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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서 100년 사는 ‘휴먼 피시’

동굴서 100년 사는 ‘휴먼 피시’

by 이규섭 시인 2019.05.24

동굴 세계는 경이롭다. 전동 열차를 타고 들어가 지하 세계의 신비와 100년을 산다는 ‘휴먼 피시’를 만났다.발칸반도 슬로베니아의 포스토이나 동굴은 웅장하다. 동굴 지하로 파브카 강이 흐르고 1만여 명을 수용하는 콘서트홀을 갖췄다.

나룻배를 타고 들어갔던 중국 장가계 황룡동굴은 덩치가 큰 나라니 동굴도 크나 보다 무덤덤했다.

슬로베니아의 면적은 전라남북도를 합친 것보다 조금 넓은 땅덩이(202만 7천㏊)에 이렇게 큰 동굴을 품고 있다니 조물주의 자연경관 안배는 공정하다.

동굴은 20.6㎞ 개발되었으나 5.2㎞만 개방한다. 19세기 합스부르크 왕가가 동굴 안을 운행하는 열차를 개발하면서 세계에 알려졌다.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이다. 동굴 보호를 위해 관람 시간과 인원을 제한하며 가이드 인솔로 진행된다. 한국어 안내 오디오를 3유로 추가 비용을 내고 선택했다.

특색 있는 동굴 구역마다 고유 번호판을 세워놓았고, 그 번호를 누르면 한국어로 또박또박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목에 걸고 이어폰을 꽂아 이동과 사진 찍기에 편하다. 한국어 자동 안내기는 한국 관광객이 늘면서 몇 해 전 추가됐다.

지난 2010년만 해도 슬로베니아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은 연 6600명 수준이었으나 2014년 6만 2000명으로 폭증했고, 2017년에는 15만 명으로 늘었다. TV 여행 프로그램 ‘꽃 누나’ 영향이 컸다.

열차는 빠른 속도로 동굴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동굴 안은 연평균 8∼10도로 서늘하다. 대부분의 동굴은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낮은 포복으로 통과하는 구간이 있으나 이곳은 경사로와 평지로 이어져 편하다.

밤하늘의 은하처럼 동굴 천장을 화려하게 수놓은 종유석과 돌탑처럼 무더기로 솟은 석순 등 기기묘묘한 종유석과 석순들이 발길을 잡는다.

압권은 5m 높이의 아이스크림 석순으로 순백색이 눈부시다. 억겁의 세월이 빚은 대자연의 예술품이다.

석회암과 물의 화학작용으로 고드름처럼 아래로 맺힌 것이 종유석이다. 바닥에서 위로 솟아오르는 게 석순이다. 100년에 1㎝ 정도 자란다는 종유석과 석순이 만나 석주가 된다.

학창시절 세계 지리 시간에 배웠던 카르스트 지형이 뭔지 알쏭달쏭했다면 포스토이나 동굴은 생생한 교육 현장이다.

자녀와 함께 가면 더 좋은 이유다. 카르스트는 석회암이 녹아 형성된 지형을 뜻한다.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랴나 남서쪽에 있는 크라스(Kras) 지방은 이 용어가 유래한 곳이다. 슬로베니아엔 크고 작은 석회암 동굴이 1000여 개 넘는다고 한다.

동굴탐사의 화룡점정은 포스토이나 동굴에서만 서식하는 올룸(Olm·동굴도롱뇽붙이)과의 만남이다.

대형 수족관에 두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혈거도롱뇽으로 도마뱀 비슷하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눈은 도태되고 피부색이 백인과 비슷하고 수명이 100년 정도로 ‘인간 물고기’라는 별칭이 붙었다.

빛과 소음에 취약하여 사진을 찍거나 수족관을 건드리지 말라는 안내가 붙었다. 투어의 끝 지점은 콘서트홀. 기념품 숍과 무료 화장실도 있다.

다시 전동 열차를 타고 동굴 밖으로 나오니 눈 부신 햇살이 더 강렬하다.