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해와 오해

이해와 오해

by 한희철 목사 2018.02.07

언젠가 친구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 모임에 참석했던 한 친구가 뜻밖의 질문을 했습니다.사람 사이에서 오해로 인해 생겨나는 갈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참이었습니다.

친구는 ‘5-3=2’와 ‘2+2=4’가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갑자기 웬 산수, 다들 의아해하며 대답을 못하자 친구가 설명을 했습니다.

‘5-3=2’란, 어떤 ‘오해’(5)라도 ‘세 번’(3)을 생각하면 ‘이해’(2)를 할 수 있다는 뜻이라 했습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세 번을 생각하면 어떤 오해라도 풀 수가 있고, 그러면 마침내 이해를 할 수가 있다는 뜻이었지요.

숫자를 가지고 단어의 뜻을 설명하는 것이 제법 재미있다 싶었습니다.

다음은 ‘2+2=4’, ‘5-3=2’에 관한 설명을 들었던 터라 짐작이 되는 것이 있었는데 그 짐작은 맞았습니다. ‘이해’(2)와 ‘이해’(2)가 모일 때 마침내 ‘사랑’(4)이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사랑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이해와 이해가 모일 때 비로소 사랑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오해할 때가 있고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오해는 대개 잘못된 선입견이나 편견, 이해의 부족에서 생기는데 대부분의 오해는 잘못된 결과를 가져옵니다.

소중한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하고, 견고했던 신뢰가 깨어지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아무리 큰 오해라도 세 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는 ‘5-3=2’의 풀이가 귀하게 여겨집니다.

영어로도 ‘이해하다’를 뜻하는 ‘understand’는 ‘밑에’와 ‘서다’라는 말을 합한 것으로,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해와 이해가 모여 사랑이 된다는 말도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사랑은 이해인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를 이해하거나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사랑의 첫걸음일 수 있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참된 사랑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들의 관계는 ‘가까운 타인’으로 전락해 버린 듯싶습니다. 가까운 척 친한 척하지만, 마음과 마음 사이에는 뭔가 서먹한 것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낚싯바늘을 가만 보면 바늘 끝부분에 안쪽으로 꼬부라진 부분이 있습니다.

거스러미처럼 되어 고기가 물면 빠지지 아니하게 된 작은 갈고리를 ‘미늘’이라고 부릅니다.

가까이 어울리며 살아가지만 마음 한구석 오해라는 미늘을 감추고 살아갈 때, 우리는 타인으로 전락합니다.

오해를 풀어내지 못하면 관계는 점점 멀어지며 어색해집니다. 우리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5-3=2’와 ‘2+2=4’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오해를 그냥 내버려 두지 말고 깊은 생각으로 풀고, 오해를 풀어낸 그 자리에 따뜻한 이해를 쌓는다면 마침내는 진정한 사랑에 이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산수 공부를 하듯이 우리의 마음에 ‘5-3=2’와 ‘2+2=4’를 적어두고 그 뜻을 새기며 산다면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