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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가 천덕꾸러기인가

‘효’가 천덕꾸러기인가

by 운영자 2017.08.25

“친구요? 엄마가 다 필요 없대요.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어차피 저희를 판단하는 건 성적이니까.”(A중 1학년 여학생)“왕따 당하지 않으려면 왕따 시켜야 해요. 내가 살려면 마음 내키지 않아도 다른 애를 괴롭혀야 돼요.”(B중 2학년 남학생)
“대화의 절반은 욕이죠. 다들 그렇게 하니까 아무렇지 않아요. 부모님도 욕을 섞어 쓰니까 우리에게 뭐라고 못하죠.”(C중 1학년 남학생)

몇 년 전 한 신문에서 인성 측정을 위해 중학생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한 내용이다. 신문을 활용한 인성교육 사례로 출처를 밝히고 가끔 인용한다. 조사 결과 ‘사람됨의 위기’라는 진단이다.

성적지상주의에 매몰되어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이 아이들의 인성을 망가뜨린다. 인터넷과 다양한 매체의 발달로 자기조절 능력이 없는 청소년들이 인터넷과 스마트폰 중독에 쉽게 노출된다. 학교폭력이나 왕따, 모방 범죄가 늘고 있는 것도 빗나간 인성 영향이다.

아이들 탓만은 아니다. 군대폭력, 성폭력, 묻지마 범죄, 패륜적 범죄가 판치는 일그러진 세상 탓도 있다. 성공을 위해 거짓말과 편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기성세대를 보며 무엇을 배우겠는가. 미래는 올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적 인재를 요구한다.

새롭고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 창의력은 올바른 인성에서 나온다. 청소년 인성교육이 절실한 이유다.

인성교육은 가정과 학교, 사회가 통합적이고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 가정에서의 효과적인 방법은 밥상머리 대화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고 화목은 자연스럽게 인격 형성의 자양분이 되어 시민적 소양을 갖추게 된다.

가족 모두가 바쁘다.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날을 정하여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인성교육진흥법’(2014년)을 제정하여 인성교육을 의무로 규정했다.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 8가지 덕목을 핵심 가치이자 인성교육의 목표로 정했다.

최근 여당 의원 14명이 ‘인성교육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8가지 덕목 가운데 효를 삭제하고 정의와 참여, 생명존중과 평화를 포함시켜 핵심 가치로 삼자고 했다.

‘효가 충효교육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지나치게 전통 가치를 우선하기 때문’이라는 취지다. 충효사상이 수직적인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인식과 맥을 같이한다.

효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 가운데 으뜸가는 가치다. 효는 배제해야 할 가치가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가치다. 민주적인 인성을 갖춘 시민교육은 어버이를 섬기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고령화와 핵가족화로 가뜩이나 전통의 가치가 사라지고 있는데 효를 삭제하자는 발상은 전통적 윤리관에 어긋난다. 효가 천덕꾸러기가 되다니 서글프다.

‘효도하는 마음은 백 가지 행실의 근본이요 만 가지 가르침의 근원’이라는 효경의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효를 삭제한 ‘개정 법률안’은 철회하는 게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