언제 갔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사람, 그의 시 앞에서 세상의 온갖 먼지 속에 혼탁해져 뭉그러진 정신, 비로소 맑아짐을 느낍니다. 세상에 그립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무엇이라 규정지을 수 없는, 그저 막연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 그 감정으로 인하여 우수에 잠기게 되는 계절, 그 사이에 제가 서 있습니다. 엉거주춤.

시인은 ‘춘강화월야(春江花月夜)’라 했습니다. ‘봄날 강 위에 비쳐든 달빛 꽃으로 흐르는 밤’이라 하면 그 맛이 우러날까요.

<봄 강은 밀물로 이어지면서 / 바다엔 밝은 달 물 위에 떴다. / 한없이 반짝이는 파도의 물결 / 그 어느 봄 강에 달이 없으랴! // 강물이 흐르는 들판의 꽃은 / 달빛 내려앉으니 싸라기(霰) 같네 / 서리가 날려도 알 수가 없고 /섬(汀) 위엔 흰 모래 보이질 않네.>

잔잔하다. 밀려드는 파도의 격정은 달빛 아래 온화해지고, 그 강물이 피워낸 꽃은 싸라기 눈 날리듯 지천에 피어 서리가 날려도 분간할 수 없고, 물가 모래밭 새하얀 알갱이들조차 분간을 할 수 없을 만큼 흐드러지게 피어 달빛을 우러릅니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드러 하노라.>

노래한 시인 역시 봄 밤 물결처럼 일렁이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음이었겠지요. ‘일지춘심’ 배꽃 가지를 감싸고 도는 봄 밤, 그 침묵의 여운을 어찌할 수 없음은 당나라 때의 시인이나 고려 말의 시인이나 천 년이 흐른 후에도, 그 천 년이 흐른 후에도 변함이 없나봅니다.

<강물과 하나 된 티 없는 하늘 / 은은한 허공에 외로이 뜬 달. / 그 누가 강가의 달을 처음 보았을까 / 저 달은 언제 처음 그를 비췄나? // 사람은 대대로 이어서 살고 / 강과 달은 해마다 여전하구나. / 저 달은 누구를 기다리는가 / 강물은 한없이 흘러가는데>

맑은 가운데 섬세합니다. 강물과 하늘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티 없이 은은하다 했습니다. 둘일 수 없어 하나인 강물과 달은 누가 처음이었을까요? 사람들이 대대로 이어 살며 바라보는 동안에도 변함없이 그곳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그립다 말하면 그리움은 또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겠지요.

<한 조각 흰 구름 유유히 뜬 곳 / 청풍의 포구에는 한없는 시름. / 누구네 집에서 떠난 배인가 / 슬픔에 잠긴 이는 어디 있을까? / 쓸쓸한 저 달도 홀로 가다가 / 그리운 내 님 경대 비춰주겠지. / 주렴에 비친 달빛 걷지 못하고 / 다듬잇돌 달빛도 막지 못하리 // 나의 이 그리움 전할 길 없어 / 달빛 가서 그 님을 비춰주기를. / 기러기 날아가도 빛은 못 가고 / 물고기 노니는 곳 물결만 인다. (후략)>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님은 갔습니다.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지만 님은 갔습니다. 님 실은 배는 떠나고 보낸 이의 가슴엔 그리움만 남아, 슬픔이지만, 티 없이 맑은 달이 님의 경대를 비추어 준다면 다듬잇돌처럼 하얗고 반질반질한 것이 차갑기까지 한 달빛이 차마 막지 못해 내 마음 전해 준다면…. 아, 기러기는 날아가는데 달빛은 가지 못하는구나. 시인이 울어도 송인(送人)의 속울음이 대동강 물을 마르지 않게 해도 들려오는 저 노래는 보낸 이의 간절한 마음인가 봅니다.

<아름다운 저 바다와 그리운 그 빛난 햇빛 내 맘 속에 잠시라도 떠날 때가 없도다 / 향기로운 꽃 만발한 아름다운 동산에서 내게 준 그 귀한 언약 어이하여 잊을까 / 멀리 떠나간 그대를 나는 홀로 사모하여 잊지 못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노라 / 돌아오라 이곳을 잊지 말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돌아오라.> - 이탈리아 가곡 ‘돌아오라 소렌토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