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소매를 먼저 걷어붙이는 사람

소매를 먼저 걷어붙이는 사람

by 운영자 2017.09.06

- 교감 승진을 축하하며
승진 소식 들었네.먼저 박수를 보내네. 드디어 자네가 교감이 되는 군.

그동안 수고가 많았네. 부장교사로서 학교의 힘든 일을 도맡아 땀흘려온 게 몇 해였던가. 연구학교며 현장연구며 각종 계획서와 보고서를 쓰느라 얼마나 머리를 싸매었던가. 교실수업 개선이랍시고 여러 가지 수업을 보여준다고 또 얼마나 안간힘을 썼던가.

무엇보다 가족과 떨어져 산간벽지와 낙도를 찾아다니며 손수 끼니를 해결하던 세월이 얼마였던가.

고생 끝에 교감의 자리에 올랐으니 참 기쁘겠네. 승진을 해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가슴에 품었던 목표를 달성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지. 정말 장하네.

자네도 알다시피 승진을 꿈꾸다가 중도에 마음을 접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승진의 길은 곧 고생길이라고나 할까. 승진 요건은 왜 그리 까다로운지. 부가점수는 왜 그리 복잡하고 종류가 많은지.

스무 가지도 넘는 별의별 경력과 실적이 모여 소수점으로 환산되는 점수인생! 의지가 강한 자네나 되니까 그 가시밭길을 돌파했지 어지간한 사람은 기가 질려 나자빠질 일이 아니던가. 좀 늦긴 했지만 정말 잘했네.

예전에 자네와 근무할 때의 기억 하나가 떠오르네. 소풍을 갔을 때였지. 산에 도착해서 아이들을 풀어놓고, 교사들은 그늘 아래 자리를 깔고 앉아 약주와 곁들여 이른 점심을 시작할 때였어.

선생님들이 다 모였는데, 자네가 보이지 않더군. 어디 갔나 하고 이리저리 찾아보니, 저런! 자네는 한쪽 풀밭에 아이들과 손뼉을 치며 오락시간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아이들끼리 놀라고 내버려두지 않고 사제동행하는 모습을 보고 느낀 점이 많았네. 내가 나이만 먹었지 교사 시늉만 내다가 그 날 자네를 보며 제자 사랑의 자세를 발견했다네. 그 때가 참교육이라는 말이 나돌던 무렵인데, 자네야말로 참 교육자라는 생각이 들더군.

교감이라는 위치는 위로는 교장을 보필하고 아래로는 여러 교직원을 살펴야 하는 만큼 그리 호락호락한 자리는 아닐세. 여러 사람이 모여 일하다 보면 의견이 갈리고 서로 부딪치는 경우가 생기거든. 그런 때야말로 교감의 역할이 필요할 때지.

때로는 어린애 어르듯 달래기도 하고, 때로는 과단성 있게 추진력도 보여주면서 봄바람에 얼음 녹듯 일이 풀리도록 해야 하는 거야.

교무실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놀이터가 되느냐,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공동묘지가 되느냐 하는 것은 교감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봐.

과거에 교장과 갈등을 빚는 교감을 본 적이 있네. 교장과 다투고 와서 불평을 늘어놓는 교감선생님이 계셨지. 의견이 다르면 어떻게든 당사자와 해결해야지 교무실에 와서 이러쿵저러쿵 분을 푸는 모습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더군. 교감이 교장 험담을 하는 것은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아버지 흉을 보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그뿐만이 아니지. 교사와 맞장을 뜨는 교감도 본적이 있네. 서로 삿대질하며 으르렁대는 장면은 참 우스꽝스러운 진풍경이었지. 연유야 어찌 되었든 부하직원과 다투면 결국 체면이 깎이는 것은 윗사람이지.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미리 헤아려서 불만 요인을 줄이든지, 아니면 개인적으로 양해를 구해놓아야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또 한 가지, 열정에 차서 직무에 충실하려다 보면 자칫 직원들과 인간적으로 소원해지는 경우가 생기대. 업무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인간관계를 놓쳐서도 안 되잖아? 업무처리가 다소 서툴고 늦어지더라고 재촉하고 나무라기보다는 도와주고 기다려주는 아량이 필요하더라구. 성급한 김에 내뱉은 말 한 마디로 인해 서로의 가슴에 앙금이 생기는 일은 없어야겠지?

뭐니 뭐니 해도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겸손과 솔선수범이 아닐까 싶네. 위에 올라앉아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없이 낮은 데로 내려가 섬기는 사람, 대접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대접을 먼저 해주는 사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몸 사리지 않고 먼저 소매를 걷어붙이는 사람, 그런 지도자라면 어느 곳에서든 환영 받고 존경 받지 않겠는가.

축하의 말을 하려다가 잔소리가 길어졌네. 내가 교감 시절에 여러모로 부족했기 때문에 이런 당부가 나오지 않나 싶네. 양해 바라고, 지금껏 야전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자네는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충분히 잘 하리라 믿네. 부디 좋은 교감이 되시게. 건승을 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