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우의 고전읽기>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숨결이 느껴진 곳에(3)
장인우의 고전읽기>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숨결이 느껴진 곳에(3)
by 운영자 2017.02.24
- 해옹(海翁) 윤선도의 인생 2막을 찾아서
누가 이를 질박하고도 공교하게 만들어내었는가? 자유롭고 분방함은 조화옹에게서 말미암았구나!
해를 곁에 두고 바람에 임하니 구름 골짜기 같고
집은 그윽하고 지세는 험하여 바위 가운데 빼어나네.
옥구유에 나는 폭포 향기로운 안개 꿰뚫고
돌단지의 차가운 못 푸르른 하늘 비치네.
십 리의 봉호(蓬壺)는 하늘이 내리신 영토이니
비로소 내 길이 완전히 막히지 않은 줄 알겠네.
윤선도 「황원잡영 3수」 중 1.
이상세계를 꿈꿔 본 적 있는가? 내가 꿈꾸는 이상세계는 어떠한 세상이고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세계는 어떠한 세상인가 되짚어 본다. 2017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꿈꾸는 세상을 위해 2016년 촛불을 들었다. 촛불이 횃불이 돼 타오르고 그 횃불은 촛불이 돼 타오르는 동안 사람들은 가슴으로 울며 한목소리로 부르고 있다. 정의로운 세상을 …….
선생의 문학을 처음 만나러 갔던 때가 지난 해 여름이었다. 해남 땅끝 마을 앞 포구에서 배를 타고서 출발할 때까지 ‘해옹’이라는 호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다만 고산 선생이었다. 노화도 앞 포구에서 내려 노화도를 건너 보길도에 닿아서는 ‘지국총지국총 어사화’를 계속해서 들었다. 그 때까지 선생의 문학은 시조였다.
3장 6구 45자 내외의 정형시, 독특한 점은 고려가요의 특징인 후렴구를 일정하게 배열해 문학적 미를 살리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린, 조선의 시조 문학에서 볼 수 없었던 수려한 시조문학의 세계, 그것만을 상상하고 그곳에 도착했던 것이다.
그러나 선생에게 시조는 인생 2막에서 펼쳐낸 새로운 삶의 시대의 정점이었음을 알게 됐다. 보길도 부용동에서 선생의 자취를 더듬어 보고서야 그곳은 선생의 푸른 바다였음을 알게 됐고, ‘고산유고’집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겨 가면서야 선생이 왜 ‘해옹’이어야 하는지 알게 됐다.
범부로서, 학자로서, 관료로서, 문학인으로서의 방대한 삶의 족적을 그저 놀라워하며 읽어나가기에 바빴다.
선생의 한시를 읽어나가며 삶의 기록, 시대와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낸 시대정신들을 읽으며 ‘나는 왜 윤선도를 읽는가?’ 의문도 가져 보았다. 참으로 짧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도연명이 꿈꾸었던 이상세계는 무릉도원이었다. 그가 ‘도화원기’에서 풀어놓은 이상세계는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였다.
무릉에 살고 있던 한 어부가 시냇물을 따라가다가 얼마나 왔는지 깜빡 잊었을 때쯤 갑자기 복숭아 숲과 마주치게 됐다. 그곳은 양 편 언덕을 끼고 수백 보 넓이의 땅에 잡목은 하나도 없었으며 싱싱하고 아름다운 풀 위에 떨어지는 꽃의 향기가 어지러웠다.
어부가 숲 끝에 닿았을 때 물의 근원이 있는 곳에 산이 있고, 산에는 작은 구멍이 있었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정도의 구멍을 지나자 훤하게 활짝 펼쳐진 땅이 있었다.
그 땅은 평평하고 넓었으며, 집들이 멋지게 들어섰고, 좋은 밭과 연못이 있고, 뽕나무와 대나무 같은 것들이 잘 자라고 있었다. 사방으로 길이 뻗어 있고,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가 들렸으며, 그 속에서 왔다갔다하며 씨 뿌리고 일하는 남녀가 입은 옷은 모두가 다른 세상의 것 같았다.
노인과 아이들 모두 즐거운 듯 함께 놀고 있었다. 그 마을 사람들은 어부를 보고 깜짝 놀라 어디서 왔는지를 묻고는 술자리를 마련하고 닭을 잡아 음식을 장만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어부가 떠나올 때 세상 밖 사람들에게 이곳을 알리지 말라고 부탁했다.
물론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이후로 그 마을을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51세 선생은 참을 수 없는 비애, 고통스러운 수치심을 안고 탐라를 찾아 떠났다. 국가가 무슨 잘못을 씌워서 보낸 유배가 아니었다.
그 스스로가 떠나는 유배 같은 것이었다. 광해군의 실리외교를 이해하지 못하던 자들이 반정을 통해 세운 임금이었다.
과거 오랑캐였지만 힘을 키워 명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오히려 명나라를 위협하는 후금을 알지 못했던 서인 세력들, 아니 그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안위와 일신의 영달을 위해 국가의 존망은 생각지 않았던 자들이 옹립한 임금이었다.
그 임금이 오랑캐 후금과 형제 관계를 맺더니 청나라가 된 오랑캐들과 군신관계를 맺고서 목숨을 지켰고, 향족과 가복들을 규합해 나갔던 선생은 ‘국치일’을 만나 떠나온 것이다.
탐라가 아닌 보길도에의 표류는 그도 꿈꿔 오던 이상세계가 아니었을까.
격자봉과 낙서재, 동편 석실과의 시간은 ‘황원잡영 3수’로 풀어보고자 한다.
해를 곁에 두고 바람에 임하니 구름 골짜기 같고
집은 그윽하고 지세는 험하여 바위 가운데 빼어나네.
옥구유에 나는 폭포 향기로운 안개 꿰뚫고
돌단지의 차가운 못 푸르른 하늘 비치네.
십 리의 봉호(蓬壺)는 하늘이 내리신 영토이니
비로소 내 길이 완전히 막히지 않은 줄 알겠네.
윤선도 「황원잡영 3수」 중 1.
이상세계를 꿈꿔 본 적 있는가? 내가 꿈꾸는 이상세계는 어떠한 세상이고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세계는 어떠한 세상인가 되짚어 본다. 2017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꿈꾸는 세상을 위해 2016년 촛불을 들었다. 촛불이 횃불이 돼 타오르고 그 횃불은 촛불이 돼 타오르는 동안 사람들은 가슴으로 울며 한목소리로 부르고 있다. 정의로운 세상을 …….
선생의 문학을 처음 만나러 갔던 때가 지난 해 여름이었다. 해남 땅끝 마을 앞 포구에서 배를 타고서 출발할 때까지 ‘해옹’이라는 호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다만 고산 선생이었다. 노화도 앞 포구에서 내려 노화도를 건너 보길도에 닿아서는 ‘지국총지국총 어사화’를 계속해서 들었다. 그 때까지 선생의 문학은 시조였다.
3장 6구 45자 내외의 정형시, 독특한 점은 고려가요의 특징인 후렴구를 일정하게 배열해 문학적 미를 살리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린, 조선의 시조 문학에서 볼 수 없었던 수려한 시조문학의 세계, 그것만을 상상하고 그곳에 도착했던 것이다.
그러나 선생에게 시조는 인생 2막에서 펼쳐낸 새로운 삶의 시대의 정점이었음을 알게 됐다. 보길도 부용동에서 선생의 자취를 더듬어 보고서야 그곳은 선생의 푸른 바다였음을 알게 됐고, ‘고산유고’집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겨 가면서야 선생이 왜 ‘해옹’이어야 하는지 알게 됐다.
범부로서, 학자로서, 관료로서, 문학인으로서의 방대한 삶의 족적을 그저 놀라워하며 읽어나가기에 바빴다.
선생의 한시를 읽어나가며 삶의 기록, 시대와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낸 시대정신들을 읽으며 ‘나는 왜 윤선도를 읽는가?’ 의문도 가져 보았다. 참으로 짧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도연명이 꿈꾸었던 이상세계는 무릉도원이었다. 그가 ‘도화원기’에서 풀어놓은 이상세계는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였다.
무릉에 살고 있던 한 어부가 시냇물을 따라가다가 얼마나 왔는지 깜빡 잊었을 때쯤 갑자기 복숭아 숲과 마주치게 됐다. 그곳은 양 편 언덕을 끼고 수백 보 넓이의 땅에 잡목은 하나도 없었으며 싱싱하고 아름다운 풀 위에 떨어지는 꽃의 향기가 어지러웠다.
어부가 숲 끝에 닿았을 때 물의 근원이 있는 곳에 산이 있고, 산에는 작은 구멍이 있었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정도의 구멍을 지나자 훤하게 활짝 펼쳐진 땅이 있었다.
그 땅은 평평하고 넓었으며, 집들이 멋지게 들어섰고, 좋은 밭과 연못이 있고, 뽕나무와 대나무 같은 것들이 잘 자라고 있었다. 사방으로 길이 뻗어 있고,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가 들렸으며, 그 속에서 왔다갔다하며 씨 뿌리고 일하는 남녀가 입은 옷은 모두가 다른 세상의 것 같았다.
노인과 아이들 모두 즐거운 듯 함께 놀고 있었다. 그 마을 사람들은 어부를 보고 깜짝 놀라 어디서 왔는지를 묻고는 술자리를 마련하고 닭을 잡아 음식을 장만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어부가 떠나올 때 세상 밖 사람들에게 이곳을 알리지 말라고 부탁했다.
물론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이후로 그 마을을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51세 선생은 참을 수 없는 비애, 고통스러운 수치심을 안고 탐라를 찾아 떠났다. 국가가 무슨 잘못을 씌워서 보낸 유배가 아니었다.
그 스스로가 떠나는 유배 같은 것이었다. 광해군의 실리외교를 이해하지 못하던 자들이 반정을 통해 세운 임금이었다.
과거 오랑캐였지만 힘을 키워 명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오히려 명나라를 위협하는 후금을 알지 못했던 서인 세력들, 아니 그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안위와 일신의 영달을 위해 국가의 존망은 생각지 않았던 자들이 옹립한 임금이었다.
그 임금이 오랑캐 후금과 형제 관계를 맺더니 청나라가 된 오랑캐들과 군신관계를 맺고서 목숨을 지켰고, 향족과 가복들을 규합해 나갔던 선생은 ‘국치일’을 만나 떠나온 것이다.
탐라가 아닌 보길도에의 표류는 그도 꿈꿔 오던 이상세계가 아니었을까.
격자봉과 낙서재, 동편 석실과의 시간은 ‘황원잡영 3수’로 풀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