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우의 고전읽기>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숨결이 느껴진 곳에 (1)
장인우의 고전읽기>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숨결이 느껴진 곳에 (1)
by 운영자 2017.01.16
- 해옹(海翁)윤선도의 인생 2막을 찾아서
옛날 옛날 먼 옛날 세상을 버린 두 사내가 있었습니다. 한 사내는 365년에 태어나 427년 예순셋에 삶을 마쳤고, 한 사내는 1587년에 태어나 1671년 85세를 일기로 삶을 마쳤다고 합니다.한 사내는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불린 도연명이라 하고, 다른 한 사내는 고산(孤山)선생이라 불린 윤선도였답니다. 두 사내는 세상을 버려서 후세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두 사람은 관료출신의 시인입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봉양하느라 하루 세 끼를 다 하면 하늘이 복을 내려 준 날로 기록될 만큼 감사했지만 기록이 없었고, 한 사내는 나라의 전체 부자 중 으뜸으로 칠 만큼 큰 부자여서 굶주림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과 악수를 나눌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적당히 악수하고 웃는 얼굴을 보여줬으면 여유롭게 넉넉하게 한 세상을 잘 살다 갔으련만, 쯧쯧 ……. 그것만큼은 안 되는 사내들이었나 봅니다.
진송시대는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했던 시대라 할 만했다 합니다. 도연명이 태어나기 40여 년 전에 동진의 두 번째 황제 명제는 왕도로부터 진 왕조가 사마 씨가 조조(曹操)의 위나라 정권 찬탈 잔혹사를 듣고 침상에 얼굴을 묻은 채 “공의 말이 사실이라면 진나라의 위업이 어찌 장구할 수 있겠는가?”라고 개탄했다고 합니다.
이런 세태가 이어지다 보니 권력을 잡은 자들은 태평성대라 칭했다지만 권모술수와 물질숭배가 극에 달했던 시대에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것은 쉽지 않았겠지요.
그래서 버린 것일까요?
도연명이 세상을 버리고 고향, 정신적 고향으로 돌아간 것은 41세 때였다고 합니다. 팽택 현령이 된 지 겨우 80여 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심양군 장관의 직속인 독우(순찰관)가 순찰을 온다고 해 “필히 의관을 정제하고 맞이하십시오”라고 진언했더니, 글쎄 “오두미(다섯 말의 월급) 때문에 허리를 굽혀 향리의 소인을 섬기는 일을 할 수 있을손가”라고 하며 사임했답니다.
말로는 “취임해서 어느 정도 되자 집에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럭저럭 벼가 익으면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누이의 부음이 들려오자 참을 수 없어 집으로 갔다고” 사퇴 동기를 밝혔다고 합니다. 관료 생활의 굴레와 속박을 벗어버리고 돌아가면서「귀거래혜사」를 불렀답니다.
<자, 이제 돌아가리. / 고향 산천이 황폐해지거늘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이제껏 고귀한 정신이 육체의 노예가 되어 일했으나, / 어찌 홀로 슬퍼하고 서러워만 할 것인가.
이미 지난 일을 탓하고 후회해봤자 소용없고 / 이제부터 바른길 가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도 다. / 인생길 잘못 들어서서 헤맨 것 사실이나 그리 멀리 가진 않았으니
이제야 오늘 생각이 맞고 어제 행동이 틀렸음을 알았다네. /
배는 기우뚱기우뚱 경쾌하게 흔들리고 / 바람은 한들한들 옷깃을 스치는데
지나가는 길손에게 고향까지 가는 길을 물어보니 / 새벽빛 아직도 희미함이 한스럽구나 …….>
‘나 돌아갈래’ 자유, 해방. 시원한 바람이 살갗을 스치고 지나갈 때 휘파람 불며 걸어가는 이의 행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지요. 도연명은 어쩌면 태어나서 가장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먹고사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이고 보면, 삶의 의무이고 보면 정신은 육체의 노예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이 사내, 그동안 얼마나 외롭고 고독했을까요? 기우뚱기우뚱 흔들리는 배에 몸을 싣고 가면서 그는 ‘내게 고향은 어디쯤인가’ 길손 되어 묻네요.
잠시면 닿을 곳이지만 희미한 새벽이 한스럽다고 말하는 이 사내의 기다림은 설렘이지요.
<마침내 저 멀리 고향 집 대문과 처마가 보이니 / 기쁜 마음에 급히 뛰어갔다.
머슴아이 길에 나와 반기고 / 어린 것들은 대문에서 날 맞이한다.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에는 잡초가 무성하지만 /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꿋꿋하구나.
어린 놈 손잡고 방에 들어오니 / 언제 빚었는지 항아리엔 향기로운 술이 그득하구나.>
도연명의 삶에 물질적 풍요가 있었을까요? 본래부터 가난했던 삶에, 지조와 절개, 청빈을 벗 삼았던 그 사내에게 물질적 풍요는 먼 나라의 전설에 지나지 않겠지요. 그런데 지금 이 사내는 너무도 부유하고 풍요로워 보입니다.
고향집의 대문과 처마가 보일 무렵 희미하기만 하던 새벽빛의 한스러움은 지난 밤 기억 속으로 보내고, 뛰어가 잡은 아이들의 손끝에서 전해오는 따스함은 아버지로서,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태생적 기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당 한 켠에 덩그러니 놓여진 듯 가지 뻗은 소나무와 국화가 제 주인을 반기는 사이 항아리의 향기로운 술은 옛이야기 들려 달라 조르겠지요.
한 사내의 2막 인생, 우리들의 작은 인생, 그 이야기를 시인과 더불어 나눠봅시다. 오늘의 전설, 그 뒷이야기는 위안이 될지도 모릅니다.
두 사람은 관료출신의 시인입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봉양하느라 하루 세 끼를 다 하면 하늘이 복을 내려 준 날로 기록될 만큼 감사했지만 기록이 없었고, 한 사내는 나라의 전체 부자 중 으뜸으로 칠 만큼 큰 부자여서 굶주림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과 악수를 나눌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적당히 악수하고 웃는 얼굴을 보여줬으면 여유롭게 넉넉하게 한 세상을 잘 살다 갔으련만, 쯧쯧 ……. 그것만큼은 안 되는 사내들이었나 봅니다.
진송시대는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했던 시대라 할 만했다 합니다. 도연명이 태어나기 40여 년 전에 동진의 두 번째 황제 명제는 왕도로부터 진 왕조가 사마 씨가 조조(曹操)의 위나라 정권 찬탈 잔혹사를 듣고 침상에 얼굴을 묻은 채 “공의 말이 사실이라면 진나라의 위업이 어찌 장구할 수 있겠는가?”라고 개탄했다고 합니다.
이런 세태가 이어지다 보니 권력을 잡은 자들은 태평성대라 칭했다지만 권모술수와 물질숭배가 극에 달했던 시대에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것은 쉽지 않았겠지요.
그래서 버린 것일까요?
도연명이 세상을 버리고 고향, 정신적 고향으로 돌아간 것은 41세 때였다고 합니다. 팽택 현령이 된 지 겨우 80여 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심양군 장관의 직속인 독우(순찰관)가 순찰을 온다고 해 “필히 의관을 정제하고 맞이하십시오”라고 진언했더니, 글쎄 “오두미(다섯 말의 월급) 때문에 허리를 굽혀 향리의 소인을 섬기는 일을 할 수 있을손가”라고 하며 사임했답니다.
말로는 “취임해서 어느 정도 되자 집에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럭저럭 벼가 익으면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누이의 부음이 들려오자 참을 수 없어 집으로 갔다고” 사퇴 동기를 밝혔다고 합니다. 관료 생활의 굴레와 속박을 벗어버리고 돌아가면서「귀거래혜사」를 불렀답니다.
<자, 이제 돌아가리. / 고향 산천이 황폐해지거늘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이제껏 고귀한 정신이 육체의 노예가 되어 일했으나, / 어찌 홀로 슬퍼하고 서러워만 할 것인가.
이미 지난 일을 탓하고 후회해봤자 소용없고 / 이제부터 바른길 가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도 다. / 인생길 잘못 들어서서 헤맨 것 사실이나 그리 멀리 가진 않았으니
이제야 오늘 생각이 맞고 어제 행동이 틀렸음을 알았다네. /
배는 기우뚱기우뚱 경쾌하게 흔들리고 / 바람은 한들한들 옷깃을 스치는데
지나가는 길손에게 고향까지 가는 길을 물어보니 / 새벽빛 아직도 희미함이 한스럽구나 …….>
‘나 돌아갈래’ 자유, 해방. 시원한 바람이 살갗을 스치고 지나갈 때 휘파람 불며 걸어가는 이의 행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지요. 도연명은 어쩌면 태어나서 가장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먹고사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이고 보면, 삶의 의무이고 보면 정신은 육체의 노예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이 사내, 그동안 얼마나 외롭고 고독했을까요? 기우뚱기우뚱 흔들리는 배에 몸을 싣고 가면서 그는 ‘내게 고향은 어디쯤인가’ 길손 되어 묻네요.
잠시면 닿을 곳이지만 희미한 새벽이 한스럽다고 말하는 이 사내의 기다림은 설렘이지요.
<마침내 저 멀리 고향 집 대문과 처마가 보이니 / 기쁜 마음에 급히 뛰어갔다.
머슴아이 길에 나와 반기고 / 어린 것들은 대문에서 날 맞이한다.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에는 잡초가 무성하지만 /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꿋꿋하구나.
어린 놈 손잡고 방에 들어오니 / 언제 빚었는지 항아리엔 향기로운 술이 그득하구나.>
도연명의 삶에 물질적 풍요가 있었을까요? 본래부터 가난했던 삶에, 지조와 절개, 청빈을 벗 삼았던 그 사내에게 물질적 풍요는 먼 나라의 전설에 지나지 않겠지요. 그런데 지금 이 사내는 너무도 부유하고 풍요로워 보입니다.
고향집의 대문과 처마가 보일 무렵 희미하기만 하던 새벽빛의 한스러움은 지난 밤 기억 속으로 보내고, 뛰어가 잡은 아이들의 손끝에서 전해오는 따스함은 아버지로서,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태생적 기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당 한 켠에 덩그러니 놓여진 듯 가지 뻗은 소나무와 국화가 제 주인을 반기는 사이 항아리의 향기로운 술은 옛이야기 들려 달라 조르겠지요.
한 사내의 2막 인생, 우리들의 작은 인생, 그 이야기를 시인과 더불어 나눠봅시다. 오늘의 전설, 그 뒷이야기는 위안이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