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우의 고전읽기]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숨결이 느껴진 곳에(5)
[장인우의 고전읽기]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숨결이 느껴진 곳에(5)
by 운영자 2017.03.24
- 해옹(海翁) 윤선도의 인생 2막을 찾아서
달팽이집이라 그대 비웃지 마소 / 면면마다 새롭게 화폭을 이룬다오.
이미 늘 봄인 양 푸른 밭을 얻었으니 / 어찌 불야성이 필요하리.
돌웅덩이 술통에 옛 뜻이 머물렀고 / 바위 집에 그윽한 정이 흡족하네.
귀 씻으려 해도 산 외려 낮은데 / 어찌하여 귀에서 소리 끊으리오?
- 윤선도「황원잡영-3수」
달팽이집이라 그대 비웃지 마소 / 면면마다 새롭게 화폭을 이룬다오.
이미 늘 봄인 양 푸른 밭을 얻었으니 / 어찌 불야성이 필요하리.
돌웅덩이 술통에 옛 뜻이 머물렀고 / 바위 집에 그윽한 정이 흡족하네.
귀 씻으려 해도 산 외려 낮은데 / 어찌하여 귀에서 소리 끊으리오?
- 윤선도「황원잡영-3수」
속세로 돌아갈 수 없었다. 신선들이 성낼까 두려워서였다. 그림이 되어버린 신선을 흠앙(欽仰)하는 마음 순백의 자기처럼 한 점 흐트러짐조차 용납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작은 섬 산궐(山闕) 장재도에서 숨겨 둔 재물은 맑은 바람과 달이라는 음성을 들었고, ‘높은 파도 큰 물결 가운데 / 우뚝이 선 채 움직이지 않는’ 격자봉 앞에서 ‘덕으로 이끌어주고 예로 가지런히 하면 백성이 불선(不善)을 부끄러워하고 선에 이르게 된다’ 지만 자신은 먼저 부끄러운 줄 알고 선을 행하지 못했기에 자미궁에 나아갈 수 없다 말한다.
해옹 선생은 격자봉 아래 달팽이집과 같은 한 발 띠집을 지었다. 부끄러운 역사를 씻어내지 못한 채 대면해야 하는 순간 순간들 식자(識者)로서 고뇌의 순간들을 다섯 수레의 책 속에 묻어두려 했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근심도 허물도 앞산은 거울처럼 늘 그렇게 비추어 주었을지도 모른다. 묻는다고 묻어지는가?
그럴 때마다 선생은 걸어서 다시 앞산에 오른다. 내리막길을 걸으며 들녘을 바라보고 하늘을 바라보고 사람들의 눈과 굽은 등을 바라보며 허허로운 눈빛으로 걸어서 앞산에 오른다.
숲은 때로 그리움이며 신비로움일 수 있다. 들어서는 초입은 늘 서늘하다. 빽빽하게 늘어 선 잔가지들이 낮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다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기어오르는 동안 그것들은 손을 맞잡은 채 틈을 주려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작으면 작은대로, 가늘면 가는대로 서로 기대어 연대하며 나름의 숲을 이룬다. 사람은 그 안에 들어서면서 소리를 듣는다. ‘우 우 우, 수 수 수’ 웅성거리는 듯 들려오는 그것들의 숨소리와 그것들의 재재거림을 듣는다. 겁을 먹은 듯 놀란 눈동자를 들키지 않으려 움츠리며 걷는 동안 조그만 햇발보다 크게 드리운 축축함에 발목을 적시고 손을 적신다.
그곳에도 길은 있다. 양 옆으로 늘어서서 기어오르기를 멈추지 않는 나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길이 있다. 매우 좁고 가파르다. 한발 재겨 딛는 것도 때때로 무서움증이 일게 하는 돌멩이 박힌 길은 두꺼비 등처럼 울퉁불퉁 우둘투둘한 것이 서둘러 오르려는 사람의 마음에 ‘쿵’, ‘또로로록 쿵’ 깨우침을 준다.
쉬고 싶어진다. 팽팽하게 당겨오는 다리에 쉼을 주고, 턱 밑까지 차고 올라오는 심장 고동에도 쉼을 주어, 파고들 듯 내려박은 눈동자에 한 움큼 햇살의 쉼을 주고 싶다.
그러나 굽이진 길 사이로 들어선 집채만 한 바위는 묻는다. 쉼을 허락받은 적이 있었던가?
사람은 스스로 위로하며 걷는다. 곧 정상이 있을 것이라고, 끝이 있을 것이라고. 눈에 띄지 않게 다리에 쉼을 주고, 들리지 않게 심장 고동에 쉼을 주고, 한 움큼 한 움큼 햇발에 고개를 들먹이며 그렇게 오른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버티며 꺾이지 않으려 지조를 읊조리고, 절개를 읊조리던 나무들이 굵직하게 푸른빛으로 일렁일 무렵, 사람은 넓은 오히려 넓은 땅에 내려선다. 그곳은 숲과 숲으로 둘러싸인 땅이다.
그 땅 위에서 해옹 선생은
서산을 미산(薇山)이라 부르는데 / 아득히 연하(煙霞) 속에 있다네.
시험삼아 백이·숙제에게 보게 하면 / 서로 손잡고 반드시 저곳에 오르리.
-윤선도「미산 (薇山)」
빼어난 자연에 찬사를 보내며
용거(容車)라 함은 소동파의 시요 / 측호(側戶)라 함은 주문고의 기로다.
어찌 여섯 겹문이 있을까마는 / 뜰과 샘, 대와 못은 갖추었다네.
- 윤선도「석실」
신선의 도를 다하려 했다. 그곳에서 달구경 함께하던 거북바위 너머의 낙서재 글귀가 손짓하며 벗을 부르는 찰나, 선생은 밝게 떠오른 달빛과 여인의 눈썹 아래 보조개 살짝 비껴앉은 자리 점으로 떠오른 별빛에 반짝, 눈을 모은다.
※본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옹 선생은 격자봉 아래 달팽이집과 같은 한 발 띠집을 지었다. 부끄러운 역사를 씻어내지 못한 채 대면해야 하는 순간 순간들 식자(識者)로서 고뇌의 순간들을 다섯 수레의 책 속에 묻어두려 했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근심도 허물도 앞산은 거울처럼 늘 그렇게 비추어 주었을지도 모른다. 묻는다고 묻어지는가?
그럴 때마다 선생은 걸어서 다시 앞산에 오른다. 내리막길을 걸으며 들녘을 바라보고 하늘을 바라보고 사람들의 눈과 굽은 등을 바라보며 허허로운 눈빛으로 걸어서 앞산에 오른다.
숲은 때로 그리움이며 신비로움일 수 있다. 들어서는 초입은 늘 서늘하다. 빽빽하게 늘어 선 잔가지들이 낮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다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기어오르는 동안 그것들은 손을 맞잡은 채 틈을 주려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작으면 작은대로, 가늘면 가는대로 서로 기대어 연대하며 나름의 숲을 이룬다. 사람은 그 안에 들어서면서 소리를 듣는다. ‘우 우 우, 수 수 수’ 웅성거리는 듯 들려오는 그것들의 숨소리와 그것들의 재재거림을 듣는다. 겁을 먹은 듯 놀란 눈동자를 들키지 않으려 움츠리며 걷는 동안 조그만 햇발보다 크게 드리운 축축함에 발목을 적시고 손을 적신다.
그곳에도 길은 있다. 양 옆으로 늘어서서 기어오르기를 멈추지 않는 나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길이 있다. 매우 좁고 가파르다. 한발 재겨 딛는 것도 때때로 무서움증이 일게 하는 돌멩이 박힌 길은 두꺼비 등처럼 울퉁불퉁 우둘투둘한 것이 서둘러 오르려는 사람의 마음에 ‘쿵’, ‘또로로록 쿵’ 깨우침을 준다.
쉬고 싶어진다. 팽팽하게 당겨오는 다리에 쉼을 주고, 턱 밑까지 차고 올라오는 심장 고동에도 쉼을 주어, 파고들 듯 내려박은 눈동자에 한 움큼 햇살의 쉼을 주고 싶다.
그러나 굽이진 길 사이로 들어선 집채만 한 바위는 묻는다. 쉼을 허락받은 적이 있었던가?
사람은 스스로 위로하며 걷는다. 곧 정상이 있을 것이라고, 끝이 있을 것이라고. 눈에 띄지 않게 다리에 쉼을 주고, 들리지 않게 심장 고동에 쉼을 주고, 한 움큼 한 움큼 햇발에 고개를 들먹이며 그렇게 오른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버티며 꺾이지 않으려 지조를 읊조리고, 절개를 읊조리던 나무들이 굵직하게 푸른빛으로 일렁일 무렵, 사람은 넓은 오히려 넓은 땅에 내려선다. 그곳은 숲과 숲으로 둘러싸인 땅이다.
그 땅 위에서 해옹 선생은
서산을 미산(薇山)이라 부르는데 / 아득히 연하(煙霞) 속에 있다네.
시험삼아 백이·숙제에게 보게 하면 / 서로 손잡고 반드시 저곳에 오르리.
-윤선도「미산 (薇山)」
빼어난 자연에 찬사를 보내며
용거(容車)라 함은 소동파의 시요 / 측호(側戶)라 함은 주문고의 기로다.
어찌 여섯 겹문이 있을까마는 / 뜰과 샘, 대와 못은 갖추었다네.
- 윤선도「석실」
신선의 도를 다하려 했다. 그곳에서 달구경 함께하던 거북바위 너머의 낙서재 글귀가 손짓하며 벗을 부르는 찰나, 선생은 밝게 떠오른 달빛과 여인의 눈썹 아래 보조개 살짝 비껴앉은 자리 점으로 떠오른 별빛에 반짝, 눈을 모은다.
※본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