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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훈의 소리를 살려내다

악기 훈의 소리를 살려내다

by 김회진 기자 kimhj0031@hanmail.net 2018.02.01

잡동사니를 담아두는 상자 속에 악기가 하나가 있다. 모양과 크기가 통통한 홍시를 닮았다. 홍시라지만 빛깔은 좀은 흉한 검정색이다. 속은 비었고, 앞쪽에 작은 구멍 세 개와 뒤쪽에 두 개가 나 있다.이 흉하게 생긴 악기라는 것과 나는 근 10여 년을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식으로 등을 돌리며 살아왔다.

나도 그렇지만 이 녀석도 붙임성이 없고 퉁명하다 보니 서로에게 관심이 있을 리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집안에 살면서도 남남같이 서로를 외면하며 살았다.

어느 날이었다. 인사동 어느 골목길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와 술을 마셨는데 친구는 술값이 없다며 가방 안에 넣어온 이 물건을 내게 주었다.

친구는 그때 이 물건이 훈이라는 악기라고 했다. 악기라 하니 악기인 줄 알았지 한 뭉치 떼어놓은 흙덩이를 닮아 있었다.

상자에서 나사못을 찾다가 그 옛날의 훈을 발견했다. 뽀얗게 앉은 먼지를 털어 제 자리에 놓아두다가 한번 불어나 보자는 마음이 일었다.

운지법도 모르는 악기를 들고 취구부에 입술을 대어 불었다.

불어질 리 없다. 조금 세게 불어도 보고, 입술의 위치를 요리조리 바꾸어가며 불어 보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소리내기를 포기하고 본디 있던 잡동사니 상자에 툭 던져 넣었다.

훈은 본디 기왓장을 굽는 흙에서 왔다. 천 년 만 년 이 땅의 흙으로 오랜 시간을 침묵하며 살아온 셈이다. 그러던 흙이 누군가의 손에 잡혀 훈으로 빚어졌다. 훈으로 빚어졌다고 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고온의 불 속에 들어가 뜨거운 불을 견뎌야 한다. 그 과정을 이겨내야 비로소 훈이 된다.

훈이 되었다고 악기가 되는가? 그것도 아니다. 누군가를 통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에야 훈은 비로소 악기로 살아난다. 그 일은 훈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를 원하는 누군가와의 만남이 필요하다. 만남도 어느 일방의 욕심이나 성급한 만남이어서는 안 된다.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교류할 절실한 만남이어야 한다.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진지한 시간의 축적 또한 필요하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훈과 만났던 이러저러한 과거를 싹 잊어버렸다. 그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일어섰다. 상자 속 훈을 두 손으로 들어올렸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감싸듯 감싸쥐고 나의 체온이 훈에게 고루 퍼져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런 얼마 뒤 취구부에 입술을 가져다댔다. 훈의 정지된 심장을 살려내듯 나직하고 부드럽게 따스한 날숨을 불어넣었다. 뜻밖에도 훈이 호오호오 울었다.

제 몸의 오랜 침묵을 깨고 내 숨결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비록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소리지만 악기로 태어나려는 노력만은 분명했다. 나는 조용조용 내 몸의 입김을 불어넣었다. 서로의 체온을 공유할 때 소리는 뜻밖에도 이처럼 흘러나와 주었다.

나는 밤이 깊어가도록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천천히 길들였다. 그의 소리는 투박하되 깊은 저음이다. 천 년 만 년 침묵한 대지의 음성이 이럴까. 먼데 있는 누군가를 부르는 애절함이 묻어있다.

오늘밤은 오랫동안 등을 돌리고 살아온 훈을 만났다. 만나서 서로 화해하는 법을 배웠다. 생각할수록 우리의 만남이 너무 늦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