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인사 유감
새해 인사 유감
by 운영자 2017.02.03
설 명절을 맞았다.아침부터 휴대전화가 바쁘다. 카카오톡으로 새해 인사말이 쇄도하는 것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희망찬 새해를 맞아 부디 소원 성취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새 다짐으로 희망이 넘치는 한 해가 되시기를 빕니다.”
지난번 신정 때도 받았는데, 다들 어슷비슷한 내용들이다. 전화기의 소리를 죽여 놓았더니, 이제는 부르르 떨리면서 문자가 들어온다.
문자뿐만 아니라 그림파일도 들어온다. 붉게 타오르는 동해 일출 장면도 있고, 닭의 해라고 화려한 깃털의 수탉 그림도 있으며, 곱상한 여인이 한복 차림으로 큰절하는 모습도 있고, ‘근하신년’이라고 쓴 카드 모양도 있다. 하도 여러 개가 들어오니 이름만 확인하고 내용은 대충 훑어보는 정도다.
인사를 받았으니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간단한 축하 내용을 써서 답신을 보내야 한다. 받는 사람에 따라서 각기 다른 내용을 써야 마땅하겠으나 시간 관계상 두루뭉술한 문장을 하나 만들어가지고 똑같이 보낼 수밖에 없다. 어차피 받는 사람은 각각 다르니까.
“지난 한해 보내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뜻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기를 기원합니다.”
내가 만든 표준문안이다. 아침에 일출을 보고 와서 이렇게 문자 보내다보니 오전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참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옛날 연말연시에는 다들 연하장을 보냈는데, 요즘은 풍속도가 달라진 것이다.
스마트폰이 나온 뒤로 성탄카드나 연하장을 살 필요가 없어졌다. 문방구에 가서 연하장을 사다가 일일이 주소를 쓰고, 또 그것을 우체국에 가지고 가서 부치자면 번거롭기도 하고 돈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카카오톡 문자로 대신하니 돈도 안 들고 간편해서 좋다.
그렇지만 한편 생각해보면 이렇게 문자로 인사를 주고받는 일이 너무 가볍고 형식적인 것이 아닌가 싶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여러 사람에게 대량으로 보내는 인사말에 얼마나 정성이 담길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다.
과거 연하장을 보내던 시절에는 연하카드의 속 종이에다 인사말을 손수 쓰곤 했다. 물론 거기에는 “신년을 맞아 지난해 보살펴주신 후의에 감사드리며 고당의 만복을 기원합니다”와 같은 상투적인 인사말이 인쇄돼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어딘가 허전하기 때문에 한두 줄이라도 자기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것이다.
“선배님! 올해는 꼭 승진하세요.”
“사랑하는 친구야! 새해에는 자주 만나자!”
“아우님! 올해는 꼭 기쁜 소식 있기 바라네.”
이렇게 짤막하게나마 육필로 쓴 연하장에는 보내는 이의 정성과 체취가 배기 마련이었다. 그런 연하장을 받으면 나도 몰래 입가에 미소가 어리며 마음이 푸근해지곤 했다.
‘아! 이분이 나를 이토록 생각하고 있구나!’‘이 친구가 마음이 변치 않았구나!’ ‘고맙게도 나에 대한 관심이 여전하구나!’
나는 그런 연하장은 함부로 버릴 수가 없었다. 보낸 이의 따스한 마음이 담겨 있는 물건을 어찌 가볍게 취급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그것들을 책상 서랍에 고스란히 보관해뒀다. 나중에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소중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다 1년쯤이나 지나고 나서야 묵은 것들을 정리하면서 비로소 떠나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카카오톡 문자야 어디 그런가. 곧바로 받고 곧바로 보내고 곧바로 잊어버린다.
내가 지은 글이 아니라 남에게서 받은 글을 적당히 복사해서 쓰고, 다른 사람이 만든 그림파일을 마치 내 것인 양 스스럼없이 사용하다보니 뭔가 살뜰한 마음이나 진득한 정성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편리한 것도 좋지만 대신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없는지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 또한 이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문명의 풍조에 휩쓸려가고 있음을 생각하면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희망찬 새해를 맞아 부디 소원 성취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새 다짐으로 희망이 넘치는 한 해가 되시기를 빕니다.”
지난번 신정 때도 받았는데, 다들 어슷비슷한 내용들이다. 전화기의 소리를 죽여 놓았더니, 이제는 부르르 떨리면서 문자가 들어온다.
문자뿐만 아니라 그림파일도 들어온다. 붉게 타오르는 동해 일출 장면도 있고, 닭의 해라고 화려한 깃털의 수탉 그림도 있으며, 곱상한 여인이 한복 차림으로 큰절하는 모습도 있고, ‘근하신년’이라고 쓴 카드 모양도 있다. 하도 여러 개가 들어오니 이름만 확인하고 내용은 대충 훑어보는 정도다.
인사를 받았으니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간단한 축하 내용을 써서 답신을 보내야 한다. 받는 사람에 따라서 각기 다른 내용을 써야 마땅하겠으나 시간 관계상 두루뭉술한 문장을 하나 만들어가지고 똑같이 보낼 수밖에 없다. 어차피 받는 사람은 각각 다르니까.
“지난 한해 보내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뜻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기를 기원합니다.”
내가 만든 표준문안이다. 아침에 일출을 보고 와서 이렇게 문자 보내다보니 오전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참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옛날 연말연시에는 다들 연하장을 보냈는데, 요즘은 풍속도가 달라진 것이다.
스마트폰이 나온 뒤로 성탄카드나 연하장을 살 필요가 없어졌다. 문방구에 가서 연하장을 사다가 일일이 주소를 쓰고, 또 그것을 우체국에 가지고 가서 부치자면 번거롭기도 하고 돈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카카오톡 문자로 대신하니 돈도 안 들고 간편해서 좋다.
그렇지만 한편 생각해보면 이렇게 문자로 인사를 주고받는 일이 너무 가볍고 형식적인 것이 아닌가 싶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여러 사람에게 대량으로 보내는 인사말에 얼마나 정성이 담길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다.
과거 연하장을 보내던 시절에는 연하카드의 속 종이에다 인사말을 손수 쓰곤 했다. 물론 거기에는 “신년을 맞아 지난해 보살펴주신 후의에 감사드리며 고당의 만복을 기원합니다”와 같은 상투적인 인사말이 인쇄돼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어딘가 허전하기 때문에 한두 줄이라도 자기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것이다.
“선배님! 올해는 꼭 승진하세요.”
“사랑하는 친구야! 새해에는 자주 만나자!”
“아우님! 올해는 꼭 기쁜 소식 있기 바라네.”
이렇게 짤막하게나마 육필로 쓴 연하장에는 보내는 이의 정성과 체취가 배기 마련이었다. 그런 연하장을 받으면 나도 몰래 입가에 미소가 어리며 마음이 푸근해지곤 했다.
‘아! 이분이 나를 이토록 생각하고 있구나!’‘이 친구가 마음이 변치 않았구나!’ ‘고맙게도 나에 대한 관심이 여전하구나!’
나는 그런 연하장은 함부로 버릴 수가 없었다. 보낸 이의 따스한 마음이 담겨 있는 물건을 어찌 가볍게 취급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그것들을 책상 서랍에 고스란히 보관해뒀다. 나중에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소중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다 1년쯤이나 지나고 나서야 묵은 것들을 정리하면서 비로소 떠나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카카오톡 문자야 어디 그런가. 곧바로 받고 곧바로 보내고 곧바로 잊어버린다.
내가 지은 글이 아니라 남에게서 받은 글을 적당히 복사해서 쓰고, 다른 사람이 만든 그림파일을 마치 내 것인 양 스스럼없이 사용하다보니 뭔가 살뜰한 마음이나 진득한 정성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편리한 것도 좋지만 대신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없는지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 또한 이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문명의 풍조에 휩쓸려가고 있음을 생각하면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