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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대한민국 차례입니다

다음은 대한민국 차례입니다

by 한희철 목사 2018.05.02

역사적인 날로 기록된 그 어떤 순간을 살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낸 그 순간이 역사적인 시간으로 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까요?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지나쳤는데, 어느 날 되돌아보니 혹은 다른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놀라운 의미가 담긴 날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는 것 아닐까요?

‘2018년 4월 27일 금요일’이 그런 날 아닐까 싶습니다. 불신과 반목, 갈등과 증오의 세월을 보내오던 남과 북의 정상이 한 자리에서 만나 서로의 손을 잡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건널 수 있는 낮고 폭이 좁은 시멘트 턱, 북과 남의 정상은 서로의 손을 잡고 단숨에 그 벽을 넘었습니다.

두 정상이 만나 악수하고 대화하며 벽을 넘는 모습을 영상으로 지켜보던 외신기자들이 감동에 벅차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며 덩달아 마음이 뜨거워져 울컥 눈시울이 젖었지요. 이처럼 쉬운 일이 왜 그리 어려웠을까, 이처럼 단순한 일이 왜 그리 복잡했을까, 회한마저 들었습니다.

판문점 선언 속에 담긴 여러 가지 의미 있는 내용들이 선언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중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금강산으로 가는 날이, 젊은이들이 군대를 가더라도 통일이 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압록강 백두산으로 가는 날이, 기차를 타고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날이 어서 속히 정말로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두고 온 고향을 평생 그리워하다 이 땅을 떠나신 아버지의 그리움은 제 마음속에도 남아 있습니다. 강원도 통천군 벽양면, 금강산 아래라고 했습니다.

자유롭게 찾아가 그 땅을 천천히 거닐 수 있는 날이 찾아온다면, 끝내 고향을 찾지 못하고 이 땅을 떠난 아버지의 그리움도 얼마든지 풀릴 수가 있겠다 싶습니다.

남북정상회담 소식을 접하며 문득 떠오른 기억이 있습니다. 오래전 독일에서 지낼 때 가족들과 함께 베를린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베를린에서 꼭 보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가 장벽이었습니다.

동독과 서독을 가로막았던 베를린 장벽의 일부를 보존하고 있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같은 분단국가에서 살기 때문이겠지요, 그곳을 찾는 마음은 여느 관광지를 찾는 마음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장벽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로 제법 붐볐습니다. 장벽을 둘러보다 보니 장벽을 찾은 사람보다도 장벽을 다녀간 사람들이 훨씬 더 많겠구나 싶었던 것은 장벽을 가득 메운 그림과 글씨 때문이었습니다.

다양한 그림과 글씨가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유심히 바라보다 마음이 울컥해지는 글을 보았습니다. 빼곡한 그림과 글씨 사이 눈에 띄는 글이 있었습니다. 누가 적었을까요, “다음은 대한민국 차례입니다” 하는 글과 “One Korea!!”라는 글이었습니다.

글에 적힌 내용처럼 동독과 서독을 가로막았던 장벽이 허물어졌듯이 이번에는 우리 차례였으면 좋겠습니다. 남과 북을 가로막았던 긴 철조망 가득 평화의 메시지를 눈이 부실 만큼 내걸 수 있는 날이 어서 속히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