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변천사
이름 변천사
by 운영자 2017.08.02
얼마 전 ‘박근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법원에 개명 신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대통령 재임 때는 괜찮았겠지만 탄핵으로 물러나 옥에 갇힌 지금 상황에서는 이름을 그대로 지니고 있기가 낯 뜨거웠을 것 같다.
요즘은 학교에서도 학생생활기록부에 이름을 고치는 일이 자주 있다. 선생님들도 간혹 개명을 했다면서 새 이름으로 불러달라는 경우가 있다.
어린애들도 아니고 다 큰 사람이 이제 와서 이름을 바꾸면 뭐하냐는 생각이 들지만 당사자로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이런 것을 볼 때 자기 이름에 흡족한 생각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요새는 법원에 개명 신청을 하면 개인의 권리 보장 차원에서 쉽게 허가를 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옛날에는 그게 쉽지 않아서 자기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숙명처럼 안고 지냈다.
다소 특이한 이름을 가진 친구들은 놀림도 많이 받았다. 내 학창시절에 ‘박해수(朴海洙)’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발음이 물 긷는 양동이와 비슷해 “물 담는 바케쓰냐 똥 담는 바케쓰냐?”며 짓궂은 장난을 치곤했다.
‘동직’이란 친구는 ‘똥집’으로 둔갑되어 불렸다. ‘말순’과 ‘맹숙’, ‘쌍례’라는 이름을 가진 여학생도 있었는데, 이름에 대한 고충이 있었을 것 같지만 언제 개명을 했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우리 어린 시절에는 여자의 이름 끝에 ‘아들 자(子)’자가 많이 붙었다. ‘영자’니 ‘순자’니 ‘숙자’니 하는 이름들이 한 반에도 여러 명이 있었다.
그래서 앞에 성(姓)을 붙여서 ‘김순자’, ‘이순자’로 구별했고, 공교롭게도 성까지 같은 경우에는 키를 기준삼아 ‘큰 순자’, ‘작은 순자’라고 구별해서 불렀다.
1970년대의 최인호 소설 <바보들의 행진>은 대학생들의 이야기인데, 남녀 주인공의 이름이 ‘병태’와 ‘영자’였다. 여자대학생의 이름이 ‘영자’라니, 지금은 그 이름이 촌스럽다고 생각되지만 당시에는 별로 어색함이 없었다.
그 만큼 흔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리라. 이 이름은 조선작 소설 <영자의 전성시대>에서 매춘여성으로도 등장한다.
이렇게 여자 이름에 ‘자’자가 많이 붙은 것은 아들을 낳기를 바라는 남아선호사상 때문이라는 설이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일제강점기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일본여자들도 ‘하루코(春子)’, ‘하나코(花子)’, ‘아키코(明子)’와 같이 다들 ‘코(子)’자 일색이 아닌가.
우리나라 여자 이름은 ‘자’자 말고도 ‘순(順)’과 ‘숙(淑)’, ‘희(姬)’자가 많이 붙었다. 게다가 자녀를 많이 낳을 때라 이름을 기억하기 쉽도록 지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금(金), 은(銀), 옥(玉)’을 차례로 써서 ‘금순, 은순, 옥순’이나 ‘금숙, 은숙, 옥숙’이나 ‘금희, 은희, 옥희’와 같이 했다. ‘진(眞), ‘선(善), 미(美)’를 붙여서 ‘진순, 선순, 미순’이나 ‘진숙, 선숙, 미숙’이나 ‘진희, 선희, 미희’와 같은 자매도 볼 수 있었다. 아니면 ‘정(貞), 숙(淑), 현(賢)’을 붙여서 ‘정희, 숙희, 현희’ 따위로 짓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전화번호부가 책자로 배포됐는데, 이런 동명이인들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한편 남자 이름은 항렬에 따르다 보니 여자처럼 틀에 박힌 것은 없지만 앞 글자는 ‘영(永)’, ‘광(光)’, ‘철(哲)’이 많았고, 뒷 글자는 ‘수(洙)’, ‘호(浩)’, ‘식(植)’이 흔했다.
그리하여 ‘영수, 영호, 영식’이나 ‘광수, 광호, 광식’, 또는 ‘철수, 철호, 철식’ 따위의 이름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어떤 집에서는 형제간의 이름을 갑(甲), 을(乙), 병(丙)의 순서로 ‘갑수, 을수, 병수’로 짓기도 하고, 일(一), 이(二), 삼(三)의 순서로 하여 ‘일룡, 재룡, 삼룡’으로 지었다.
딸의 경우는 ‘일례, 두례, 삼례’로 했는데, 그러다보니 이름만 들어보면 몇 째 자식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우리 반에 ‘칠남’이라는 친구는 물어볼 것도 없이 일곱째 아들이었다.
요즘 학생들 이름은 예전과는 많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옛날처럼 ‘자’를 붙인 여자 이름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서연, 서윤, 민서, 현서, 예린, 예은’과 같은 이름이 많이 눈에 띈다. 남자 이름은 ‘민우, 민준, 민혁, 현우, 현준, 준혁, 지훈’ 따위가 많다.
자녀를 많이 낳지 않는 터라 귀한 자식에게 세련되고 멋진 이름을 지어주려는 정성은 알겠는데, 특정 이름자를 선호하다보면 동명이인이 많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옛날에 한 반에 영자, 순자, 숙자들이 수두룩했던 것처럼 앞으로는 서연, 서윤, 민서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사람의 이름은 태어날 때 부모가 임의대로 지어 붙이지만 일단 명명되면 그 사람을 가리키는 상징이 된다. 그래서 예부터 어른들은 사람과 이름을 하나로 보고 이름을 함부로 더럽히지 말 것을 경계했다.
아무리 좋은 이름이라도 행실이 바르지 못하면 좋지 않은 이름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역사를 돌이켜봐도 그릇된 행동으로 얼룩진 이름을 남긴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 때 자랑스러웠던 ‘박근혜’라는 이름이 이제는 부끄러운 이름으로 뒤바뀐 것을 보며, 이름을 제대로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깨닫는다.
요즘은 학교에서도 학생생활기록부에 이름을 고치는 일이 자주 있다. 선생님들도 간혹 개명을 했다면서 새 이름으로 불러달라는 경우가 있다.
어린애들도 아니고 다 큰 사람이 이제 와서 이름을 바꾸면 뭐하냐는 생각이 들지만 당사자로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이런 것을 볼 때 자기 이름에 흡족한 생각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요새는 법원에 개명 신청을 하면 개인의 권리 보장 차원에서 쉽게 허가를 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옛날에는 그게 쉽지 않아서 자기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숙명처럼 안고 지냈다.
다소 특이한 이름을 가진 친구들은 놀림도 많이 받았다. 내 학창시절에 ‘박해수(朴海洙)’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발음이 물 긷는 양동이와 비슷해 “물 담는 바케쓰냐 똥 담는 바케쓰냐?”며 짓궂은 장난을 치곤했다.
‘동직’이란 친구는 ‘똥집’으로 둔갑되어 불렸다. ‘말순’과 ‘맹숙’, ‘쌍례’라는 이름을 가진 여학생도 있었는데, 이름에 대한 고충이 있었을 것 같지만 언제 개명을 했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우리 어린 시절에는 여자의 이름 끝에 ‘아들 자(子)’자가 많이 붙었다. ‘영자’니 ‘순자’니 ‘숙자’니 하는 이름들이 한 반에도 여러 명이 있었다.
그래서 앞에 성(姓)을 붙여서 ‘김순자’, ‘이순자’로 구별했고, 공교롭게도 성까지 같은 경우에는 키를 기준삼아 ‘큰 순자’, ‘작은 순자’라고 구별해서 불렀다.
1970년대의 최인호 소설 <바보들의 행진>은 대학생들의 이야기인데, 남녀 주인공의 이름이 ‘병태’와 ‘영자’였다. 여자대학생의 이름이 ‘영자’라니, 지금은 그 이름이 촌스럽다고 생각되지만 당시에는 별로 어색함이 없었다.
그 만큼 흔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리라. 이 이름은 조선작 소설 <영자의 전성시대>에서 매춘여성으로도 등장한다.
이렇게 여자 이름에 ‘자’자가 많이 붙은 것은 아들을 낳기를 바라는 남아선호사상 때문이라는 설이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일제강점기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일본여자들도 ‘하루코(春子)’, ‘하나코(花子)’, ‘아키코(明子)’와 같이 다들 ‘코(子)’자 일색이 아닌가.
우리나라 여자 이름은 ‘자’자 말고도 ‘순(順)’과 ‘숙(淑)’, ‘희(姬)’자가 많이 붙었다. 게다가 자녀를 많이 낳을 때라 이름을 기억하기 쉽도록 지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금(金), 은(銀), 옥(玉)’을 차례로 써서 ‘금순, 은순, 옥순’이나 ‘금숙, 은숙, 옥숙’이나 ‘금희, 은희, 옥희’와 같이 했다. ‘진(眞), ‘선(善), 미(美)’를 붙여서 ‘진순, 선순, 미순’이나 ‘진숙, 선숙, 미숙’이나 ‘진희, 선희, 미희’와 같은 자매도 볼 수 있었다. 아니면 ‘정(貞), 숙(淑), 현(賢)’을 붙여서 ‘정희, 숙희, 현희’ 따위로 짓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전화번호부가 책자로 배포됐는데, 이런 동명이인들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한편 남자 이름은 항렬에 따르다 보니 여자처럼 틀에 박힌 것은 없지만 앞 글자는 ‘영(永)’, ‘광(光)’, ‘철(哲)’이 많았고, 뒷 글자는 ‘수(洙)’, ‘호(浩)’, ‘식(植)’이 흔했다.
그리하여 ‘영수, 영호, 영식’이나 ‘광수, 광호, 광식’, 또는 ‘철수, 철호, 철식’ 따위의 이름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어떤 집에서는 형제간의 이름을 갑(甲), 을(乙), 병(丙)의 순서로 ‘갑수, 을수, 병수’로 짓기도 하고, 일(一), 이(二), 삼(三)의 순서로 하여 ‘일룡, 재룡, 삼룡’으로 지었다.
딸의 경우는 ‘일례, 두례, 삼례’로 했는데, 그러다보니 이름만 들어보면 몇 째 자식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우리 반에 ‘칠남’이라는 친구는 물어볼 것도 없이 일곱째 아들이었다.
요즘 학생들 이름은 예전과는 많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옛날처럼 ‘자’를 붙인 여자 이름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서연, 서윤, 민서, 현서, 예린, 예은’과 같은 이름이 많이 눈에 띈다. 남자 이름은 ‘민우, 민준, 민혁, 현우, 현준, 준혁, 지훈’ 따위가 많다.
자녀를 많이 낳지 않는 터라 귀한 자식에게 세련되고 멋진 이름을 지어주려는 정성은 알겠는데, 특정 이름자를 선호하다보면 동명이인이 많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옛날에 한 반에 영자, 순자, 숙자들이 수두룩했던 것처럼 앞으로는 서연, 서윤, 민서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사람의 이름은 태어날 때 부모가 임의대로 지어 붙이지만 일단 명명되면 그 사람을 가리키는 상징이 된다. 그래서 예부터 어른들은 사람과 이름을 하나로 보고 이름을 함부로 더럽히지 말 것을 경계했다.
아무리 좋은 이름이라도 행실이 바르지 못하면 좋지 않은 이름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역사를 돌이켜봐도 그릇된 행동으로 얼룩진 이름을 남긴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 때 자랑스러웠던 ‘박근혜’라는 이름이 이제는 부끄러운 이름으로 뒤바뀐 것을 보며, 이름을 제대로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